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33살, 여성, ○○구 ○○동 ○○아파트 2단지, 해외 여행력 없음, 신천지교인 아님, ○○원 근무, 11시 ○○병원 501호 병문안(아버지 위암).” ‘시민’을 안심시킨다는 명목으로 무려 가족 병력까지 공개하는 자치구들의 신속함을 볼 때마다 더 안심되기보다 더 불안해진다. 내가 확진자가 되면 어쩌지? 오싹해진 나머지 ‘내가 오늘 뭘 했더라?’ 하며 하루 일정을 단속하고, ‘이 이야기는 꼭 안 해도 되겠지?’ 하며 저울질하게 된다. ‘가해자가 된 기분’을 느끼지 않기 위해 ‘피해자가 된 기분’으로 달려가려는 유혹도 느낀다.
그러던 중 도착한 또 다른 문자. “금일 코로나19 확진자 1명(ㄷ동) 추가 발생.”(내가 사는 지역이다!) 보자마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앗, ㄷ동에 확진자 생겼네. 누가 아픈가…?” 마침 옆에 있던 이가 빵 터졌다. “왜요, 아는 사람일까봐요?” 참고로, ㄷ동의 주민은 2만7천 명이 넘는데, 내가 아는 ㄷ동 주민은 한 10명 정도다. 관계를 맺고 얼굴이 있는 타인과 인구, 통계, 숫자로서의 타인은 이렇게나 다르다.
쏟아지는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우리는 누구에게 감정이입하는가. 감정이입은 품성보다는 지성을, 가방끈보다는 사회적 위치(젠더·국적·계급·연령·몸)를 반영한다. 30만 명에 이르는 콜센터 노동자에게 서울의 콜센터 집단감염은 남의 일일 수 없다. ‘35살 이하 미혼 여성 근로자’만 입주 가능했다는 대구 한마음아파트 11평 공간을 상상하며, 전세자금 대출을 알아보다 울었던 30대를 떠올렸다. 코로나19 전담병원 지정으로 갈 곳 없어진 호스피스병동 환자들 소식에 안절부절못하는 말기 환자들이 있다.
공감은 ‘여성의 본성’이 아니라 지적인 감정이다. ‘나랑 똑같다’는 동일시를 넘어, ‘나’의 유동성, 타인과의 연결성을 인식할 때만 가능하다. 자가격리는 자신보다는 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시민행동이다. 다들 ‘잠시 멈춤’ 하는 동안, 잠시도 멈출 수 없는 돌봄을 감당하느라 몸이 부서지는 사람들이 있다. 확진자는 ‘바이러스 숙주’가 아니라 나일 수도 있었을 ‘아픈 사람’이다.
엘리베이터에서 기침했다가 함께 탄 모든 사람의 시선을 받았다. 나는 타인을 불안하게 한 것 같아 조금 미안해졌고, 그들은 타인(나)을 불안해한 것에 조금 민망해했다. 그때,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어떤 아슬아슬한 공동의 무언가가 생겼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서로에게 환경이다. 나도 확진자가 될 수 있다. 이 사실에서 어디로 나아갈지가 관건이다.
애정결핍이 애정을 준다고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착취되거나 관계가 박살 날 뿐), 불안은 울타리를 더, 더, 더 높게 세운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사회를 정글로 만들 뿐). 약해지는 것이 불안하다면, ‘약한 채로도 그럭저럭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모두 언제든 감염될 수 있는 취약한 존재라는 사실에서 배우기로 하자. 우리는 타인을 멀리함으로써가 아니라 실은 타인에 의해, 타인과 ‘함께’일 때만, 보호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상할 정도로 언급이 안 되고 있지만, 코로나19 치료제로 가장 우선 투여되는 약은 임상자료가 많이 축적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제다. 지금, 우리 모두의 건강이 감염인과 감염인 인권을 위해 분투해온 이들에게 빚지고 있다. 약자를 우선하는 것이 공익이라는 걸 이보다 더 명확히 보여주는 예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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