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최후의 투쟁이다.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약자들이 거리로 나와도, 삭발해도, 철탑에 올라도 아무도 자기 목소리를 듣지 않을 때 마지막으로 택하는 단말마가 단식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1월27일 밤 8일째 청와대 앞 단식 중에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갔다. 11월28일 오전 의식을 회복했다. 단식 초기부터 ‘황제단식’이라는 비아냥과 냉소에 시달려 한국당 미디어특별위원회가 “여야 4당과 일부 언론이 입 맞추기라도 한 듯 폄훼하고 조롱하며 희화화하는 데 열을 올리는 것을 중단해달라”고도 항의했다. 한국당의 항의대로 누군가의 단식투쟁을 폄훼하거나 조롱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럼에도 황 대표의 단식을 향한 의문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황 대표는 단식 이틀째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의 가치를 꼭 지키겠습니다”는 글을 올리며 단식의 절박함을 밝혔다. <font color="#008ABD">그와 한국당이 지키겠다는 가치는 무엇일까? </font>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의 본회의 표결을 막고 두 법안의 통과를 무산시키겠다는 것이다. 논란은 많았지만 결국 두 법안은 국회법에 따라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돼 본회의에 부의됐다. 결국 국회 밖이 아니라 안에서 풀어야 할 문제다.
게다가 황 대표는 동원할 수 있는 정치적 수단이 우리 사회에서 많은 이들 중 하나다. 매일 아침 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한마디만 해도, 소셜네트워크에 한 문장만 올려도 그의 생각과 주장은 실시간으로 세상에 퍼진다. 자신의 확성기가 돼줄 108명의 한국당 의원도 있다. 정치협상회의에 참석하든 기자간담회를 열든 그가 말할 방법은 차고 넘친다. <font color="#008ABD">그는 무엇이 부족했던 것일까?</font>
그의 단식에 모두의 시선이 쏠려 있는 동안 황 대표와 국회를 향해<font color="#008ABD"> “국회가 진짜로 할 일은 무엇이냐?”고 의문을 던지는 이들이 있다.</font>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지붕 위에서는 형제복지원 생존자 최승우씨가 23일째(11월28일 현재)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 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법안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최씨를 비롯해 피해자들은 2012년부터 국회 앞 1인시위, 거리 서명, 삭발·연좌 농성 등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 11월26~27일에는 어린이 교통안전 법안 통과를 요구하며 아이를 교통사고로 잃은 부모들이 국회를 찾았다. 계속된 그들의 절규에 좀처럼 귀를 열지 않던 국회는 이제야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의문에 명확한 답을 하지 않은 채 한국당은 “우리가 황교안이다”라고 외쳤다. 11월28일 다른 의원들이 동조 단식에 들어가며 농성을 이어갔다. 이들의 단식과 함께 공수처법·선거법 처리 논의는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3선인 김세연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며 불었던 한국당 혁신의 바람도 한순간에 잠잠해졌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font color="#A6CA37">블라블라</font>
구할 수 있는 자가 먼저 구하라
2017년에도 재판부는 피해자 의사에 반해 신체를 촬영하고 그 사진 가운데 한 장을 휴대전화로 보낸 것에 ‘촬영은 유죄, 전송은 무죄’로 판결했다. 지난해 12월18일 불법촬영과 유포 범죄 처벌을 강화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그제야 복제물도 불법촬영물에 포함됐다. 하지만 지난 8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오덕식 부장판사는 연예인 구하라씨에 대한 협박·강요·재물손괴·상해 등의 혐의로 그의 전 연인 최종범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면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에 무죄판결을 했다.
연예뉴스로 그 사정이 자세히 전달된 이 연인의 다툼에서 중요한 쟁점은 동영상이었다. 최종범이 연인의 집에 불법침입을 하고 폭행을 휘둘렀지만 구하라는 저항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최종범이 동영상을 휴대전화로 전송하자 구하라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가해자의 폭행보다 동영상 유포가 더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최종범은 “동영상을 제공”하겠다며 언론사에 연락도 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이 ‘유출되지 않은 동영상’의 ‘공개’도 이루어졌다. 촬영의 강제성 유무를 판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재판부는 실제 유출되지 않았고, 촬영에 강제가 없었다며 무죄판결 이유를 밝혔다. ‘유포 협박’ 자체가 ‘디지털 성범죄 유형’에 포함되지만, 실제 재판은 여전히 ‘촬영의 강제성’ 등 구태의연한 판단에 의지한다. 성인지 감수성 없이 벌어지는 재판의 폭력성도 여전하다.
항소심을 앞둔 구하라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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