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아이돌 팬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준 엠넷 (프듀엑스)의 ‘조작설’이 사실로 드러났다.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피디(PD) 2명이 시청자 투표수를 조작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부장판사는 11월5일 안아무개 피디와 김아무개 시피(CP)를 구속했다. 명 판사는 “피의자의 역할 및 현재까지 수사 경과 등에 비춰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는 지난 5월부터 방영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조작설은 지난 7월 마지막 생방송 경연에서 불거졌다. 시청자의 유료 문자 투표 결과 의외의 연습생들이 데뷔 멤버에 포함된 반면, 오디션 기간 시청자 투표에서 줄곧 상위권에 들었던 연습생은 최종 탈락했다. 특히 1위부터 20위까지 득표수가 모두 특정 숫자의 배수로 구성됐다는 분석이 나와 의혹이 확산됐다. 이에 엠넷은 지난 7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시청자들은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려 제작진을 사기 혐의로 고소하고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구속된 피디들은 생방송 경연에서 시청자 유료 문자 투표 결과를 조작해 특정 후보자에게 이익을 준 혐의를 받는다. 이들을 수사해온 경찰은 제작사 등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를 분석하고 관련자들을 조사한 결과, 제작진과 특정 기획사가 순위 조작에 공모한 정황을 포착했다. 또 이들은 기획사 쪽의 향응을 받은 정황도 드러났다.
프듀엑스는 거대 기획사나 방송사의 개입 없이 ‘국민 프로듀서’라 불리는 시청자의 투표만으로 데뷔 멤버를 뽑는다. 외부의 ‘입김’을 배제하고 오로지 팬들의 의견만 반영하는 공정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떠들썩하게 홍보했다. 방송사나 기획사의 ‘검은 거래’를 의심해왔던 시청자들은 공정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제작진의 의지에 뜨거운 성원을 보냈다. 2016년 시즌1이 첫선을 보인 이후 4편의 시리즈가 모두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 수사로 공정성을 입증하기 위한 시청자 투표가 업계의 고착화된 부조리를 감추기 위한 속임수였음이 드러났다. 공정한 오디션을 공언해놓고 뒤로는 검은 거래를 해온 제작진의 행태는 팬들의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팬들이 절망하는 이유는 가요계 데뷔를 원하는 연습생과 이들의 성공을 바라는 팬들의 절박함이, 기획사와 방송사의 얄팍한 상술의 재료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연습생의 피와 땀, 팬들의 간절한 기도를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배짱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대중은 말로만 공정을 외치고 실제 행동은 전혀 공정하지 않은 정치권의 행태에 크게 실망했다. 정치에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줄 대중문화계마저 팬들을 배신하는 상황이 씁쓸하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블라블라
갑질
갑질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전까지 갑이라는 단어는 일견 긍정적이었다. ‘갑이다’라는 말은 ‘최고다’와 비슷하다. 최근 자유한국당의 영입 인사로 거론되면서 다시 국민의 기억에 소환된 박찬주 전 육군대장(사진)은 갑질의 ‘갑’과 같은 인물이다. 2017년 7월 군인권센터는 박찬주 전 대장의 공관에서 일한 공관병들이 당한 ‘갑질’ 행태를 폭로했는데, 보도 뒤 폭로에 동참한 공관병이 많아 군인권센터는 보도자료를 세 차례 추가로 냈을 정도다.
폭로한 지는 2년이 됐고, 갑질 시기는 더 지난 일이지만 박찬주 전 대장의 갑질은 시대에 뒤처지지 않게 ‘선구적’이었다. 전자팔찌 같은 것을 차고 호출하면 바로 달려가야 했고, 혹시라도 늦으면 막말을 퍼붓거나 벌을 세웠다. 베란다의 화초가 냉해를 입자 공관병을 추운 베란다에 서 있게 했다. 감나무에서 감을 따 곶감을 만들게 했고, 제대로 잘 마르지 않으면 조리병 탓을 했다. 못 먹는 감을 던져서 감이 공관병 옷에서 꽃처럼 터졌다는 것은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인상적이다. ‘자연인’ 박찬주는 해명 기자회견을 열어 공관병을 ‘후방에서 꿀 빨던 놈들’이라며 “20~30대들이 반감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많은 응원을 받고 있다”는 ‘신개념’ 상황 인식을 보여주었다. 은 2017년부터 ‘박점규의 갑돌이와 갑순이’ 연재에서 갑질을 고발해왔다. 얼마나 사회에 갑질이 넘쳐나던지 22개월 동안 연재됐다. 더 이상 ‘창의적’인 갑질을 만나지 않길 바랄 따름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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