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에는 ‘탱킹’(Tanking)이란 용어가 있다. 정규리그 하위권 팀이 다음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상위 지명권(리그 전력 평준화를 유도하기 위해 꼴찌 팀부터 역순으로 유망 신인 선발권을 부여)을 얻기 위해 사실상 남은 경기를 포기하고 ‘꼴찌 경쟁’을 하는 것을 일컫는다. 10월31일(한국시각) 창단 5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워싱턴 내셔널스도 팀 전력이 약했던 2000년대 후반 탱킹 시즌을 보내며 현재 에이스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등 유망 선수를 확보했다.
2019 야구 시즌은 끝났지만 ‘조국 사태’로 국민의 외면을 받고 올 시즌을 망친 정당들은 반전을 꾀하기는커녕 경쟁적으로 실수를 남발하며 ‘탱킹’을 벌이는 모양새다. 스포츠처럼 유망 선수를 확보하는 것도 아닌데 왜?
자유한국당은 10월30일 박찬주 전 예비역 육군 대장을 총선 ‘1호 영입 인사’로 발표하려 했다가 당내 반발로 보류했다. 박 전 대장은 2013~2017년 공관병에게 전자 호출팔찌를 채우고 텃밭 관리를 시키는 등 ‘갑질’을 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인사다. 검찰은 그의 갑질 혐의에 불기소 처분을 했지만 뇌물수수·부정청탁 금지법 위반 혐의는 재판으로 넘겼다. 그의 아내도 공관병 폭행·감금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퇴로 여론조사 지지율 소폭 오름세를 보이던 자유한국당은 ‘조국 낙마 표창장’ 논란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을 벌거벗은 모습으로 희화화한 유튜브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당 안팎의 비판을 받고 있다. 총선 체제 돌입을 알리는 시점에 ‘갑질’로 상징되는 박 전 대장의 영입 보류 소동까지 벌어지며 점수를 내기는커녕 잇달아 병살타를 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10월3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조국 전 장관 사퇴(10월14일) 이후 처음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매우 송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당 안팎에서 제기된 인적 책임론과 쇄신론에는 선을 그었다. “조국 정국을 거치면서 가장 답답했던 것은 당이 대통령 뒤에 숨는 것이다”(이철희 의원)같이 조국 사태에서 여당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총선 준비를 위해 당 쇄신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왔지만, 이 대표는 “정책 잘 만들어서 국민들 어려움 풀어주는 게 가장 좋은 쇄신”이라는 견해만 밝혔다.
팀 성적이 부진하면 라인업도 조정하고 전략에도 변화를 주는 법인데, 기존 전략으로 가겠다는 셈이다. 바른미래당은 당내 계파 간 자중지란을 이어가며 사실상 분당 절차를 밟는 등 ‘팀워크’ 자체가 붕괴됐다.
스포츠에서 탱킹은 팀 부진에 실망한 팬들에게 팀 전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주지만, 정당끼리 ‘누가 더 못하나’라며 꼴찌 싸움을 벌이는 건 유권자에게 ‘절망’만 안겨줄 뿐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블라블라
댓글의 추억
한국에서 댓글 기능이 처음 선보인 건 1999년이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즈에서 2003년 5월 기획 기사로 선보였던 ‘위기의 지방대학’ 시리즈는 기사보다 댓글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전해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김익현, ) 댓글 참여자들은 댓글에서 숨겨진 맥락을 채우고, 뉴스를 비트는 풍자를 하고, 댓글에 댓글을 달며 ‘댓글놀이’를 했다. 다음 ‘아고라’ 등 토론 게시판이 가능한 것도 ‘이름 떼고 붙은 논객’ 덕분이었다. 익명의 이들이 가상공간에서 의견을 생산적으로 주고받는 것을 ‘집단지성’이라 했다.
20년 만에 이 모든 일은 ‘꿈같은 일’이 되었다. 일본 2채널은 극우 등 극단주의자들이 분노를 날것으로 표출하는 공간이다. 한국의 인터넷 공간도 비슷하다. 집단은 있되 지성은 사라졌다. 10월25일 다음 포털을 운영하는 카카오는 설리의 죽음 이후 10월 중으로 다음의 연예뉴스에서 댓글 기능과 인물 연관 검색어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카카오도 발표 당일 실시간 이슈 검색어 서비스를 중단했고 관련 서비스를 개편한다고 밝혔다. 이제 언론의 차례다. 이미 미국 시사지 는 기사 중 일부(10%)에만 24시간 댓글을 달 수 있고 선별된 댓글만 노출된다. 영국 시사지 은 2016년 이민, 인종 등 논쟁을 초래하는 기사에는 댓글창을 없앴다. 영국 공영방송 <bbc>의 댓글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제거된다. 미국 공영라디오방송 <npr>를 비롯한 몇몇 언론사는 아예 댓글 기능이 없다. 댓글은 ‘인류의 막장성’을 증거하는 수많은 일 중 하나로 기록될 법하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npr></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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