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라는 칼럼이 화제가 된 지 1년이 지나, 다시 추석이 돌아왔다. 당시 김 교수는 “친척이 명절을 핑계로 결혼할 계획은 있는지, 아이는 언제 낳을 것인지, 살은 언제 뺄 것인지 등등 집요하게 당신의 인생에 대해 캐물어온다면, 그들이 평소에 직면하지 않았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좋다”고 권했다. 예컨대 “결혼이란 무엇인가” “친척이란 무엇인가” 등. ‘꿀팁’을 알았으니 올해는 편한 추석을 보낼까 했는데 엉뚱하게 정치권이 이 기대를 산산이 무너뜨렸다.
9월2일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청문회에서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의 발언은 귀를 의심케 했다. “지금 아직 결혼 안 하셨죠? 한국 사회에서 앞으로 가장 큰 병폐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출산율입니다. 출산율이 결국 우리나라를 말아먹습니다. 후보자처럼 정말 훌륭한 분이 정말 그걸 갖췄으면 100점짜리 후보자라 생각합니다. 본인 출세도 좋지만, 국가 발전에도 기여해주세요.” 조 후보자는 굳은 표정으로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이 조 후보자 대신 묻는다. 출산이란 무엇인가. 여성의 몸이란 무엇인가. 출세란 무엇인가. 국가 발전이란 무엇인가. 장관의 자질과 능력이란 무엇인가. 여성 공직자란 무엇인가.
같은 날, 같은 당 박성중 의원은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최 후보자를 향해 “아내 하나도 관리 못하는 사람이 수십조원의 예산을 쓰는 과기정통부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겠느냐. 사퇴할 생각이 없나”라고 말했다. 박 의원이 최 후보자의 시민사회단체 후원 내역이 편향적이라고 문제 삼았는데, 최 후보자가 “제가 후원한 단체들이 정치적으로 편향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 역사 문제 관련 단체에 대한 후원은 아내가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하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입 아프지만 묻는다. 아내란 무엇인가. 남편이란 무엇인가. 관리란 무엇인가. 과기정통부 예산이란 무엇인가. 개인의 자유란 무엇인가.
명절 때 가족 친지들 앞에서 목청 높여 ‘가짜뉴스’를 전파하는 사람도 꼭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8월30일 부산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규탄 집회에서 “문재인 정권은 광주일고 정권이라는 말이 있다. 이 정권 들어서 부산, 울산, 경남 정말 차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는 거짓이다. 정부 내각에서 현재 광주일고 출신은 이낙연 국무총리 한 명뿐이다. ‘광주일고 정권’이란 말이 극우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나 유튜브에서 가끔 쓰는 표현이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팩트란 무엇인가. ‘판사 출신’이란 무엇인가. 여야 4당 등은 이들의 발언에 공식 사과와 징계를 요구하지만 자유한국당은 현재(9월5일)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망언이란 무엇인가. 사과란 무엇인가. 합리적 보수란 무엇인가.
추석을 앞두고 ‘예방주사’를 맞았으니 여러분의 추석은 좀 다를 것이다. 모두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자유롭고 즐거운 명절 보내시길!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블라블라
일해라 절해라 하지 맙시다
먼저 티엠아이(TMI). 한가위에 고향에 내려가 친척이나 친구를 만나면 ‘티엠아이’는 하지 말자. 지난해 가장 핫한 단어로 떠오른 이 말은 ‘투 머치 인포메이션’에서 나왔다. 꼰대들과 밥은 같이 먹어도 말은 안 섞는 젊은이들의 생활방식과 잘 맞다. 꼰대들은 ‘맨스플레인’이 되기 쉽다. 까딱하면 ‘설명충’ 된다. 단발적인 용어로도 ‘티엠아이’가 가능하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요즘 애들…” “우리 때는…”이 입 밖에 나오려 하면 그냥 삼키는 게 좋다. 한 인기 좋은 선배의 평소 지론은 “입은 다물고 지갑을 열라”였다. 입 대신 지갑을 열자. ‘보람 따윈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를 필두로 한 휴대전화 이모티콘에 소중한 말씀이 많다(그림왕 양치기).
두 번째 ‘일해라 절해라’ 하지 마라. 이래라 저래라를 잘못 쓴 줄 알고 지적하면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진다)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여러 번 의심하고, 자기 말이 시대에 맞는지를 반성하라. 거기에는 국어사전에 오른 바른 철자에도 해당된다. 커엽다(귀엽다), 괄도네넴띤(팔도비빔면), 댕댕이(멍멍이) 등은 모두 철자 파괴 세대의 ‘또 다른 발명’이다.
세 번째 ‘취존’(취향존중)하라. 신조어에는 유달리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는 당당한 선언이 많다. ‘싫존주의’는 싫어하는 것을 밝히는 것을, ‘휘소가치’는 오래가지 않더라도(휘발성)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소확행’은 소소하지만 자신은 확실히 행복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의미도 중요하지 않다. ‘무민세대’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그냥 그대로 소중하다. 지난해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였고, 올해 나온 도 많은 이가 좋아하는 제목이다.
가장 무난한 말은 “괜찮아”다. 당신도 괜찮고 상대방도 괜찮다. 매수를 채우느라 ‘티엠아이’가 된 것 같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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