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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설렁썰렁
등록 2019-07-29 09:50 수정 2020-05-03 04:29
연합뉴스

연합뉴스

“난 차라리 웃고 있는 삐에로가 좋아. 난 차라리 슬픔 아는 삐에로가 좋아.” 가수 김완선은 라는 노래에서 ‘삐에로’가 좋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원룸에 침입하고 택배를 훔쳐 가는 ‘삐에로’를 누가 좋아할 수 있을까? 아니, 누가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피에로 가면을 쓴 채 원룸에 침입하려는 남성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람이 경찰에 붙잡혔다. 해당 영상은 실제 사건이 아니라 가면 쓴 남성이 운영하는 택배 대리수령 회사를 광고하기 위해 만든 홍보 영상이라고 했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혼자 사는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공포를 마케팅에 이용해 부적절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유튜브에 ‘신림동, 소름 돋는 사이코패스 도둑 CCTV 실제 상황’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린 최아무개(34)씨를 7월25일 자정께 최씨의 원룸에서 검거했다.

7월23일 올라온 문제의 영상을 보면 피에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검은 가방을 멘 남성이 원룸 복도에서 어슬렁거리다 출입문 앞 택배 상자를 집어든다. 집 안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문에 귀를 대던 남성은 택배 상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택배 상자에서 개인정보를 확인하더니 잠금장치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려고 한다. 수차례 시도하다 안 열리자 택배 상자를 들고 자리를 뜬다. 영상은 남성이 사라지고 10여 초 뒤 집 안에 있던 사람이 문을 살짝 열고 바깥 상황을 살피면서 끝난다. 영상은 남자가 봐도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지난 5월 ‘신림동 강간미수 CCTV 영상’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범죄에 취약한 여성 1인 가구들의 두려움이 커진 가운데 피에로 택배 도둑 영상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빠르게 퍼졌다. 뉴스로 보도까지 되자 영상 속 건물이 자기가 관리하는 건물임을 깨달은 서울관악구 신림동 원룸 관리인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CCTV를 확인해 이 원룸 거주자 최씨를 찾아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영상은 최씨의 ‘자작극’으로 파악됐다. 최씨는 경찰 조사에서 “실제 도난 피해는 없었다. 내가 운영하는 택배 대리수령 회사 광고 영상을 만들어 올린 것이다. 뉴스로 논란이 된 것을 알고 해명 영상을 올리려고 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최씨는 유튜브에 사과문을 올렸다. 자신을 1인 스타트업을 하는 청년이라 소개하고, “최근 신림동에서 주거 침입 영상이 충격파를 던져준 것을 기억하고 CCTV 구도로 영상을 촬영했다. 영상만 봐도 섬뜩한 공포로 느껴졌을 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음을 전적으로 인정한다”며 사과했다.

최씨는 피에로 가면을 쓴 남성과 집 안에 있던 남성 모두 자신이며 혼자 촬영한 두 영상을 하나로 합쳐 유튜브에 올렸다. 그는 “지난해 혼자 사는 여성들이 택배 받는 게 두려워 ‘곽두팔’이라는 남성 이름을 쓰는 것을 보고, 불안감을 없애고 싶었다. 여성들이 남자 이름으로 택배를 받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여성의 불안감과 1인 가구의 부재 중 택배 수령을 배송지 공유로 해결하고 싶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최씨에게 비판 여론이 쏟아졌다. 조작된 영상을 실제 상황인 것처럼 올린 것도 문제지만, 여성 대상 범죄를 가볍게 여기고 광고에 이용한 것은 공감능력 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경찰은 최씨에게 어떤 법률을 적용해 처벌할지 검토하고 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블라블라


시인의 죽음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완전소중 시코쿠’라는 제목의 글을 2008년 계간 에 발표했다. 당시 문학계는 미래파라는 이들의 생경한 말들에 아연실색한 상황이었다. “나의 진짜는 뒤통순가 봐요/ 당신은 나의 뒤에서 보다 진실해지죠”라는 황병승의 ‘커밍아웃’ 첫 문장은 이해할 수 있는 편에 속했다. 이 시의 마지막은 “부끄러워요? 악수해요/ 당신의 손은 당신이 찢어버린 첫 페이지 속에 있어요”다. 캠프, 퀴어, 분열, 무국적, 콜라주 등의 해설에 동원되지만 “어느 날 누군가 내 필통에 빨간 글씨로 똥이라고 썼던 적이 있다”(‘여장남자 시코쿠’)처럼 불온한 시어는 강렬한 이미지로 독자를 붙든다. 황현산은 글에서 황병승의 시를 외국 시와 견주며 해석한다. 그가 한국 시에 없던 음조, 정서, 통사 구조를 창안했다는 것이다.
이 2010년 21세기 첫 10년의 문학을 정리했을 때 최고의 시집으로 황병승의 가 뽑혔다. 문학평론가 서희원은 이 시집이 “‘주인’과 싸우는 ‘주체’, 괴물과 악무한의 전투를 벌이는 트랜스젠더 파르티잔의 선언이자 실패담”이라고 말했다.
2013년 5월에 나온 그의 세 번째 시집 은 접근이 조금 쉬워졌다. “채마밭에 앉아/ 병색이 짙은 아빠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괜찮아 걱정하지 마 아직은 안 죽어’/ 배시시 웃다가/ 검은 옥수수 알갱이를/ 발등에 흘렸었는데/ 어느덧 오월,/ 아름답고 좋은 날이 또다시 와서/ 지나간 날들이 우습고/ 간지러워서/ 백내장에 걸린 늙은 찌부를 들쳐 업고/ 찌부가 찌부가/ 부드러운 앞발로/ 살 살 살 등짝이나 긁어주었으면/ 하고 바랐지”(‘가려워진 등짝’)
그를 사랑했던 평론가도 지난해 세상을 떠나고 황병승도 죽음을 맞았다. 7월24일 경기도 고양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나는 결국 실패를 보여주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내일은 프로’) 그는 설명되지 않은 채, 혹은 오독된 채 스스로를 소문 속에 남기고 떠났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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