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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능제로, 성인지 감수성 제로

설렁썰렁
등록 2019-06-29 14:14 수정 2020-05-03 04:29
행사 영상 갈무리, 연합뉴스

행사 영상 갈무리, 연합뉴스

“울고 싶다.”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은 6월26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일반 국민 정서는 아랑곳 않고, 우리끼리 모여 낯 뜨거운 춤 춘다고 여성친화형 정당이 된다고 생각하나? 정말 힘 빠지고, 속상한 하루다”며 격한 감정을 토로했다.

장 의원을 울고 싶게 한 행사는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한국당 우먼페스타’였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조경태·정미경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와 여성당원 160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여성당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여성의 정치 참여를 장려하기 위해 한국당 중앙여성위원회가 주최했다.

행사 취지를 훼손한 문제의 장면은 시도별 대표 당원들의 장기자랑 시간에 연출됐다. 경남도당을 대표해 나온 여성당원 수십 명이 무대에서 율동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전을 펼쳤다. 음악이 끝날 무렵 이들이 돌면서 몸을 숙였고, 바지를 내렸다.

‘한국당 승리’. 여성당원들이 바지 속에 입고 있던 하얀 속바지 엉덩이 부분에 선명하게 새겨진 글자였다. 여성당원들은 속옷 차림으로 엉덩이춤을 췄다. 부인과 함께 행사에 참석한 황 대표는 이날 장기자랑에서 상을 탄 당원들을 추후 당 행사에 초청하겠다고 밝혔지만 해당 영상이 언론을 타고 빠르게 확산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당의 낮은 젠더 감수성을 지적하는 여론이 많았다. 장제원 의원도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들린다. 민망하니 사진은 붙이지 말아달라”고 했다.

한국당은 입장문을 내고 “해당 퍼포먼스는 교육 및 토론 이후 시도별 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사전에 예상치 못한 돌발적 행동이었으며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행사의 본질적 취지인 여성 인재 영입과 혁신정당 표방이라는 한국당의 노력이 훼손되는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으나 논란은 줄지 않았다.

한국당은 최근 황교안 대표의 즉흥적인 발언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6월20일 숙명여대를 찾은 황 대표는 “내 아들은 스펙이 하나도 없었다. 학점도 엉터리, 3점도 안 됐고 토익 점수도 800점이었다”며 케이티(KT)에 취업한 자신의 아들을 언급해 스스로 논란에 불을 댕겼다. 마침 검찰의 ‘KT 채용 비리’ 의혹 수사가 진행 중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황 대표는 아들의 학점과 영어 점수를 각각 3.29점(4.3만점), 925점으로 정정하며 “높은 점수를 낮춰서 말한 것이어서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발언했지만 취업난으로 고통받는 청년들 앞에서 아들 자랑을 한 모양새가 되면서 ‘공능제’(공감능력제로)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황 대표는 6월19일 부산상공회의소를 방문해 “외국인은 우리나라에 그동안 기여해온 바가 없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똑같이 임금수준을 유지해줘야 한다는 건 공정하지 않다”며 외국인의 최저임금을 낮춰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논란을 자처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국적 등을 이유로 한 차별적 처우를 금지하며, 국제노동기구(ILO) 협약도 국적·인종을 이유로 한 임금 차별을 금하고 있다.

한국당의 헛발질이 잇따르는 가운데 한국당 지지율은 20%로 주저앉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27일 tbs 의뢰로 실시한 6월 4주차(24~26일) 주중 집계 결과, 민주당 지지율은 지난주 대비 4.1%포인트 오른 42.1%, 한국당 지지율은 0.8%포인트 내린 29.2%를 기록했다고 밝혔다.(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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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태의 도전


[%%IMAGE5%%]6월25일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의 경기가 열린 서울 잠실야구장. 3-7로 지고 있던 LG 마운드에 오른 투수 한선태(25) 선수의 상기된 얼굴에 모든 야구팬의 시선이 쏠렸다. 38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비엘리트’(초·중·고 야구부를 거치지 않은 선수) 출신 선수가 프로 무대에 데뷔했기 때문이다.
그의 도전기는 ‘야구만화’ 같다. 2009년 중학생이던 한 선수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일 경기에서 임창용 선수(은퇴)가 던지는 모습에 반해 프로야구 선수를 꿈꿨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만 한 선수들로 구성된 고등학교 야구부에서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평범한 고교 생활을 마치고 비엘리트 선수 출신을 받아주던 세종대 야구부를 갔지만 마운드에서 공을 던질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는 일찍 병역 의무를 마치고 독립구단 파주챌린저스에 입단했다. 그런데 (그의 잠재력이 터져나온 것이지만) 만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사이드암 투수인 그의 최고 구속이 144㎞까지 올라갔다. 프로야구에서도 그 정도로 던지는 사이드암 투수는 많지 않다.
프로야구 구단 관계자들도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프로야구(KBO) 규약은 학생 야구 선수로 등록된 사실이 없는 선수에게 프로 입단을 허락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 KBO에 공문도 보냈지만 프로의 길은 열리지 않았다. 그의 간절함이 전해졌을까. KBO는 2018년 1월30일 규약을 개정하며 그와 같은 이들에게 드래프트 참가 기회를 줬다. 그리고 그는 6월25일, 26일 경기에 연이어 등판해 각각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성공 신화’를 썼다. 주인공은 한 선수지만 이 드라마의 ‘숨은 조연’은 KBO의 규약 개정이다.
청년들에게 도전 정신을 가지라며 “아들이 스펙 없이 대기업에 합격했다”(이것도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지만)고 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해야 할 일은 ‘아들 자랑’이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있는 ‘제2, 제3의 한선태’의 도전이 꽃피도록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게 정치의 역할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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