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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vs 인공지능

구글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 세기의 대결 앞둬… <네이처> 표지 장식… 환경·의료 등 일상에 활용 기대
등록 2016-02-06 01:24 수정 2020-05-03 04:28

종횡 19개의 줄. 이들의 엇갈린 곳 한가운데 검은 점(천원지방)이 놓였다. 주위 팔방으로 360개의 점들이 가지런하다. 그 위로 적과 내가 흑돌과 백돌을 번갈아가며 놓는다. 돌로 사방을 둘러싸 침입을 봉쇄한 공간(집)이 2개 이상 이어지면 살고, 아니면 죽는다. 전쟁이다.
바둑은 ‘2인 제로섬 완전정보 게임’으로 불린다. 두 명(2인)의 득실을 더하면 ‘0’이 되고(제로섬), 서로 정보를 완전히 공개한 채 싸운다는 것이다. 규칙은 단순하다. 도구가 흑돌, 백돌 둘뿐이다. 돌들의 역할도 별게 없다. 361곳 가운데 빈자리 아무데나 두면 된다. 마지막에 더 많은 집을 가진 사람이 이긴다.
경기는 대개 초반·중반·종반으로 나뉜다. 초반에는 전쟁을 앞두고 ‘진용’을 갖춘다. 30~50수까지 돌을 놓는 게 여기에 해당한다. 중반은 적군의 돌을 공격하거나 아군의 돌을 방어하는 피비린내 나는 육박전이 펼쳐진다. 전설적인 바둑천재 조훈현 9단이 이 단계에서 ‘전투의 신’(전신·戰神)으로 불렸다.
종반은 각자의 땅을 계산해 마지막 승부를 가름하는 피 말리는 과정이다. 의 주인공 최택(박보검 분)의 실제 모델 이창호 9단이 막판 반집차 승리를 따내는 것으로 ‘계산의 신’(산신·算神)이라 불렸다. 이전까지 반집차 승리는 우연 또는 ‘신의 영역’으로 생각됐다.
현대 과학이 풀지 못한 과제 ‘바둑 정복’

인터넷 검색 서비스 기업 구글은 1월28일 자사의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전인미답의 인공지능 기술로 국제적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렸다는 소식을 전했다. ‘알파고’는 오는 3월 바둑 현역 최고수인 이세돌 9단과 맞대결을 펼친다. 작은 사진은 <네이처> 표지 기사로 소개된 ‘알파고’. 연합뉴스

인터넷 검색 서비스 기업 구글은 1월28일 자사의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전인미답의 인공지능 기술로 국제적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렸다는 소식을 전했다. ‘알파고’는 오는 3월 바둑 현역 최고수인 이세돌 9단과 맞대결을 펼친다. 작은 사진은 <네이처> 표지 기사로 소개된 ‘알파고’. 연합뉴스

바둑은 2500년 전 중국에서 탄생했다. 현대 과학이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한 보드게임’이 바둑이다. 비슷한 모양과 체계를 가진 체스에서는 1997년 5월 세계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러시아)가 IBM사의 슈퍼컴퓨터 ‘딥블루’에게 패했다. 이후 인간이 체스 컴퓨터를 당하지 못하고 있다. ‘삼목놓기’는 1952년, ‘체커’는 1994년에 일찌감치 컴퓨터에게 정복당했다.

그러나 바둑 쪽에서는 글로벌 기업의 막대한 자금과 인공지능 분야 최고 전문가 수십 명이 투입되고도, 여전히 프로기사들을 넘어서지 못했다. 2012년, 바둑 프로그램 ‘젠’(ZEN)이 일본의 마사키 9단을 꺾었지만, 컴퓨터가 처음 4점을 먼저 두게 한 ‘네 점 접바둑’에서였다.

과학이 바둑을 정복하지 못한 이유는 뜻밖에도 ‘바둑의 단순함’에 있다. 모든 돌들이 특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거나 정해진 역할을 갖지 않기 때문에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바둑 한판을 마치는 경우의 수는 산술적으로 ‘361×(361-1)×(361-2)×…(361-360)’으로 계산할 수 있다. 숫자 ‘1’에 0을 200개 이상 이어붙여야 만들어지는 수치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학에서 10의 100승을 사실상 무한대로 보고, 이를 ‘구골’이라고 부른다(인터넷 기업 ‘구글’도 무한대 정보 검색을 제공하겠다는 뜻으로 ‘구골’을 빗대 지은 것이다). 바둑에서 생기는 경우의 수는 구골과 견줘도 ‘천문학적으로’ 많다.

그러나 일찍이 노자는 ‘바둑론’에서 “천하의 지극히 정밀한 것이 아니면 누가 여기(바둑)에 참여할 것이냐”고 물었다.(박치문, ) 2500년 뒤 ‘천하의 지극히 정밀한’ 컴퓨터가 바둑의 완전한 정복에 한 걸음 다가섰다.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 개발에 성공한 뒤, 관련 논문을 세계적 권위의 과학잡지 1월28일치(529호)에 게재한 것이다. 는 이날치 잡지 표지에 컴퓨터 집적회로 위에 바둑판을 새겨넣었다. 기사 제목은 ‘마침내 세계 바둑 챔피언을 깰 컴퓨터 프로그램(이 등장했다)’이었다.

는 왜 일개 ‘보드게임 마스터 프로그램’에 관한 논문을 게재했을까?

우선 알파고가 그동안 거둬온 성적이 놀랍다. 구글은 알파고가 최고의 다른 바둑 프로그램과 500차례 펼친 대국에서 499승1패를 거뒀다고 밝혔다. 승률 99.8%다. 일부는 네 점을 접어주고 이겼다. 논문에서도, 알파고는 기존 최강 프로그램으로 통하던 ‘크레이지 스톤’보다 1.5배가량 능력치가 높은 것으로 분석돼 있다.

주목할 점은 3회 연속 유럽바둑선수권을 따낸 판후이(2단)와 지난해 10월 다섯 차례 대결에서 5 대 0 완승을 거둔 대목이다. 컴퓨터가 프로바둑기사와 ‘호선’(맞대결·접바둑의 반대)에서 승리한 첫 사례다.

인간을 이기는 법? ‘더 인간처럼 생각하기’

구글은 알파고의 능력이 ‘인간과 비슷하게 생각하기’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바둑에서 생기는 천문학적 경우의 수를 계산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처럼 필요 없는 것을 골라내는 ‘인공지능’ 기술이 필수적이다.

특히 구글은 매번 최상의 돌 놓는 위치를 정하는 인공지능 ‘정책망’과 승자를 예측하는 ‘신경망’을 분리하는 기술에 집중했다. 또 다른 신경망 내부에서는 자체적으로 수천만 회에 이르는 바둑을 두면서, 막대한 승패의 기억을 모두 학습해 축적했다. 2030년께나 돼야 구현 가능한 기술로 여겼던 것들이다. 이 밖에도 알파고에는 일반적인 기계학습, 복잡도 이론, 조합게임 이론, 인지심리학 등 최첨단 기계·과학·심리 이론이 집적돼 있다.

미국의 한 컴퓨터 과학자는 “바둑은 인공지능의 초파리”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구글 딥마인드 공동창업자이자 구글엔지니어링 부사장인 데미스 하사비스는 “알파고에 적용된 기술이 (인공지능이 필요한) 기후 모델링이나 복합성 질환 분석 같은 현대사회의 난제들을 해결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를 위해 구글은 알파고 기술을 개발 단계부터 인공지능 범용 기술로 개발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글로벌 기업 페이스북이 구글과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개발에 열띤 경쟁을 벌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알파고는 오는 3월 서울에서 현역 바둑 최고수 이세돌 9단과 바둑 대결을 펼친다. 바둑 프로그램으로서 알파고가 받을 수 있는 최고난도 테스트다. 인공지능 개발 능력이 어느 단계까지 왔는지를 평가받는 한판이기도 하다. 이세돌 9단은 ‘구글’을 통해 “알파고의 도전이 바둑 역사에서 중요한 경기라고 판단해 도전을 받아들였고 승리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이 9단이 강력한 인공지능 컴퓨터와 대결해본 경험이 없다보니, 알파고가 한두 판 정도 이길 수도 있겠지만, (알파고가) 모든 경기를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알파고는 단순히 기계의 연산 능력을 극대화한 것일까? 혹은 공상과학(SF) 영화에서처럼 인간과 닮아가는 것일까? 데이비드 실버 구글 딥마인드 강화학습 총괄자는 1월26일 아시아·태평양 지역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기계를 넘는 기계’ 첫발

“알파고는 분명히 기계다. 하지만 알파고와 경기했던 사람들은 ‘알파고가 사람같이 바둑을 두는 고유의 스타일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람과 바둑을 둔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해야 했다는 것이다. 어떤 강력한 체스 프로그램들도 인간 고수들을 따라하지 못한 채, 설계된 방식대로만 움직였다. 알파고는 처음부터 실제 바둑 경기를 보며 지식과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조금 더 사람 같은 방식으로 바둑을 두는 것 같다.” ‘기계를 넘어선 기계’ ‘진화가 가능한 기계’라는 설명이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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