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비호지킨림프종 등 반도체 노동자의 발병 위험이 높다는 사실이 정부 역학조사로 확인됐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등이 10년 넘게 주장해온 내용이 마침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안전보건공단은 5월22일 ‘반도체 제조공정 근로자에 대한 건강실태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공단 연구진이 2009년부터 10년 동안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회사 6곳에서 일한 전·현직 노동자 20만1057명을 추적조사한 결과 여러 암종에서 발병과 사망 위험이 높게 나타났다.
10년간 6개 반도체회사 20만1057명 추적조사대표적으로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고 황유미씨가 걸렸던 ‘백혈병’이 있다. 반도체 공장 여성 오퍼레이터가 백혈병에 걸릴 위험은 전체 노동자보다 1.59배 높고 이로 인해 숨질 위험은 2.81배 높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같은 혈액암인 비호지킨림프종의 경우 여성 오퍼레이터의 발병 위험은 2.19배, 사망 위험은 3.68배 높았다. 주로 2010년 이전 입사자에게서, 또 20~24살 젊은 여성 노동자에게서 발병 위험이 높았다.
공단 연구진은 다른 암종의 경우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남겼다. 연구진은 “갑상샘암, 위암, 유방암, 뇌 및 중추신경계암, 신장암 등의 위험비가 증가했다”면서도 갑상샘암과 여성의 위암과 유방암은 직장 종합건강검진 확대 등으로 발병 사실을 더 많이 알게 됐을 수 있다며 “추적관찰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피부의 악성흑색종, 고환암, 췌장암, 주침샘암, 뼈·관절암, 부신암, 비인두암 등은 “사례 수가 충분치 않아 직무에 의한 영향을 판단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일부 암종은 남성 장비 엔지니어, 여성 오퍼레이터 등에서 발생비가 높게 나타나 추적관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올림은 공단 발표를 환영하면서도 이번 연구의 한계를 지적했다. 가장 먼저 “더 큰 위험에 노출됐을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역학조사에) 포함되지 못한 점”을 문제 삼았다. 반도체 공장의 위험한 작업을 사내외 하청업체로 외주화한 탓에 2010년 이후 입사자에게서 발병자가 드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또한 1998년 전의 입사자를 역학조사에 포함하지 않은 점, 반도체 공장의 작업 환경과 화학물질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암의 원인을 찾지 못한 점 등을 지적했다. 반올림은 “위암이나 유방암, 갑상샘암의 경우 단지 건강검진 기회가 많아서 증가한 게 아니라 야간 교대 근무나 (공장에서) 방사선 노출의 영향 때문은 아닌지 검토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위험 떠안은 하청업체 노동자도 살펴야이번 연구 결과로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다 각종 혈액암에 걸린 노동자가 산업재해 승인을 받기는 더 쉬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백혈병·악성림프종 등 8개 질환의 경우 산재 승인 과정을 일부 간소화했다.
황상기 반올림 대표는 “우리 유미가 산재로 인정받기까지 7년2개월이 걸렸고, 이번 연구에 10년이 걸렸다. 정부가 해도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일을 피해자가 밝히는 것은 어렵다. 정부도 함께 산재 입증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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