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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는 나보다 오래 살 텐데…”

임신 35주 만에 태어난 다운증후군 아기 희연이, 현재 법적으로 2세 질환은 산재로 인정되지 않아
등록 2019-04-03 10:46 수정 2020-05-03 04:29
여섯 살 희연과 엄마 성희씨. 박승화 기자

여섯 살 희연과 엄마 성희씨. 박승화 기자

여섯 살치고는 작았다. 책상 밑에 숨으니 보이지 않았다. 정신없이 웃고 뛰어다니는 모습은 다른 아이들과 다름이 없었다. 3월26일 만난 희연(가명)이는 다운증후군 질환이 있었다. 여섯 살이지만 키는 세 살, 지능은 두 살 아이와 비슷하다. 아직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난소에 많은 물혹이 생겼지만…

희연의 엄마 성희(가명)씨는 2002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삼성전자에 들어갔다. 웨이퍼(반도체 재료)를 기계에 넣고 굽는 작업을 했다. 웨이퍼가 수십 장씩 든 무거운 상자를 들어 나르는 일은 예사였다. 상자를 열어서 웨이퍼를 꺼낼 때면 종종 화학물질 냄새를 맡곤 했다. 밤샘근무를 포함한 교대근무가 가장 힘들었다. 멀미처럼 어지럼증이 나기도 했다.

삼성에서 10년 넘게 일하는 내내 생리불순이 있었다. 일정한 주기를 찾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두세 달 생리가 없다가 한번 시작하면 한 달 넘게 이어지기도 했다. 의사는 호르몬 불균형으로 난소에 물혹이 많이 생기는 다낭성난소증후군이라고 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성희씨는 아이를 가지는 것도 힘들었다. 한 차례 유산했고, 다시 아이를 가졌을 땐 임신성 당뇨를 겪었다. 성희씨만 그런 건 아니었다. 주변에 불임 치료를 다니는 동료가 여럿 있었다.

희연이는 임신 35주에 미숙아로 태어났다. 심장에 비정상적 구멍이 있었고(심실중격결손) 이로 인해 뇌출혈까지 생겼다. 의사는 아이가 숨을 제대로 못 쉬어서 걷는 데 지장이 있을 거라고 했다. 다운증후군이 있다는 사실은 그다음에 알았다. “아기한테 너무 미안해서, 아기랑 같이 죽고 싶다… 가족을 어떤 낯으로 보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다행히 심장 수술은 잘 마쳤다. 희연이는 여러 치료가 필요했다. 다운증후군 아이가 받는 언어치료, 인지치료, 감각통합치료 등이다. 비용이 한 달에 52만원 이상 드는데 나라에선 22만원을 지원한다. 사비로 30만~40만원은 매달 들여야 했다. 모두 감당할 수 없어 치료 횟수를 줄였다. “언어치료를 일주일에 두세 번은 해야 한다는데 저는 한 번밖에 못 시켰거든요. 지금 시기에 말을 못 배우면 커서도 잘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감해요.”

“출산한 경우 아예 신청이 안 된다”

성희씨는 아이의 선천성 질환을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알아봤다. 근로복지공단에 문의했지만 “유산이라면 몰라도 출산한 경우 아예 신청이 안 된다”며 단칼에 거부당해 마음에 상처만 남았다. 현재 법적으로 2세 질환은 산재로 인정되지 않는다. 산재는 노동자 본인의 질병만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2009년 제주의료원에서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낳은 간호사 4명은 산재를 인정해달라고 행정소송을 했다. 현재 대법원에 사건이 계류된 상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고용노동부는 우송대 산학협력단에 ‘자녀 건강 손상에 대한 산재보상 방안’ 연구용역을 맡겼다. 최근 완성된 연구보고서에는 2세 질환을 산재로 인정하고 보상하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를 참고해 3월28일 산재보상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제 국회가 희연이와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자녀를 도울 차례다.

성희씨는 당장 치료비보다 큰 걱정이 있다. “뉴스를 보면 여성장애인 성폭력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아이의 장애는 평생 가는 건데…, 내가 늙고 없어도 아이를 돌봐주는 시스템을 얻는 게 제가 원하는 목표예요.” 성희씨는 법이 바뀌면 산재 신청을 할 계획이다.

첨단전자사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선천성 질환아를 낳을 위험도 크다. 반도체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자녀에게 선천성 질환이 일반인 자녀보다 1.8배 더 많이 나타난다거나, 화학물질 노출 집단 자녀가 비노출 집단 자녀보다 선천성 질환으로 3.3배, 심장 이상으로 4.2배까지 많이 숨질 위험이 있다는 결과 등이 있다(2014년 가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을 통해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입수해 20살 미만 건강보험 피부양자 전체와 삼성전자·하이닉스에 재직 중인 노동자의 자녀들을 비교한 결과, 2008년 린징쥔 대만국립대 교수팀이 반도체 회사 8곳에서 일했던 남성 노동자 자녀 5702명의 건강 상태를 추적한 결과).

신규 제보 중 ‘2세 질환’ 세 번째로 많아

앞서 ‘반올림 시즌2’ 보도에서도 2세 질환 제보자 수가 많았다. 삼성전자와 반올림 사이의 중재안이 발표된 2018년 11월1일부터 2019년 2월13일까지 반올림에 들어온 신규 제보자 220명을 분석한 결과, 2세 질환은 19명으로 세 번째로 많은 병명이었다. 이 중 상당수는 중재안 보상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들에게 남은 방안은 산재 인정뿐이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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