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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다녔으면 이랬을까요

서울반도체의 이가영씨, 악성림프종으로 4월8일 사망… 근로복지공단 산업재해 인정했지만 회사는 취소소송
등록 2019-04-13 11:19 수정 2020-05-03 04:29
이가영씨가 투병 중 찍은 사진. 반올림 제공.

이가영씨가 투병 중 찍은 사진. 반올림 제공.

“벚꽃을 엄청 좋아했어요. 올해도 안양천 둑방길 벚꽃 보여준다고 했는데….”

어머니 이아무개(52)씨는 딸의 장례식장에서 울먹이다 말끝을 흐렸다. 딸 이가영(27)씨는 벚꽃이 한창이던 4월8일 밤 11시43분 사망했다. 악성림프종에 걸려 투병 중이었다. 아름다울 가, 꽃필 영. 이름에 담긴 ‘꽃처럼 아름답게 살아라’는 어머니의 바람은 이른 바람에 꺾였다.

[%%IMAGE3%%]딸은 초록색 담즙까지 토하는데…

가영씨는 반도체 노동자였다. 2011년 5월부터 에스피반도체통신에서 일하다 2015년 2월 서울반도체로 파견근무를 갔고, 같은 해 5월 서울반도체 정규직이 됐다. 서울반도체는 2015년 매출 1조원을 넘긴 세계 5위의 발광다이오드(LED) 제조업체다. 가영씨는 서울반도체에서 주야 2교대로 매일 12시간씩 일주일에 6일 일했다. 늘 서서 일했고 휴가를 쓰기 힘든 분위기였다. 가영씨의 산업재해 신청을 대리했던 정익호 노무사(노동법률사무소 한벗·반올림 지원 노무사 모임)가 전한 말이다.

가영씨는 반도체 몰딩 공정에서 일했다. 반도체 칩을 다른 화학물질로 감싸 보호하는 과정이다. 정 노무사는 “2013년 서울반도체를 다니던 한 노동자가 급성백혈병에 걸려 산재를 신청했고,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 서울반도체 작업장에서 발암물질인 벤젠과 포름알데히드가 노출 기준 이하이긴 하지만 검출됐다”고 말했다.

2017년 9월 가영씨는 악성림프종(역형성 대세포림프종)을 진단받았다. 항암치료를 받던 2018년 중순 서울반도체를 사직했다. 보상금은 없었다. 몸이 좋아지는가 싶더니 같은 해 9월 재발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10월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는 인정받아 무거운 치료비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올해 1월 조혈모세포 이식수술을 받았다.

2월 초, 퇴원하고 사흘째 되던 날, 서울반도체 인사팀장이 가영씨 집으로 찾아왔다. 회사는 산재 인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산재 취소 소송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가영씨 어머니는 “항암치료 약물이 너무 독해서 초록색 담즙까지 다 토하는데, 병원비가 너무 많이 나와 산재 보험으로 간신히 견디는데, 회사가 위로는 못할망정 소송을 한다는 게 말이 되냐”며 항의했다. 인사팀장은 가영씨 집을 찾기 전인 1월에 이미 소송한 상태였다. 반올림이 맡은 사건 중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를 인정했는데 회사가 불복해 소송한 경우는 처음이다.

가영씨는 몸 상태가 안 좋아져 3월에 다시 입원했다. 마지막 보름 동안은 밥 한술 뜨지 못했다. 가영씨는 “엄마가 꼭 싸워서 이겨달라”고 했고, 이씨는 “엄마만 믿고 정신 놓지 말라”고 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만약 우리 가영이가 삼성에 다녔더라면 이러지 않았을 거예요.” 이씨는 딸이 작은 반도체 회사에 다녔기 때문에 2019년에도 이런 고통을 겪는다고 생각했다. 질병에 걸린 노동자들을 지원해주는 보상위원회가 꾸려진 곳은 삼성전자·LG디스플레이·SK하이닉스 등 일부 거대 기업이다. 이들을 제외한 수많은 첨단전자산업 회사에 다니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산재 피해를 당해도 제대로 도움받지 못한다.

서울반도체 쪽은 가영씨 병이 산재가 아니라고 본다. 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에서 “서울반도체 작업장에는 유해물질을 직접 취급하는 공정이 없다”며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작업환경조사에서도 벤젠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포름알데히드의 경우 산후조리원과 어린이집 기준(0.075ppm)의 3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치는 극미량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벤젠 혹은 포름알데히드에 노출된 것과 해당 질병은 인과관계가 없다는 다수의 논문과 전문가 견해가 있다는 것도 덧붙였다.

다만 이에 대한 반론이 있다. 윤충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작업환경조사 때는 반도체 회사에서 쓰는 화학물질 중 극히 일부분만 측정한다. 반응 부산물이나 영업비밀 물질은 아예 측정에서 제외된다. 또한 미리 통보하고 가기 때문에 실제 고농도 상황이 측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법정 노출 기준 이하로 화학물질이 측정됐더라도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법정 노출 기준의 10% 이하인 사업장에서도 직업병으로 인정된 사례가 많다”고 했다.

법정 노출 기준 10% 이하에서도 인정되기도

서울반도체 쪽은 가영씨의 노동환경도 안전했다고 말한다. 입장문에서 “해당 직원은 주당 평균 51.2시간으로 이는 법정 근로시간 기준을 초과하지 않는다”며 “근무기간 또한 짧았고(총 2년7개월, 유해물질에 노출됐다고 주장한 배합 공정은 3개월), 여러 유해물질에 대한 정기적 특별 건강검진 결과도 모두 정상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산업재해 인정 취소 소송을 취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영씨는 투병 중에 하윤으로 이름을 바꿨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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