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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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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다녔지만 반도체·LCD부서 아니라 보상 못 받아

1998~2003년 삼성전자 수원공장 시스템가전사업부 최성관씨

급성림프구성백혈병ㅣ사업부서가 달라 보상 범위 밖
등록 2019-03-05 11:03 수정 2020-05-03 04:29
최성관씨가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 다닐 당시 만들었던 사내 스포츠클럽 회원증을 보여주고 있다. 박승화 기자

최성관씨가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 다닐 당시 만들었던 사내 스포츠클럽 회원증을 보여주고 있다. 박승화 기자

최성관(43)씨의 집은 서울 성동구 용답동 빌라촌에 있다. 어머니와 형 가족이 함께 30년 넘은 낡은 집에 모여 산다. 그는 하루 종일 집 밖을 나가지 않는다. 두꺼운 성경책을 읽는 게 중요한 일과다.

전라도가 고향인 최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8년간 탁구를 해 지역대회에서 우승한 적도 있다. 덕분에 고등학교 졸업 뒤 특채로 1994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처음에는 모니터 사업부에 있었는데 군대를 다녀와 복직한 뒤 1998년 말부터 삼성전자 수원공장 시스템가전사업부에서 일했다. 에어컨 열교환기를 검사하는 일을 했다.

컨베이어 벨트 위로 열교환기가 30초에 하나씩 지나갔다. 최씨는 열교환기를 체임버에 넣고 불량이 있는지 검사했다. 워낙 빠른 속도로 지나가 늘 바쁘게 일했다. 라인이 밀리지 않으려면 쉬는 시간에도 미리 해놔야 했다. 체임버 내부가 더러워지면 시너(유기용매)로 닦았다. 시너에 발암물질이 있어 위험하다거나 몸에 나쁘니까 주의하라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시너로 체임버를 닦으면 깨끗해져서 좋다고만 생각했다.

2003년 7월. 몸이 점점 피곤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침에 밥을 먹으면 속이 메슥거리면서 불쾌감이 생겼다. 오후가 되면 몸살이 난 것처럼 허리에 통증이 왔다. 점점 더 뜨거운 물로 샤워해야 피로가 풀렸다. 빈혈이 오고 한약을 지어 먹었는데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내 병원에 갔더니 당장 강북삼성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의사는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이라고 했다. 믿기지 않아 오히려 담담했다. 탁구를 배울 때 불평불만을 입 밖으로 표현하지 않도록 훈련받았다. 혼자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친형이 골수이식을 해줬다. 치료받는 동안 회사 동료들이 단체로 와서 수혈을 해주기도 했다. 과장님과 대리님은 고생한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회사 병가는 최대 2년이었다. 복직하고 싶었지만 몸이 회복이 안 돼 2006년에 퇴사했다.

한동안 집에 누워만 있었다. 골수이식 후유증인 숙주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약이 몸을 힘들게 했다. 토하면 위액이 파랗게 올라왔다. 고통을 이길 방법은 죽은 사람처럼 잠을 자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렇게 5년을 보내는 동안 우울증이 왔다. 어릴 때부터 운동하던 사람이 집에만 누워 있자 생긴 일이다. 몸과 정신이 다 무너지니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사회생활도 불가능했다. 형과 형수 등 가족의 뒷바라지로 목숨을 이었다. 어머니는 파지를 주우러 다니셨다. 정신적으로 이겨내기 위해 신학대학을 다녔다. 마음속에 조금씩 기쁨이 생겼다. 신앙생활이 삶의 버팀목이 됐다. 최근에는 다시 몸과 마음이 안 좋아져 집에만 있다.

산재 신청은 아예 생각도 못 했다. 작은형이 직장에서 일하다 손을 다쳤을 때도 산재 인정받는 게 엄청 힘들었다. 과학적으로 업무 연관성을 증명하기 힘든 백혈병은 더군다나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포기했다. 일찌감치 관심을 끊었다.

2018년 11월 삼성과 반올림 사이의 중재안이 발표됐다. 친척이 기사를 보고 “넌 어떻게 되니”라고 물었다. 할 말이 없었다. 그때야 기사를 찾아봤다. 그동안 싸워온 피해자들이 고생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1월9일 반올림으로 전화했다. 보상은 삼성전자 반도체·LCD 사업부에만 해당했다. 최씨가 일했던 가전부서는 중재안 보상 범위 바깥이다. ‘나도 당했는데, 왜 안 될까.’ 그러다 문득 같은 교회에 다니던 사람이 삼성 협력업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렸던 게 떠올랐다. 보상이 확장돼야 할 문제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산재 신청을 하려고 결심했다. “사회적 인식과 체계가 바뀌었으면 해요. 우리처럼 힘없는 사람은 직업병 근거 찾기도 힘들어요. 과학자들이 밝힐 걸 밝히고, 산재 담당자들은 마땅히 해야 할 매뉴얼대로 정직하게 했으면 좋겠어요.”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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