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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의 테크놀로지

“이태원 한가운데서 택시 잡지 마세요. 어차피 안 태웁니다”
등록 2019-01-05 22:37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택시를 탔다. 친구들과 시끌벅적하게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택시는 바로 근처에 있었다. 이 카카오택시라는 건 카카오의 의도와는 달리 좀처럼 잡히지 않는 서비스다. 목적지가 지나치게 가까울 때는 어떤 택시도 콜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연말연시 서울 강남이나 종로, 이태원에서 카카오택시를 잡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다행히도 이날은 택시가 금방 왔다.

“이태원 한가운데서 택시 잡지 마세요”

택시 기사는 말이 많은 분이었다. 보통 때라면 그냥 잠든 척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술에 얼큰하게 취한 상태였다. 게다가 2019년 1월1일이다. 새해에는 따뜻한 마음가짐이 필요한 법이다. 기사는 택시를 운전하는 것의 고단함에 대해 말을 시작했다. “얼마 전 취객에게 한 대 맞았어요.” 슬슬 궁금해졌다. “대체 무슨 일로 맞으셨는데요?” “택시에서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주먹을 날리시더라고요. 그대로 경찰서에 갔어요.” 혹시 과장된 무용담이 아닌가 잠깐 생각하며 물었다. “그런 일이 자주 생기나요?” “그럼요. 지난달만 해도 두 명한테 맞았습니다.” 끔찍한 일이었다. 우리는 택시 기사의 불친절함에 대해 종종 불만을 토로하지만 택시 기사도 승객의 불친절함에 대해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기사는 이태원을 지나다 나에게 몇 가지 팁을 전수했다. “이태원 한가운데서 택시 잡지 마세요. 어차피 안 태웁니다” “안 태우는 이유가 뭔가요?” “워낙 취객이 많거든요.” 그는 조금 떨어진 녹사평역 앞에서 택시를 잡으라고 했다. “그쪽으로 가시면 택시들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나는 택시라면 언제 어디서든 승객을 골라잡지 않고 태워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말은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심야에 택시를 잡는 건 점점 힘든 일이 되어간다. 승차 거부는 종종 벌어진다. 택시를 잡았다가 “반대편으로 건너가서 잡으셔야지, 원…”이란 말을 들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그때마다 한국 택시 서비스의 초라함에 대해 페이스북에 종종 써 갈겼다.

확실히 여론은 택시에 호의적이지 않다. 카카오가 카풀 서비스 기사를 모집하자 택시업계는 폭발했다. 파업이 이어졌다. 사람들의 반응은 꽤나 싸늘했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가 5천 명에게 조사한 설문 결과를 보니, 카풀 서비스 24시간 허용에 찬성한 응답자는 56%였다. 금지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겨우 8%였다. 역풍에 부딪힌 택시업계는 기자간담회를 열어 “자정 노력과 자구 노력을 해나가겠다”고 발표했다. 상습적인 승차 거부 운전자를 퇴출하겠다고도 했다. 그건 일순간에 바뀔 수 있는 문화는 아닐 것이다. 택시요금이 오른다고 갑자기 서비스가 좋아질 거라는 보장도 없다.

서비스, 사람과 사람이 주고받는 것

언젠가는 차량 공유 서비스가 한국에서도 합법화가 될까? 우버는 택시업계의 반발로 철수했다. 카풀 스타트업 ‘풀러스’는 규제에 막혀 직원을 대거 줄이고 대표도 사퇴했다. 한국의 택시업계와 정부는 차량 공유와 카풀 서비스에 호의적이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이 투쟁의 결과를 알고 있다. 가두리양식장처럼 모든 것을 감싸고 보호할 수만은 없는 시대가 이미 왔다. 공유경제는 막을 수 없는 물결이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택시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기사는 내리는 나에게 큰 목소리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말했다. 나도 기사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이 교환한 진심의 말이었다. 모든 서비스는 사람과 사람이 주고받는 것이다. 그 사실 어딘가에 상생의 길이 있다. 지나치게 희망적인 결말이지만, 결국 우리는 테크놀로지 시대에도 상생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도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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