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문 구독을 시작했다. 신문을 구독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지난가을 일본을 여행하고 나서다. 나는 여행지에서 타인의 생활을 엿보는 것을 좋아한다. 유명한 관광지에는 가지 않으면서 동네 찻집을 기웃거리거나 시장을 둘러보며 생필품을 구경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여행 중에는 내키는 대로 골목길을 걸어다니며 오래되고 허름한 찻집을 찾아 들어간다. 거기에는 분명 근처에 살며 자주 드나드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사람들이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가만히 앉아 있거나, 카운터에 놓인 작은 텔레비전을 보거나, 무언가를 손에 들고 읽고 있다. 특히 아침에는 신문을 가지고 들어와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꼼꼼히 읽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나는 여행지에서 보내는 그 아침 시간을 좋아한다. 종이 신문을 넘길 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도, 조용히 연기를 피워올리며 재떨이에 놓인 담배도, 모두 말이 없어 카운터에서 커피 물이 쪼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좋기만 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싱싱한 신문</font></font>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타인의 일상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 구독을 신청하자, 바로 다음날 아침 문 앞에 신문이 놓였다. 일상에 없던 새로운 것이 도착해 기분을 좋게 했다. 오늘치 읽을거리를 집어드는 행위도 꽤나 싱싱하게 여겨졌다. 언젠가 집집마다 신문이 놓여 있어 예사롭던 일이 2018년 끝자락에 새롭고 드문 일이 되었다는 것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제 종이 신문은 날마다 나와 한 공간에 있으면서 늘 눈에 띄는 물건이 되었다.
여행이 계기가 되어 신문을 구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무심코 받아본 물건 하나가 내 심중을 이렇게나 많이 바꿔놓을 줄은 몰랐다. 매일 아침 눈떠 신문을 읽으며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일 뿐이고 저녁에야 겨우 신문을 펼쳐보는 날이 더 많다. 아침이면 어제 못한 일들과 오늘은 반드시 마쳐야 하는 일들 사이에서 허둥대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다 해가 지고 저녁이 오고 뭐가 됐든 더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신문을 펼친다.
종이 신문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지금은 있을 것이다. 인터넷 기사를 스크롤하며 읽는 것과 종이로 인쇄돼 나온 기사를 읽는 것이 이렇게 다를 줄은 십수 년 만에 다시 종이 신문을 꼼꼼히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볼 때는 그 기사의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는데 종이 신문은 내가 읽을 기사의 분량이 한눈에 들어와 각 기사의 규모를 알 수 있다. 전체 규모와 틀을 먼저 파악하고 그다음 세부를 짚어가는 것이 나와 궁합이 잘 맞아 종이 신문이라는 물성이 주는 즐거움에 푹 빠져들었다.
대체로 저녁이면 아침에 받아놓은 신문을 손에 쥐고 앉아서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빠르게 훑어본다. 그런 뒤 첫 장으로 돌아와 기사를 읽고는 왼팔을 크게 벌려 반원을 그리며 종이를 뒤로 넘기고 다음 장을 읽는다. 이 모든 행위와 감상이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때아닌 신문 타령일까 고리타분해할지도 모르겠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신문도 나도 없어지는 것일까</font></font>그리하여 언젠가는 종이 신문도 없어지게 될까. 비디오대여점과 레코드점이 사라졌듯 서점도 자취를 감추고 종이책도 사라지게 될까. 물성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붙잡게 될까. 다른 대체물이 전혀 없는 세상에서 온갖 애플리케이션이 깔려 있는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다가 잠들기 전에야 머리맡에 내려놓게 될까.
모르겠다. 그저 모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무서워서. 겁이 나서. 여전히 내가 마음껏 좋아하는 것들이 이미 옛것이 되었고 그리하여 빠르게 자취를 감추는 것을 지켜보다가 마지막에는 나도 이 세상에서 없어질 것이다. 홀가분한 생각도 들지만, 나는 조금은 슬픈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유진목 시인<font size="2">여럿에게 말을 거는 마음으로 혼자 있는 방에서 썼습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대답하고, 안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해에는요.*유진목 시인의 노 땡큐! 연재를 마칩니다.</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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