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갑질 명예의 전당’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걸까. 야구방망이로 노동자를 패고, 땅콩 때문에 비행기를 되돌리고, 물컵을 던지고 폭언을 퍼붓던 이들이 기억에서 희미해질 무렵, 갑질계의 ‘샛별’이 또 등장했다. 탐사보도 전문매체인 와 이 10월30~31일 공개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직원 폭행 영상에 수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다. 직원 폭행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 염색을 강요하거나, 회식 때 마늘을 강제로 먹이고, 냉면을 먹지 않는다고 퇴사시키는 등 양 회장의 엽기적인 행각은 “이 구역의 갑질 최고는 나야”라고 외치는 듯, 앞선 ‘갑질 선배’들의 존재감마저 지우고 있다. 영상이 공개된 뒤 기업 정보 공유 플랫폼 ‘잡플래닛’을 살펴보니 양 회장이 운영하는 회사 리뷰에 “강압적으로 술과 담배를 권함” “이상한 것들(술·담배·머리 탈색 후)을 권함”이라는 내용이 기록돼 있었다. 직원에게 왕처럼 군림해온 그의 만행은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이었던 것이다. 직장인들이 자신의 처지를 자조적으로 칭하는 표현 중에 ‘사축’(회사의 가축처럼 일하는 직장인)이라는 말이 있다. 양 회장은 닭이나 직원을 구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양 회장은 11월1일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리고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양 회장의 갑질은 특정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그 강도만 다를 뿐 ‘갑질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직장 내 각종 ‘갑질’을 폭로한 이들의 도우미 역할을 해온 단체인 ‘직장갑질119’가 11월1일 출범 1주년을 맞아 공개한 자료를 보면, 그동안 받은 제보가 총 2만2810건이나 된다 한다. 갑질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양 회장에게 폭행당한 피해 직원의 말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맞은 뒤 경찰에 신고해도 양 회장은 하나도 손해 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양 회장은 돈도 많고 주변에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 사람들이 나를 또 해코지할 수 있으니까 아예 신고를 못했습니다.” 억울하고 황당한 일을 당해도 ‘을’들이 속으로 삭여야 하는 사회가 계속되는 한 제2, 제3의 양 회장이 나올지 모른다. 그런데 양 회장은 사과문에서 고개를 숙이면서도 “그저 회사 조직을 잘 추슬러야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저의 독단적 행동”이라는 표현을 썼다. 여전히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다면 ‘갑질의 계보’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영화 속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의 대사는 이럴 때 돌려줘야 한다. “어이가 없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블라블라/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 종범은 어디에
나만 불편한가
2010년 6월 서울의 1호 ‘진보 교육감’ 곽노현은 “유치원이 없는 55개 동에 공립유치원을 세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즈음 교육부의 고위 간부는 기자들과의 점심 자리에서 곽 교육감을 백면서생쯤으로 치부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치원은 건들면 안 되는데, 역시 진보는 현실을 너무 모른다.” 한유총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게 ‘현실적’이라는 교육부 고위 간부의 인식은 유구히 ‘인수인계’돼왔을 겁니다. 정권과 무관하게요. 유치원 이슈가 터지기 전 교육부가 세운 내년도 국·공립 유치원 신설 규모는 500개 학급이었습니다. 유치원 비리가 터진 뒤에야 교육부는 이를 두 배 수준인 1천 학급으로 올렸습니다.
종범은 교육부 말고 또 있습니다. 10월31일 국회에서 열린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 대안 마련 토론회에서 김거성 전 경기도교육청 감사관은 “감사 과정에서 수사를 의뢰해도 검찰은 사립유치원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할 뿐이었다. 그런 사람이 우수 검사로 선정됐다”고 말했습니다. 원장들만 매 맞는 상황, 저만 불편한가요?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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