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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직원 폭행
등록 2018-11-03 17:42 수정 2020-05-03 04:29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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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계 떠오르는 샛별

이제는 ‘갑질 명예의 전당’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걸까. 야구방망이로 노동자를 패고, 땅콩 때문에 비행기를 되돌리고, 물컵을 던지고 폭언을 퍼붓던 이들이 기억에서 희미해질 무렵, 갑질계의 ‘샛별’이 또 등장했다. 탐사보도 전문매체인 와 이 10월30~31일 공개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직원 폭행 영상에 수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다. 직원 폭행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 염색을 강요하거나, 회식 때 마늘을 강제로 먹이고, 냉면을 먹지 않는다고 퇴사시키는 등 양 회장의 엽기적인 행각은 “이 구역의 갑질 최고는 나야”라고 외치는 듯, 앞선 ‘갑질 선배’들의 존재감마저 지우고 있다. 영상이 공개된 뒤 기업 정보 공유 플랫폼 ‘잡플래닛’을 살펴보니 양 회장이 운영하는 회사 리뷰에 “강압적으로 술과 담배를 권함” “이상한 것들(술·담배·머리 탈색 후)을 권함”이라는 내용이 기록돼 있었다. 직원에게 왕처럼 군림해온 그의 만행은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이었던 것이다. 직장인들이 자신의 처지를 자조적으로 칭하는 표현 중에 ‘사축’(회사의 가축처럼 일하는 직장인)이라는 말이 있다. 양 회장은 닭이나 직원을 구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양 회장은 11월1일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리고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양 회장의 갑질은 특정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그 강도만 다를 뿐 ‘갑질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직장 내 각종 ‘갑질’을 폭로한 이들의 도우미 역할을 해온 단체인 ‘직장갑질119’가 11월1일 출범 1주년을 맞아 공개한 자료를 보면, 그동안 받은 제보가 총 2만2810건이나 된다 한다. 갑질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양 회장에게 폭행당한 피해 직원의 말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맞은 뒤 경찰에 신고해도 양 회장은 하나도 손해 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양 회장은 돈도 많고 주변에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 사람들이 나를 또 해코지할 수 있으니까 아예 신고를 못했습니다.” 억울하고 황당한 일을 당해도 ‘을’들이 속으로 삭여야 하는 사회가 계속되는 한 제2, 제3의 양 회장이 나올지 모른다. 그런데 양 회장은 사과문에서 고개를 숙이면서도 “그저 회사 조직을 잘 추슬러야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저의 독단적 행동”이라는 표현을 썼다. 여전히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다면 ‘갑질의 계보’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영화 속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의 대사는 이럴 때 돌려줘야 한다. “어이가 없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블라블라/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 종범은 어디에


나만 불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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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불편한가.” tvN 월화 드라마 최고 시청률(14.4%)을 찍었다는 세자 저하가 유행시킨 말입니다. 10월29일 국회에 나와 “직원들 봉급 주려고 차도 팔고 집도 팔았다”며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힌 억울함을 토로한 전북 지역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지회장, 그러나 읍소는 증발됐고, 쓰고 나온 헤드랜턴과 입고 나온 짝퉁 명품만 또다시 뭇매를 맞았습니다. 교육부를 출입한 적 있는 저는, 불편합니다. 기타 ‘착한’ 원장들이 불쌍해서요? 그럴 리가요. 유치원 비리가 몇몇의 악행이나 선행으로 왔다갔다 할 문제는 아니지요. 불편한 이유는 주범만 매 맞고 종범들은 면피하는 상황 때문입니다.
2010년 6월 서울의 1호 ‘진보 교육감’ 곽노현은 “유치원이 없는 55개 동에 공립유치원을 세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즈음 교육부의 고위 간부는 기자들과의 점심 자리에서 곽 교육감을 백면서생쯤으로 치부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치원은 건들면 안 되는데, 역시 진보는 현실을 너무 모른다.” 한유총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게 ‘현실적’이라는 교육부 고위 간부의 인식은 유구히 ‘인수인계’돼왔을 겁니다. 정권과 무관하게요. 유치원 이슈가 터지기 전 교육부가 세운 내년도 국·공립 유치원 신설 규모는 500개 학급이었습니다. 유치원 비리가 터진 뒤에야 교육부는 이를 두 배 수준인 1천 학급으로 올렸습니다.
종범은 교육부 말고 또 있습니다. 10월31일 국회에서 열린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 대안 마련 토론회에서 김거성 전 경기도교육청 감사관은 “감사 과정에서 수사를 의뢰해도 검찰은 사립유치원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할 뿐이었다. 그런 사람이 우수 검사로 선정됐다”고 말했습니다. 원장들만 매 맞는 상황, 저만 불편한가요?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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