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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이 심재철 사태 언급 꺼리는 이유

심재철, 가련한 가룟 유다
등록 2018-10-06 18:28 수정 2020-05-03 04:29
10월1일 국회 정론관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  한겨레 강창광 기자

10월1일 국회 정론관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 한겨레 강창광 기자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tvN 드라마 의 서사를 끌어간 힘은 ‘러브’만이 아니다. 굴곡진 역사가 강요한 ‘선택’의 순간에 각 인물이 내딛는 발걸음은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비겁하게 살아남는 일과 영예롭게 죽는 일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 패배가 불 보듯 뻔한 때에도 싸울 것인가.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벗을 지킬 것인가. 그런 순간에 안타깝게도 우리 대부분은 애기씨(김태리)처럼 담대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할 것이다.

1980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심재철도 그랬을 것이다. 그해 6월30일 신군부로부터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자백하라 강요받으며 두들겨맞을 때, 그는 선택해야 했다. 심재철은 나중에 "당시 구타에 못 이겨 허위자백을 했다"는 취지의 고백( 2005년 11월28일치 4면)을 했다. 이런 고백은 1994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관련자들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내란죄로 고소·고발할 때 작성돼 고소장에 자술서 형태로 첨부됐다. 자술서에 그는 "특수대에서 심한 구타를 당했다. 사실이 아닌데도 김대중씨한테서 거액의 자금과 지시를 받았다는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썼다. 그는 또 "김대중씨가 이해찬을 매개로 학생을 조종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지만, 내가 폭력 앞에 어이없이 무너졌다. 차라리 철저히 무너져서 이제는 일어서지도 말어라”라고 후회했다. 감히 돌을 던질 수 없다. 혹독한 고문 앞에서라면 나도 형편없이 무너질 것이다.

중요한 건 그다음 이야기다. ‘이제 일어서지도 말자’고 자책하던 심재철은 그의 별명 ‘오뚝이’처럼 일어서고 말았다. ‘동지들’ 곁으로 다시 돌아오진 못했다. 문화방송(MBC) 기자를 거쳐, 신한국당 부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보수정당의 ‘공안몰이’ 국면 때면 이념 감별사처럼 앞장섰다. 그리 살아남아 20대 국회에서 국회 부의장까지 올랐다.

그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 이가 없지 않다. ‘내란음모 사건’으로 2년6개월을 복역한 이해찬을 비롯한 학생운동권 출신들이다. 운동권 출신인 김현미 의원(민주당, 국토교통부 장관)은 2004년 심재철을 “가련하고 슬픈 가룟(가리옷) 유다”로 명명했다. 이해찬은 과거 지인들에게 심재철을 가리켜 “변절보다 나쁜 게 훼절(절개나 지조를 깨뜨림)”이라고 말했다 한다. 홀로 변절하는 것은 용서하더라도, 역사의 큰 물길 앞에서 동지들 뜻까지 꺾이도록 한 것만은 용서할 수 없다는 의미겠다. 이해찬과 그 동지들 입장에서 보면 결국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동지의 배신은 돌아보기 힘든 기억일 것이다.

이해찬이 여당 대표가 되어 다시 만난 ‘옛 동지’의 청와대 업무추진비 폭로전 앞에서 침묵에 가까운 태도를 이어가는 데는 그런 이유가 크게 작용한 듯하다. “심재철을 입에 올리기조차 꺼리는 것 같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그런 그가 내놓은 짧은 평가는 어떤 호된 비판보다 의미심장하다. 그는 “심재철 의원은 제가 잘 아는 사람”이라며 “위법한 사실이 겁이 나서 하는 과잉 행동”이라고 말했다. 압수수색을 당하자 폭로전에 나선 심재철을 보며 이해찬은 38년 전 궁지에 몰리자 무리수를 던진 겁 많은 동지를 기억해낸 것이다. 국회 부의장까지 지낸 5선 의원에게서 겁에 질려 거짓 자백을 한 22살 대학생을 들여다보게 하는 말이다.

엄혹한 독재의 시절은 가고 ‘션샤인’이 밝은 지 오래다. 앞에서 싸우고 돌아서면 악수하는 여의도에서도, 차마 맞잡을 수 없는 손이 있다는 것을 이해찬과 심재철을 보며 깨닫는다. 밝은 세상에서마저 영영 ‘시유 어게인’하지 않는 편이 나은 인연이 있다는 것도.

엄지원 정치부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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