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서비스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지난호(제1219호)에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탐구’한 뒤 마음에 돌덩이를 얹은 듯했다. 페이스북 앱을 열 때마다 험한 길을 걷고 있는 그의 사진이 맨 먼저 떴다. 일주일여 비바람을 뚫고 걷느라 남루한 모습을 한 이인영이 눈에 띌 때마다 뜨끔했다. 내가 여의도 정치의 논리로 쉽게 그를 재단하는 글을 쓰는 동안, ‘2018통일걷기’ 장정에 나선 그는 평화를 염원하며 민통선 길을 걷고 있었다. 그와 함께 걸으며 환하게 웃는 사진 속 청년들의 도전까지 냉소한 듯해 미안함이 더 컸다.
그래서 나섰다. 지난 7월3일 연차휴가를 내고 강원도 양구로 향했다. 통일걷기에 나선 40여 명의 일행에 합류했다. 에도, 내가 소속된 신문 정치부에도 알리지 않았다. 기사를 쓸지 여부도 장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여정은 어떤 의미에서 나 자신의 ‘산티아고’였다. 훈수꾼 같은 정치부 기자가 되고 싶지 않았는데 정당 출입 2년여 만에 ‘현장’보다 ‘말’에 익숙해져 있었다. 12일 동안 340㎞를 걷는 이인영의 여정에서 단 3시간, 10㎞ 남짓한 일정을 함께 걸었을 뿐이지만 여의도에선 고려하지 못한 것들을 보기엔 모자라지 않았다.
2000년대에 대학을 다닌 나는 586세대가 작은 가치들보다 거대한 담론을 앞세우는 ‘꼰대’라고 여겼다. ‘노동’과 ‘통일’을 줄기차게 말하는 이인영은 그 대표주자에 가까웠다. 하지만 짧게나마 함께 길을 걸으면서, 이인영이 단순히 이념과 담론만을 앞세우는 정치인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지난 글에서 그를 ‘1987년의 화석’이라 표현했지만, 그가 생각하는 가치가 어떤 정치인이 외치는 가치보다 미래 세대에 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 돼서다.
평화와 통일이라는 가치를 청년 세대에게 강요할 수 없단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민통선 길 위에서 이인영은 “여기 모인 청년들이 직접 느끼는 작은 평화들이 모여 더 큰 평화로 가게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와 함께 걷는 21살 대학생은 “통일을 바란 적이 없는데 이제 비무장지대와 북한 땅이 먼 곳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30년 세월을 넘어 두 사람의 마음이 연결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300명의 국회의원 중에 청년들과 울고 웃으며 열이틀을 함께 걸어본 이는 내가 알기론 없다.
30년 전 맨 앞자리에서 청년들을 이끌었던 그는 이제 약한 사람들과 함께 맨 뒤에 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 이인영은 여정 내내 앞장서지 않고 시종 맨 뒤에서 걸으며 처지는 이들을 챙겼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참가자들의 우비를 챙겨야겠다”고 알리거나, 걷는 게 영 시원찮은 내게 말없이 등산용 지팡이를 내밀었다. 그가 걷는 방식이 그의 정치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걸으면서 그는 말했다. “남들은 저더러 대중정치인이 된 다음에 가치나 이념을 내세우라고 해요. 저하곤 잘 안 맞는 얘긴데, 죽을 때까지 (가치를) 얘기하다 가도 괜찮은 것 아닌가요? 일관되게 진보의 얘기를 계속하고 싶은 거고, 그게 내가 정치하는 이유예요.” 주류 권력이 되지 못하더라도 신념의 정치를 포기할 수 없다는 거였다. 그가 자신의 길을 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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