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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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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표 가고 익표 오라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서는 유럽 냄새가 난다
등록 2018-07-24 16:17 수정 2020-05-03 04:28
2016년 2월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하고 있는 홍 의원.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2016년 2월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하고 있는 홍 의원.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한동안 여의도에선 ‘홍○표 전성시대’가 화제를 모았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 홍문표 전 자유한국당 사무총장까지 정치권의 주요 위치에 비슷한 이름을 가진 홍씨 문중 사람들이 넘쳐나서다. 쟁쟁한 정치인들과 비슷한 이름 때문에 좀체 대중에 각인되지 못하는 ‘홍○표’ 항렬의 ‘막내’가 민주당의 홍익표 의원이다. 민주당 정책위원회의 수석부의장을 맡은 재선 의원이지만, 여전히 “원내대표 맡았으면 잘하시오!” 같은 훈계성 전화를 받는다고 한다.

그런 홍익표가 얼마 전 크게 이름을 알린 일이 있다. 급진적 여성주의자들의 커뮤니티인 ‘워마드’발 ‘성체 훼손’ 논란에 입을 연 것이다. 천주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동일시되는 성체를 훼손한 워마드 회원의 행태가 진보 진영에서도 크게 비난받던 때였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이 논쟁적인 사안에 그는 스스로 말을 보탰다. “저도 가톨릭이라 성체 훼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만 성체 훼손 논란이 또 다른 차별과 증오로 이어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논란을) 종교계가 우리 사회의 증오, 차별에 대해 성찰하고 국민 통합을 이루는 선도적 역할을 하는 계기로 삼는 게 낫지 않을까 한다.”

이 일로 홍익표 의원실엔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관련 기사엔 “꼴페미에 숟가락 얹는 꼬라지 보소” “여자 일베 집단을 옹호하다니” 같은 비난 댓글이 잇따랐다. 그러나 홍익표의 말 어디를 봐도 워마드를 옹호하는 내용은 없다. 급진적 여성운동에 대해 비판과 지지의 일도양단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대화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에 가깝다. 그의 말엔 선동도 자극도 없다. 차라리 경건할 정도다. 지지층의 환심을 살 말만 공격적으로 쏟아내 ‘결기’를 과시하는 여의도 정치 속에서 그의 말이 주는 울림은 컸다.

지난 2년 동안 지켜봐온 홍익표의 행보도 그의 말에 진정성을 더한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앞장서왔고 ‘미투 운동’ 등과 관련해서도 다른 남성 의원들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왔다. 홍익표가 채용한 보좌진 8명 중엔 여성이 더 많다. 그의 발언이 ‘페미 표’를 구하려는 일회성 포퓰리즘은 아니라는 뜻이다.

여성 이슈만이 아니다.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으로 공직에 발을 디딘 홍익표는 전공인 한반도 문제뿐 아니라 경제정책·소수자 이슈에 두루 관심이 많다. 의원들에게 정책 이슈를 물으면 소속 상임위와 관련된 내용 말곤 제대로 답을 못하는 경우가 흔한데, 홍익표는 대부분의 이슈가 가진 쟁점을 상세히 풀어낸다. ‘여러가지 문제 연구소장’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당의 궂은일에 안 끼는 데가 없다. 보좌진은 ‘정책 담당’으로 돌리고 외부 일정은 어지간하면 수행비서 없이 혼자 차를 몰고 다닌다. ‘실무자’ 같은 그에게선 한국인들이 동경하는 ‘스웨덴 국회의원’의 냄새가 난다. 공격적인 말로 대중의 관심을 끌던 홍준표식 정치의 시대가 저물었으니, 지금 필요한 건 갈등을 봉합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홍익표식 정치가 아닐까.

엄지원 정치부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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