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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살 청년정치인 여선웅의 패배

‘젊은피’는 수혈용?
등록 2018-05-29 06:04 수정 2020-05-02 19:28
여선웅 제공

여선웅 제공

정치인은 패배로 담금질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3전4기 만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여정 역시 ‘낙선’의 역사다. 물론 모든 패배가 ‘영웅서사’의 일부로 다시 쓰이는 것은 아니다. 기득권에 대한 도전이라는 의미가 부여될 때, 서사는 완성되고 패배는 실패의 반대말이 된다.

35살 여선웅(사진)의 도전을 지켜보며 다시 ‘패배’의 가치를 떠올렸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는 이기지 못할 싸움에 뛰어들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서울 강남구청장 후보에 도전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의 짧은 정치 이력에서 첫 번째 패배다.

앞서 그는 더 큰 전투를 치렀다. 2014년 지방선거 최연소 당선자로 강남구의회에 입성한 뒤 여선웅은 신연희 전 강남구청장이 대선 전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등 여론 공작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재선의 신 전 청장은 임기를 마감하지 못한 채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횡령, 직권남용, 증거인멸 교사 혐의다. ‘신연희’로 대표되는 ‘강남’이라는 카르텔과의 싸움에서 여선웅은 혈혈단신 싸워 이겼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 경선에서 끝내 그는 낡은 구조의 벽을 넘지 못했다. 여선웅의 도전을 지켜보는 정치권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선웅이는 너무 어리다.” 나이를 성숙함의 잣대로 삼는 한국 사회에서 그는 감히 강남구청장에 도전하기엔 ‘너무’ 어렸고, 그러므로 ‘미성숙’한 후보로 평가받았다. 트뤼도(캐나다 총리)와 마크롱(프랑스 대통령)을 부러워하면서도 젊은 정치인에게 한 뼘의 공간도 내주지 않는 기득권 정치의 민낯이다.

여선웅을 제치고 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이는 67살의 정순균이다. 언론인 출신으로, 참여정부에서 국정홍보처장과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을 지냈지만 강남구정과의 인연은 없다. 민주당의 유력 정치인을 비롯해, 강남 지역 민주당원들의 정순균 후보를 전략공천하라는 압력이 거셌다고 한다. 중앙당 방침으로 치른 경선에서 정순균은 58.69%, 여선웅은 31.66%를 얻었다.

지난 4년 여선웅이 치른 싸움 덕에 보수의 텃밭인 저 견고한 강남의 카르텔에도 미세한 균열이 생겼을 것이다. 구속되는 구청장과 줄줄이 연루되는 공무원들을 보며, 제아무리 보수적인 유권자라도 ‘피로감’을 느끼지 않았을 리 없다. 경선 결과를 보며 누군가 “여선웅이 남 좋은 일만 했다”며 쓴웃음을 지은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패배한 여선웅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찾아뵙겠다”고 밝혔다. 정작 미성숙한 것은 그가 아니라 한국 정치다. 한국 정치에서 여전히 ‘젊은 피’는 수혈용에 불과하다. ‘이색 선거운동’에 나서거나, 비례대표 후보 오디션에 나서서 끼를 발산할 때만 청년 정치는 눈길을 받는다. 여선웅의 도전이 특별한 이유다. 막 첫 패배의 성적표를 받아든 여선웅의 이야기는 이제 어떻게 쓰일까.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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