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회의장이 5월28일 오전 국회에서 퇴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정치인은 백인백색이다. 서생부터 준건달까지 다종다양한 이들이 모여 국회를 이룬다. 이 개성 강한 입법기관들을 계파 외의 수단으로 분류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기질을 따져 대강 두 부류로 갈라칠 수 있다. ‘대중’이 좋아하는 정치인과 ‘선수’들이 좋아하는 정치인. 현실 정치에 입문한 이라면 누구나 대중정치인을 꿈꿀 것이다. 하지만 대중이 좋아하는 정치인이 되려면 극적인 요소들 중 한두 가지는 갖춰야 한다. 비범한 개인사, 헌신의 기억, 투사의 이미지. 그게 없으면 ‘오지고 지리는’ 카리스마라도.
선수들이 좋아하는 정치인은 좀 다르다. 정치인과 기자들이 좋아하는 정치인이니 ‘우정상’ 내지 ‘공로상’감이다. 주로 정당에서 당직을 많이 맡는 정치인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이런 정치인의 특징은 첫째, 쏠림 없이 합리적이고 둘째, 소통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러니 기자들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정치부 기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그해의 ‘신사 의원’을 뽑는 백봉신사상에서 최다 수상 기록(13회)을 세운 정세균 국회의장은 선수들이 좋아하는 정치인의 전형이다. 원내대표, 정책위의장은 물론이고 당대표만 세 번을 지냈으니 단연 ‘정치인들의 정치인’이라고 할 만하다. 의전 서열 2위의 국회의장이 된 뒤에도 ‘말진 기자’의 전화까지 기꺼이 응대하곤 했다. 취재 전화를 걸면 특유의 여유 넘치는 목소리로 “그래, 엄 기자. 무슨 일인가?” 화답했고, 논쟁적인 현안에 입장을 피하지 않고 답했다. 합리적 원칙주의자인 그의 결정들은 대체로 ‘예측 가능한 범주’ 안에 있었다.
그런 정 의장에게도 대중정치인으로의 발돋움은 필생의 숙제였을 것이다. 정 의장은 19대 총선 때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14년 만에 ‘정치 1번지’ 종로구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주위의 기대 속에 대선에 도전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4명 중 꼴찌로 주저앉았다. 득표율 7%. 누구에게나 무난하게 존경받지만, ‘격렬하게’ 사랑받지는 못한 정치인의 한계였다. 대신 20대 국회 들어 그는 국회의장직에 나섰다. 자신에게 맞춤한 공간을 찾은 것이었다. 민주당 동료 의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그는 3부 요인의 자리에 올랐다.
국회의장직을 수행하며 비로소 정 의장은 국민의 사랑을 얻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거취 문제를 거론하고 새누리당의 거센 비판에 내몰렸을 때 젊은층의 응원이 쏟아졌다.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안정적으로 관리한 끝에 ‘탄핵안 가결’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선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권의 반대 속에서도 자신이 약속한 ‘국회 청소노동자 정규직 전환’이라는 숙제를 온전히 풀어냈다. 정 의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건은 국민을 대표해 싸운다고 각오했었다”고 말했다.
지난 5월29일 정 의장은 다사다난했던 2년의 임기를 마무리했다. 그는 ‘성공한 국회의장’이었다. 그러니 대중정치인이었든 선수들의 정치인이었든, 이제 그를 ‘성공한 정치인’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 같다. 굿바이, 균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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