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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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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기장 “피폭량 직접 계산하니 75% 더 높았다”

프로그램 따라 널뛰는 우주방사선 예측치, 사 쪽은 낮은 수치 사용…

대한항공 조종사새노조 “피폭량 측정 원점 재검토 필요”
등록 2018-07-31 17:19 수정 2020-05-03 04:28

대한항공 승무원의 우주방사선 피폭량이 과소평가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항공 조종사새노동조합(KAPU·이하 새노조)은 “조합원의 피폭량을 직접 계산한 결과 최근 1년 새 6밀리시버트(mSv) 넘게 피폭된 승무원들이 있었으며, 회사에서 제공한 수치보다 1.75배 높게 나타난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대한항공이 사용하는 계산 프로그램의 예상치가 실제 피폭량보다 전반적으로 낮다는 최신 연구 결과도 나왔다. 항공 승무원들의 우주방사선 피폭량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암 걸린 승무원, 진짜 저선량 피폭 맞나

그래프는 대한항공 조종사새노조가 국가기상위성센터에 문의해 받은 자료. 태양 활동이 강하던 2017년 9월 해당 경로로 비행한 사람들이 받았을 것으로 예상되는 방사선량인데, 프로그램마다 수치가 다르다. 나이라스의 수치가 가장 높고, 캐리식스엠과 캐리세븐의 수치가 가장 낮다.

그래프는 대한항공 조종사새노조가 국가기상위성센터에 문의해 받은 자료. 태양 활동이 강하던 2017년 9월 해당 경로로 비행한 사람들이 받았을 것으로 예상되는 방사선량인데, 프로그램마다 수치가 다르다. 나이라스의 수치가 가장 높고, 캐리식스엠과 캐리세븐의 수치가 가장 낮다.

항공 승무원들의 방사선 피폭량은 모든 직종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방사선 분야 작업 종사자보다도 평균 2~4배가 높다. 특히 한국에서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 등으로 자주 비행하는 승무원일수록 위험하다. 지구에서 우주방사선 유입량이 가장 큰 북극 등 고위도·고고도 지역을 지나기 때문이다. 항공 승무원들은 야간·교대근무 등 여러 발암 요인에 노출되는데, 우주방사선 피폭의 위험성은 그간 주목받지 못했다.

지난 6월 대한항공 전직 승무원 K씨가 백혈병으로 산업재해 신청을 했다는 보도가 나간 뒤 유방암, 피부암, 갑상샘암, 악성림프종 등 방사선 피폭과 연관성을 의심해볼 수 있는 질병 피해자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승무원들의 피폭량이 6mSv를 초과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며 “(저선량의) 우주방사선과 질병의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최근 새노조가 일부 조합원의 피폭량을 조사한 결과, 대한항공의 주장과 상반되는 결과를 발견했다. 6mSv를 훌쩍 넘는 사례들이 나타난 것이다. 일례로 2017년 6월부터 2018년 5월까지 누적 피폭량을 직접 계산한 결과 A기장은 8.52mSv에 달했고, B기장은 6.96mSv였다. 일반인의 연간 선량 한도인 1mSv의 7~8.5배에 이르는 양이다. A기장의 경우 회사에 문의해 확인한 본인의 1년치 피폭량은 4.88mSv에 불과했다. 직접 계산한 수치가 1.75배나 더 높게 나타난 것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피폭량을 계산하는 프로그램이 달라서다. 새노조는 국립전파연구원 우주전파센터가 운영하는 세이프(SAFE)에 탑재된 나이라스(NAIRAS)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개발한 나이라스는 태양우주방사선과 은하우주방사선을 모두 고려한다. 반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이 현재 사용하는 캐리식스엠(CARI-6M) 프로그램은 은하우주방사선만을 고려한다. 국내 손꼽히는 우주방사선 전문가인 황정아 한국천문연구원 박사는 6월 말 인터뷰에서 “대한항공을 비롯한 국내 항공사에서 승무원들의 피폭량을 계산할 때, 우주방사선의 중요한 구성 성분 중 하나인 태양우주방사선의 영향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제1219호 ‘알맹이 쏙 빼고 피폭량 쟀나’).

새노조의 자료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해명을 무색하게 한다. 원안위는 7월6일 보도자료에서 “태양우주방사선은 실제 우주방사선으로 인한 피폭 중 약 5%를 차지하며, 나머지 95%는 은하우주방사선이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새노조의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고위도·고고도에서 연 1천 시간가량 비행하는 승무원에서 태양우주방사선의 영향이 과연 5%에 불과한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새노조가 국가기상위성센터에 문의해 받은 자료에서도, 태양우주방사선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캐리식스엠과 그 후속 모델인 캐리세븐 프로그램의 피폭량 예상치가 가장 낮았다. 한 예로 태양방사선 경보 3단계가 발령된 2017년 9월11일 인천에서 뉴욕으로 비행하는 동안 피폭 예상치가 나이라스 0.215mSv, 크림 0.215mSv, 시버트 0.121mSv, 캐리식스엠 0.080mSv, 캐리세븐 0.075mSv이다. 크림(KREAM, 기상청·천문연 개발)과 시버트(SIEVERT, 프랑스 개발)는 나이라스처럼 태양우주방사선의 영향을 고려한 프로그램들이다. 새노조는 “2017년 9월 태양 활동이 강할 때 나이라스의 예측치는 평소 대비 50~100% 증가한 반면 캐리식스엠의 예측치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정리하면, 항공 승무원들의 우주방사선 피폭량을 계산하는 여러 예측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 중에서 대한항공이 사용하는 캐리식스엠의 예측치가 (태양 활동이 강할 때) 가장 낮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최장석 우주전파센터 연구사는 “어떤 프로그램이 가장 실제와 가깝고 정확한지는 아직 검증하는 단계”라며 “실측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소개한 예측 프로그램들은 지상에서 컴퓨터로 운영하는 결과물이다. 한국 항공사의 국제선 비행기에 방사선 측정기를 태워 실제 노출량을 잰 뒤 비교하기 전까진, 어느 프로그램이 정확하다고 단정 짓기 힘들다.

실제 수치는 최고 예측치보다 높을 수 있다

그래프는 김지영 국가기상위성센터 연구관이 국제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자료의 일부. 가운데 점선은 2015년~2017년 피폭량 실측값이고, 색선은 같은 비행에서 프로그램별 예상치의 추세선이다. 전반적으로 색선(예상치)의 수치가 점선(실측값)보다 낮게 나타난다.

그래프는 김지영 국가기상위성센터 연구관이 국제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자료의 일부. 가운데 점선은 2015년~2017년 피폭량 실측값이고, 색선은 같은 비행에서 프로그램별 예상치의 추세선이다. 전반적으로 색선(예상치)의 수치가 점선(실측값)보다 낮게 나타난다.

다만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피폭량이 ‘과대 추정’됐을 가능성보다 ‘과소 추정’됐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김지영 국가기상위성센터 연구관이 올해 5월 제3회 ‘태양-지구 환경 예측 프로젝트’(PSTEP) 국제 심포지엄에 발표한 자료가 중요한 단서다. 2015년 9월9일부터 2017년 10월30일까지 미국에서 출발해 한국, 일본, 유럽, 남미 등으로 213회 비행하며 실측한 값을 나이라스, 크림, 캐리세븐 3가지 프로그램의 예측치와 비교했다.

그 결과 세 예측치 모두 실측치보다 낮았다. 한 예로 실측값이 80마이크로시버트(μSv)인 경우, 나이라스의 평균 예측값은 60μSv였고 크림과 캐리세븐은 45μSv였다. 방사선이 강할수록 실측값과 예측치 차이가 더 커졌다.

대한항공 조종사새노조는 “피폭량이 6mSv 이하로 관리된다는 회사의 주장을 믿기 힘들며, 이를 관리·감독하는 국토부나 원안위에 대해서도 적절한 조사를 요구한다”며 “승무원과 승객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우주방사선 피폭량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조사해 막연한 불안감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7월2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올해 주요 정책과제로 “우주방사선 관리감독 부처인 국토부와 합동 실태조사를 추진하고, 항공 승무원 안전관리 투명성과 신뢰성 제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의 지속적 보도에 대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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