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승무원들의 방사선 피폭량은 모든 직종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그런데 국내 권위 있는 우주방사선 전문가가 “실제 피폭량 수치는 기존 모델의 계산값보다 더 높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태양흑점 폭발 등 태양 활동이 활발한 시기에는 “일부 승무원들이 짧은 시간이지만 굉장히 많은 방사선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최근 대한항공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객실승무원이 산업재해를 신청했는데, 질병과 직업 사이의 인과관계에 힘을 싣는 전문가 발언이 나온 셈이다.
고선량 방사선 피폭 가능성 제기황정아 한국천문연구원 박사는 국내에서 우주방사선을 연구한 극소수의 학자 중 한 명이다. 황 박사는 과 한 인터뷰에서 “대한항공을 비롯한 국내 항공사에서 승무원들의 피폭량을 계산할 때, 우주방사선의 중요한 구성 성분 중 하나인 태양우주방사선의 영향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009년 북극항로의 우주방사선량을 직접 측정하는 실험을 했고,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실측 데이터 수집과 태양우주방사선을 고려한 항공방사선 예측 프로그램 개발이 꼭 필요하다고 관계 기관들에 주장했으나, 실질적인 연구 과제로 이어지지는 못했다”고 했다. 보통 국제선 항공기 운항 고도에서 우주방사선은 은하우주방사선과 태양우주방사선으로 구성된다.
대한항공은 그동안 “승무원들이 비행 중 쐬는 우주방사선량은 일상생활에서와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저선량 방사선이 암 발생에 미치는 영향이 입증되지 않았다고도 했다. 하지만 황 박사의 이야기는 승무원들이 고선량 방사선에 피폭됐을 수 있다는 의견이라 대한항공의 주장을 일부 반박한 것이다. 기존 보도와 비교해도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내용이 어려우니 먼저 쉽게 풀어서 살펴보자. 현재 승무원 피폭량 측정 기술을 거칠게 비유하면, 월평균 강수량을 보고 사람들이 비에 맞은 양을 예측하는 수준이다. 누군가 2018년 7월에 걸어서 국내여행을 떠난다고 하자. 이때 서울과 대전, 대구, 부산 등 이동 경로 위에 놓인 각 지역의 평균 강수량을 이용해 이 사람이 비에 맞은 양을 어림짐작하는 식이다. 여러 명이 각자 다른 경로로 도보여행을 한다면, 누가 가장 비를 많이 맞는지도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 구체적인 때와 장소에 따라 태풍과 폭우, 폭설을 만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여행자는 일기예보와 달리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 갑작스러운 기상이변이 있을 때는 순간적인 강수량을 측정해 ‘비 맞은 양’을 보정해줘야 실제 피해자가 누군지 파악할 수 있다.
우주적인 크기에서도 기상이변이 있다. 이 중 태양흑점 폭발이나 ‘코로나 질량 방출’(태양풍 폭발 현상) 등 태양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길 때, 지구로 오는 양성자 수가 급증하기도 한다. 이를 ‘태양 양성자 이벤트’(Solar Proton Event·SPE)라고 한다. 이때 지구로 온 양성자는 항공기 고도에서 태양우주방사선이 된다. 1년에도 여러 번 발생하는 SPE 때마다 승무원들의 우주방사선 노출량이 급격히 커진다.
하지만 현재 국내 항공사 대부분이 사용하는 피폭량 계산 프로그램 ‘카리식스엠’(CARI-6M)은 태양 양성자 이벤트를 반영하지 않는다. 미국연방항공국(FAA)이 개발한 이 프로그램은 연중 변화가 거의 없이 일정한 은하우주방사선(GCR)을 토대로 큰 흐름의 우주방사선 변화를 계산할 뿐이다. 태양활동주기(11년)에 따른 은하우주방사선 변화값(HCP)을 고려하더라도 역시 한계가 있다. 황 박사는 “태양 양성자 이벤트를 예측하는 기술이 매우 어려웠던 탓에 그동안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우주방사선량을 계산해왔다”고 말했다.
요약하면 ‘우주방사선=은하우주방사선+태양우주방사선’인데, 현재 국내 항공사들은 은하우주방사선의 장기간 변화량만 반영한다. 황 박사는 정확한 우주방사선 피폭량을 계산하려면 태양우주방사선의 급격한 변화량도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태양 활동 강할 땐 피폭량 급증이는 항공 승무원의 건강에 매우 중요한 정보일 수 있다. 항공 승무원은 방사선에 많이 노출되는 직업 중 하나다. 한국원자력안전재단이 국내 항공사 승무원을 대상으로 피폭량을 분석한 결과, 2015년 한 해 동안 객실승무원의 평균 방사선 노출량은 2200마이크로시버트(μSv)였다. 방사선을 다루는 비파괴검사자(1700μSv)나 원자력발전소 종사자(600μSv)보다 높았다.
저선량 방사선에 장기간 피폭되는 상황에서, 순간적인 고선량 피폭까지 더해지면 승무원은 치명적 해를 입을 수 있다. 지구에서 고위도·고고도 지역으로 갈수록 방사능이 커진다. 미국이나 유럽을 오가며 북극이나 고위도 지역을 통과할 때가 더 위험하다. 참고로 일반인의 선량 한도는 연간 1천μSv다.
기상이변 때 순간적으로 얼마나 많은 방사선에 피폭될 수 있을까. 현재 북극항로로 미국 뉴욕에서 인천으로 올 때 피폭량은 평균적으로 85μSv에 이른다. 그런데 태양 활동이 강할 때는 그 양이 수배에서 최대 수백 배로 늘어날 수 있다는 외국 연구 결과들이 있다.
2003년 프랑스 파리 천문대의 피에르 란토스가 제1저자로 쓴 논문을 보자. 연구진은 태양 활동이 강했던 1989년 9월29일 파리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비행했다면 총 360μSv에 노출됐을 것이라 추산했다.
심지어 단 한 번의 비행 만에 국내 승무원의 1년치 방사선 피폭량(2200μSv)을 훌쩍 넘은 사례도 있다. 피에르 란토스의 논문에는 파리~샌프란시코 노선 기준으로 1946년 7월25일 비행했다면 2450μSv, 1956년 2월23일 비행했다면 4550μSv에 노출됐다는 계산이 있다.
비슷한 결과를 말하는 다른 논문도 많다. 미국연방항공국이 2005년 7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05년 1월20일 태양 폭풍이 있을 때, 고위도 지역의 방사선 노출량이 고도 4만 피트(12㎞)에서 시간당 55μSv, 3만 피트(9㎞)에서 시간당 21μSv에 달했다. 이는 순간적인 최대치로,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긴 했다. 하지만 북극항로를 지나 뉴욕에서 인천으로 오는 데 14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누적량이 수백μSv에 이를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국내 항공사들의 측정 방식은 승무원의 피폭량을 과소평가할 가능성이 있다. 태양 활동이 강한 시기에 은하우주방사선만 고려한 측정치와 태양우주방사선까지 함께 고려한 방사선량을 비교해봤더니, 후자에서 피폭량 수치가 2~3배 컸다는 논문도 있다. 2012년 미국항공우주국(NASA) 랭글리연구센터의 크리스토퍼 머튼이 제1저자로 진행한 연구다.
정확도 낮은 태양우주방사선 예보태양우주방사선을 일으키는 태양 양성자 이벤트는 한 해에도 여러 번 발생한다. 미국해양대기청(NOAA)과 국립전파연구원 등은 태양 양성자 이벤트를 예측해 태양방사선(S) 경보를 발령한다. 경보는 S1부터 S5까지 총 5단계로 구성됐는데, 단계가 높아질수록 양성자 수가 많아진다. NOAA가 누리집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평균 발생 빈도는 S1(미약)이 11년당 50회, S2(중간)가 11년당 25회, S3(강함)이 11년당 10회, S4(심각)가 11년당 3회, S5(극단)가 11년당 1회꼴이다. S2부터는 고위도에서 비행하는 승객과 승무원들의 피폭 위험도가 증가한다.
실제 발생 빈도는 시기에 따라 변동이 심하다. 국회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실이 국립전파연구원 우주전파센터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예보를 시작한 2012년 한 해 S1은 122회, S2는 4회, S3은 2회 발령됐다. 피폭 위험이 커지는 2단계 이상 경보가 2012년 한 해만 총 6회 발령된 것이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2단계 이상 경보는 총 15회 발령됐다.
경보가 발령되면 비행기가 방사능이 높은 고위도 지역을 피해 우회하기도 한다. 국내 항공사들은 태양방사선 등급이 높을 때 북극항로를 다니지 말라는 규제를 받고 있다. 건설교통부 항공안전본부가 2006년 1월5일 만든 ‘북극항공로 운항지침’을 보면 “태양방사선 등급 S3 이상으로 예보된 경우 북극항공로 운항은 가능하지만, 태양방사선으로부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북극 내에서 비행고도 FL310(고도 9.4㎞) 이하로 운항하여야 한다”는 지침이 있다. 또 “태양방사선 등급 S4 이상으로 예보된 경우 모든 북극항공로를 운항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지침도 있다.
문제는 태양방사선의 예보 정확도가 매우 낮다는 점이다. 황 박사는 “태양 양성자 이벤트를 예측하는 건 굉장히 까다롭고 어려운 연구 주제”라며 “현재 예보 정확성이 워낙 낮아서 실제 승무원들이 정확한 예측 아래 방사선 피폭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확도가 낮은 건 기술적 한계 탓이다. 태양에서 출발한 입자가 지구에 도달하는 시각, 지속되는 시간과 강도 등을 계산할 때, 태양과 지구 사이 공간의 수많은 환경 변수가 영향을 미치는데 이들을 다 반영하지 못한다. 황 박사는 “쉽게 설명하자면, 기상청 일기예보에 많은 인력과 자원이 투입되는데도 여전히 정확한 예측이 어렵다. 하물며 우주 날씨예보는 훨씬 더 적은 인력과 자원으로 더 광범위한 우주라는 공간을 예측해야 한다. 정확도 측면에서는 기상예보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황 박사는 “한국도 이 분야를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의 극지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와사비 프로젝트 등 세계적으로 태양 양성자 이벤트를 반영한 우주방사선 연구가 활발하다. 현재까지는 지구 정지궤도 위성에서 측정한 양성자 값을 토대로 태양우주방사선을 계산하는 방식이 주로 연구된다. 현재 상용화 단계까지 온 모델은 미국항공우주국에서 개발한 나이라스(NAIRAS)가 대표적이다. 한국에선 국립전파연구원 우주전파센터가 나이라스의 자료를 활용한 세이프(SAFE)를 내놨다. 황 박사는 2013년부터 기상청 연구팀과 함께 ‘한국형 항공기 우주방사선 예측모델’(KREAM) 개발에 들어가 2016년 시험 버전을 완성했다.
정부 권고 무시하는 항공사들정부도 항공사에 태양 영향을 고려한 프로그램을 쓰도록 유도한 바 있다. 국회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실이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받은 ‘2017년도 항공운송사업자 실태조사 계획’을 보면 “항공사에서 우주방사선 피폭선량 평가시 태양입자 유입 영향과 위도·경도가 포함되지 않은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국내 개발되어 검증 중인 우주방사선 피폭선량 평가 프로그램(태양 입자 유입, 위도·경도 포함)의 검증 완료 후 사용토록 유도”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은 지금도 여전히 태양 입자 유입을 고려하지 않은 카리식스엠을 쓴다. 이스타항공(2016년)과 에어서울(2017년)만 세이프를 사용한다.
이 대한항공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산업재해를 신청한 객실승무원 K씨의 사례를 보도한 뒤 피부암, 유방암, 갑상샘암 등에 걸린 승무원들이 자신도 암에 걸렸다고 제보했다(제1217호, “나도 산재당했다” 쏟아지는 ‘산재 미투’).
황정아 박사는 “한국은 북극항로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도 우주방사선 연구를 하지 않는 드문 나라”라며 “지금이라도 실제 항로에서 실측 실험을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승무원들에게 우주방사선의 위험을 제대로 전달하는 교육이 반드시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글 변지민 기자 dr@hani.co.kr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피에르 란토스, 논문 DOI: 10.1093/oxfordjournals.rpd.a006183
FAA 논문, <solar radiation alert system>(2005)
크리스토퍼 머튼, 논문 DOI: 10.5772/32664</so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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