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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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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예방 CCTV? 직원감시 CCTV!

1분 지각에 감봉… 수영강사 비추는 카메라

사용자가 직원을 노예로 부리는 최대 무기
등록 2018-06-12 16:30 수정 2020-05-03 04:28
연합뉴스

연합뉴스

그는 공공기관 비영리재단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출판물 제작과 유통, 마케팅 업무를 맡았다. 판매량이 전년 대비 큰 폭으로 늘었고, 처음으로 국외 유통이 시작되는 성과를 거뒀다. 재계약 시점, 그는 자신 있게 성과 보고서를 제출했다. 재단에서 오래 일하고 싶었다.

어느 날이었다. 재단 인사팀에서 ‘근무시간 준수 주의 알림’이라는 제목의 전자우편을 보냈다. “귀하는 재단에 재직하면서 재단 규정에 따라 근무시간을 준수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2018년 ○월○일 출근 시간_09:02으로 2분 지각하였습니다. 근무시간 준수 주의를 드리니 앞으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재단 행정실.”

5분 일찍 점심 먹었다고 시말서

전자우편에는 지난 1년 동안 17회 지각 날짜와 시간이 적혀 있었다. 대부분 5분 이내였고, 가장 늦은 날이 11분이었다. 행정실에서 어떻게 1~2분 지각을 정확히 알았는지 의심스러웠다. 업무 때문에 늦은 날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답장을 보냈다. “제 기억에는 상기 일자에 출근 전 다른 일정이 있어서 해당 시간만큼 지각한 사항이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확인해주시고, 이로 인해 월급에서 삭감된 부분이 있었다면 함께 확인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재단 행정실은 문제가 전혀 없다고 답했다. 그는 지각의 근거가 “담당자 기억에 주관적이고, 명확지 않은 자료 같다”고 의심을 표했지만 재단에서는 정확하다고 했다. 근태를 관리하는 행정실장 자리는 재단 사무실 안에서도 분리된 공간이고, 복도식 출입구라서 직원들이 드나드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구조였다. 출퇴근 카드를 사용하지 않는데 관리자가 1~2분 지각을 기록할 수는 없었다. 뭔가 짚이는 게 있었다. 감시카메라(CCTV)였다.

회사 사무실 출입구에 설치됐고 행정실장 책상에 모니터가 있었다. 지각하면 분 단위로 월급을 깎았다. 5분 일찍 점심을 먹으러 간 팀장, 10분 먼저 퇴근한 직원은 소명자료를 제출하라는 경고 전자우편을 받았다. △△관숍 직원들을 만났다. 오전에 간단히 간식을 먹었는데, 오후에 행정실장이 지나가며 간식이 맛있었냐고 했단다. 숍은 1층, 재단 사무실은 3층에 있었다. CCTV로 건물 내 모든 직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소름이 끼쳤다. 행정실장과 인사담당자는 어떻게 근태를 1분 단위까지 정확히 알 수 있느냐는 그의 질문에 CCTV 설치를 시인했다.

재단은 CCTV를 설치한 뒤 한참 지나 직원들에게 ‘영상정보처리 동의서’를 돌려 반강제적으로 서명하라고 했다. 동의서에는 CCTV가 도난·화재 방지 목적으로 설치되었다고 적혔지만, 카메라는 직원의 일상을 노려보고 있었다.

부당한 대우와 갑질은 CCTV 감시만이 아니었다. 그는 성과급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성과급이 있다는 사실도 통보받지 못했고, 누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는지 알려주지도 않았다. 행정실장에게 찍힌 그는 6개월만 계약이 연장됐고, 최근 계약 만료로 해고되고 말았다. “최소한의 인격적 존중도 없이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문제들이 지속돼 정신적 스트레스와 피해가 너무나도 크지만, 조직 논리로 약자인 개인이 항상 희생되어야 했습니다. 지속적으로 임원진에게 이의를 제기했고, 임원진 또한 문제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고 했으나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말로 할 수 없는 중간관리자의 보복만 돌아왔습니다.”

‘트루먼 쇼’ 주인공이 된 직장인들

새마을금고 상사인 전무는 입에 걸레를 물었다. “×새끼, 씨×, 너 월급 왜 받냐?”는 폭언이 일상어다. 영업시간은 아침 8시부터 전무가 퇴근할 때까지다. 강도 등 안전관리 위반 문제를 얘기해도 소용없었다. 전무가 모임에서 저녁을 먹고 올 때까지 직원들은 퇴근을 못했다.

노동법이 지켜질 리 만무다. 야근수당, 차량유지비, 야근 식사비도 안 준다. 회의비는 결의서로 처리해 전무 개인 통장으로 매달 300여만원이 입금된다. 전무 ‘특활비’다. 경조휴가, 하계휴가, 산전후휴가를 법대로 다녀오는 건 꿈도 못 꾼다.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은 계속 괴롭혀 그만두게 만든다. 전무 개인 숙제를 시키고, 온라인 시험을 대신 보게 하고, 개인 물품을 쇼핑하게 한다. 주휴수당 지급과 근로계약서 교부를 요구한 비정규직 직원은 계약 기간을 채울 수 없었다.

전무의 책상 위에 놓인 CCTV 모니터. 새마을금고 열 평 남짓 공간에 열 대가 넘는 CCTV로 직원들 행동 하나하나를 감시한다. 영화 가 따로 없다. 한눈을 팔거나 손님이 없을 때 스마트폰을 보다 걸린 직원들의 목숨줄이 전무 손에 달렸다. 정부가 먼 산 바라보는 사이, 도난과 화재를 감시해야 할 CCTV는 악질 사용자의 손에 쥐어져 직원을 다스리는 채찍으로 변신했다.

“저는 현재 수영장에서 일하는 수영강사입니다. 수영장 내 안전을 위해 설치된 CCTV가 두 대 있는데 한 대는 메인풀, 또 한 대는 유아풀을 비추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유아풀을 비추어야 하는 카메라가 강사실을 비추고 있어 감사들의 근무 태도와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감시용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여자 강사들의 수영복 차림 등이 고스란히 찍혀 한 강사는 수치심과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입니다. 또한 하루 종일 강사실을 비추고 있어 유아풀 안전사고시 CCTV의 역할이 무의미해져 안전에도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저희 회사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장 곳곳에 CCTV를 설치하여 실시간으로 핸드폰, 노트북으로 감시를 합니다. 자세 지적, 왜 모여서 잡담을 하느냐, 왜 앉아 있느냐 등 사사건건 전화를 걸어 물어봅니다.”

“점장이 이야기를 좀 하자며 저를 불러내었습니다. 요지는 저에게 일할 생각이 있느냐는 거였습니다. CCTV로 근무 태도를 다 지켜봤는데 제대로 하는 게 없다면서요. 전 거기서 하라는 대로 청소, 오픈, 물건 진열, 손님 응대, 계산 등 다 했거든요. 근무시간 휴대폰을 본다거나 다른 짓을 하지도 않았고요.”

도난이나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CCTV를 설치할 수 있지만 사원들에게 도난 방지 목적으로 설치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근태 관리 등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범죄 예방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도 설치 목적과 장소, 촬영 범위와 시간, 관리책임자 등을 적은 안내판을 비치하고, 사원들이 CCTV가 어떻게 설치·운영되는지 쉽게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 집무실에 CCTV를?

그러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정보기술 발전으로 CCTV가 싸졌고 설치가 쉬워졌다. 사장님은 출퇴근 승용차에서, 안방 침대에 누워, 골프장 라운딩에서 스마트폰으로 직원을 감시한다. 숭고한 노동이 발가벗겨지고, 소중한 인권이 해부된다. 진정성은 거세되고 자발성은 뿌리 뽑힌다. 딱 그만큼 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은 퇴보한다.

감시하지 않으면 일을 안 한다고? 문재인 대통령 집무실에 CCTV를 설치해 국민과 야당이 스마트폰으로 ‘이니’의 하루를 감시하면, 대통령의 생산성은 높아지고 더 좋은 나라가 될까? (직장갑질 제보 gabjil119@gmail.com)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직장갑질119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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