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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억원 ‘월급 도둑’이 벌 받지 않는 나라

SKT 대리점 최저임금·근로기준법 등 위반… 체불임금 요구에 ‘해고’
등록 2019-05-23 02:23 수정 2020-05-02 19:29
서울 한 지역의 이동통신 대리점 모습. 한겨레 신소영 기자

서울 한 지역의 이동통신 대리점 모습. 한겨레 신소영 기자

수민(가명)씨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좋았다. 최신 전자제품을 다루는 일도 능숙했다. 2012년부터 SK텔레콤 공식 인증 대리점에서 일했다. 스마트폰, 인터넷전화, IPTV(인터넷 텔레비전 서비스), 유·무선 인터넷과 DMB(모바일 디지털 방송) 서비스 판매 업무를 했다. 회사는 인근 3개 시도에 대리점을 운영했고, 20명 넘는 직원이 일했다.

그는 오전 9시30분 출근해 저녁 8시30분 퇴근하며 하루 11시간 일했다. 토요일과 공휴일에는 오전 10시에 나와 저녁 8시까지 일했다. 쉬는 날은 일요일과 설·추석 각각 하루뿐이고, 연차휴가는 여름휴가 기간에 4일만 쓸 수 있었다. 수민씨는 힘들었지만 통신사 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365일 중 일요일·설·추석 빼고 근무

그런데 월급 통장에 찍힌 돈이 이상했다. 2012년도 최저임금(4580원)으로 계산하면 기본급이 155만원인데, 그의 통장엔 105만원이 들어왔다. 2013년 110만원, 2014년 120만원, 2015년에도 120만원이었다. 법정 최저임금보다 50만~70만원이 적은 기본급을 받았다.

문제를 제기하자, 회사는 판매 인센티브를 포함하면 최저임금 이상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판매 인센티브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기준을 넘어야 받을 수 있었고, 기준에 이르지 못하면 급여가 삭감됐다.

집안에 일이 생겨 연차를 쓰겠다고 했더니 사장의 사촌인 이사는 “회사 생활 어렵게 해줄까? 월급 삭감당하게 해줘?”라며 연차를 못 쓰게 했다. 쓸 수 없었던 연차에 대한 수당도 지급되지 않았다. 매년 잔여 연차는 11~13일이나 됐다. 해마다 40만~70만원 되는 연차수당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사장과 이사는 시도 때도 없이 조기 출근과 야근을 강요했다. 손님이 없더라도 매장을 지키라고 했다. 근무시간에 휴식을 가져본 일이 없었고, 점심도 마음 편히 먹은 날이 없었다. 새로 들어온 젊은 친구들은 견디지 못하고 수시로 그만뒀다. 판매 실적이 좋은 수민씨와 몇몇 동료는 인센티브를 받는 것으로 버텼다.

정권이 바뀌고 2018년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다. 사장은 2017년 기본급 150만원에서 2018년 50만원을 올려 200만원을 지급했다. 수민씨와 동료들은 그제야 회사가 그동안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마나 돈을 떼였는지 계산해봤다.

기본급은 2012년 50만원, 2013년 54만원, 2014년 56만원, 2015년 69만원, 2016년 64만원, 2017년 69만원을 매달 받지 못했다. 그가 입사한 2012년 1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최저시급 기준으로 받지 못한 기본급이 무려 4552만원이었다. 6년3개월 동안 지급하지 않은 연차수당도 312만원이었다.

그와 동료들은 회사에 미지급 임금을 주라고 요구했고, 취업규칙을 공개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사장이 말했다. “회사가 나한테 부당한 대우를 하고 만약 내가 부당한 처사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런 생각 있으신 분은 나한테 입장을 애기해줘. 난 정리할 생각이야. 내가 죽어라고 고생해서 회사만 먹여 살리고 사장님만 배불리게 하고 나는 쫄쫄 뭐하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 (더는 일)할 필요가 없다 생각한 거야.” 이사는 “회사 다니면서 앞에선 웃고 뒤로 가서는 회사 비방하고 그런 사람들과 같이 가면 에너지 낭비 아니냐”고 했다. 수민씨와 동료들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노동청, 임금채권 6년 중 3년치만 인정
수민씨와 동료들은 노동청에 ①연장·휴일 수당 미지급 ②미사용 연차수당 미지급 ③법률에 따른 퇴직금 미지급 ④근로자 협약 없이 연장·휴일 강제 근로 ⑤임산부 처우 개선 불이행 ⑥근로자 협약 없이 임금 삭감 ⑦회사의 갑질과 횡포 ⑧근로계약서 미작성 ⑨취업규칙 공개 거부 ⑩근로자 협약 없이 주 52시간 연장근로 시간 초과 ⑪휴게시간 미준수로 진정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근로감독관은 ‘조장풍’(MBC 드라마 주인공)이 아니었다. 사건을 대충 빨리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 태도가 역력했다. 수민씨는 직장갑질119를 찾았다. “근로감독관님이 어떻게든 사건을 축소하려는 의도가 있어서 문의드립니다. 3년 이하 징역, 2천만원 이하 벌금 등 처벌 조항이 있는데, 노동청이 시정 권고만으로 끝나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그는 노동청에 탄원서를 내고, 사업장 근로감독을 청원했다. “회사는 임금 체불시 처벌의 정도를 잘 알고 있는 점, ‘반의사불벌’이라는 법의 맹점을 잘 알고 이를 이용하여 온갖 편법으로 본인들을 회유하여 어떻게든 보상 없이 진정 취하를 시키려 하고, 반성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본인들에게 잘해주었다며 기만했습니다. 겁박과 협박으로 위협적인 발언에 본인들은 매일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생계를 잃어버린 저희의 심정을 헤아려 더 이상의 추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강력히 처벌하여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들의 권익을 보호해주시길 간청드립니다.”

노동청은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의 수사를 완료하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청으로 사건을 송치했다. 근로계약서 미작성, 금품 체불, 임산부 시간외근로 등 수민씨와 동료들이 제기한 진정이 모두 인정됐다. 체불임금 사업주 확인서에 따르면 피고 회사가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는 임금과 퇴직금의 총액은 2억2700만원이었다. 하지만 수민씨는 억울했다. 그와 동료들이 6년 넘게 일했는데 돌려받을 수 있는 임금채권이 3년이라는 사실에 화가 났다. “임금의 시효가 3년이라는 근로감독관님의 말씀에 허탈감과 무기력함을 감출 수가 없고 근로에 대한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잃어버린 3년에 하루하루가 매우 힘듭니다.”

상습 체불 처벌 공약 ‘패스트트랙’ 처리해야
문재인 정부는 체불임금 근절을 위한 제도 개선 방안으로 ①체불 피해 근로자가 체불임금 외 동일한 금액(100%)의 부가금을 받을 수 있도록 부가금제도 도입 ②고액·상습 체불 사업주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적용 제외 등 처벌 강화 ③임금채권 소멸 시효(3년→5년) 연장을 공약했다.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졌다면 6년간 5명에 대해 5억원 넘는 임금을 떼먹은 악덕 사업주는 감옥에 갈 수 있고, 수민씨와 동료들은 5년치 체불임금을 두 배로 돌려받는다. 함부로 남의 돈을 떼먹는 ‘월급 도둑’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직장인 관련 70개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직장인들의 삶에 영향이 적은 20여 개 공약만 실현됐다.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 도입, 용역업체 변경시 고용-근로 조건 승계 의무화, 자발적 이직자 실업급여 지급, 근로자대표 제도 실질화, 근무시간 외 ‘카톡’ 금지 등 직장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공약은 정부 서랍과 국회 창고에 처박혀 있다. 중요한 정치개혁 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처리하는 것처럼, 노동 존중 법안, 직장인 보호법도 패스트트랙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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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직장갑질119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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