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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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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로도 수출된 직장갑질

대사 가족 식사 중단하자 괴롭힘당한 관저 요리사
등록 2019-09-29 23:41 수정 2020-05-03 04:29
특임공관장의 성추문·갑질이 끊이지 않자 외교부는 특임공관장에게 별도의 교육을 하기로 했다. 외교부 청사 모습. 외교부 누리집 갈무리

특임공관장의 성추문·갑질이 끊이지 않자 외교부는 특임공관장에게 별도의 교육을 하기로 했다. 외교부 청사 모습. 외교부 누리집 갈무리

8년차 요리사 시연(가명)씨는 3년 전 지인 소개로 해외 대사관 관저 요리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대사관에서는 크고 작은 행사가 끊이지 않고 열렸다. 대사가 외교부 직원들과 만찬을 하거나, 동포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기도 했다. 한국에서 국회의원이나 고위 관료들이 방문하면 환영 잔치가 열렸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행사 음식 준비에 방해됐던 대사 가족 일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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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있을 때면 대사 부부는 시연씨와 메뉴를 상의했고, 요리가 결정되면 대사관 담당 서기관에게 보고한 뒤 시연씨 책임 아래 음식을 만들었다. 대사 부부는 요리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고, 주방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대사는 만찬을 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요리사를 소개했다. 외로운 타향살이였지만 요리가 즐거웠고, 대사 부부와 직원들이 좋았다.

새로 부임한 대사 부부는 시연씨에게 다른 계약서 한 장을 내밀었다. 근무시간 내에 대사 가족에게 점심·저녁 식사를 제공하고 일정 금액을 지급한다는 ‘일상식’ 제공 계약이었다. 2016년 계약서에 “공관장(배우자) 및 가족의 지시를 따르고, 일상식을 한다”고 돼 있었다. 그런데 공관병 갑질 사건이 터지고 정부가 갑질 근절 대책을 발표하면서 ‘배우자 및 가족, 일상식’이 들어가 있는 조항이 삭제되고, “공관에서 주최하는 관저 내외 행사의 기획 및 시행과 관련된 제반 업무”로 바뀌었다. 전임 대사 부부는 일상식을 요구하지 않았다.

시연씨는 공식 근무시간에 일상식을 만드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지만, 이를 거부하면 재계약이 되지 않을까봐 계약서에 서명했다. 대사 가족의 점심과 저녁을 만드는 데 반나절이 소요됐다. 행사가 있는 날은 업무에 상당한 차질이 생겼다. 만찬 요리를 만들다가 중단하고 부부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본연의 업무인 행사 요리에 정성을 기울이기 어려웠다. 사모는 오전에 쇠고기를 주며 저녁에 육개장을 만들라거나, 사골국을 만들어 다음날 점심으로 떡국을 해오라고 했다. 장 보러 갔다가 시간이 길어지면 관저로 돌아와 점심을 차려주고, 다시 장을 보러 가야 했다.

주업무와 일상식의 이중 업무로 시간외근무가 많아졌다. 대사 부부의 식사 제공이 원인인데, 국비로 시간외수당을 받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계약서를 살펴봤더니, “본 계약의 내용은 양 당사자의 합의로 변경, 수정할 수 있다”고 돼 있었다. 시연씨는 조심스럽게 대사 부부에게 업무에 상당한 차질을 빚어 일상식을 제공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일상식 중단 이후 대사 사모가 수시로 주방에 내려와 ‘지적질’을 하기 시작했다. 불을 쓰는 더운 주방에 에어컨 온도를 낮게 설정하면 말도 없이 온도를 올리거나 껐다. 해산물샐러드를 해놓아 주방 온도를 낮게 했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도 주방에 내려와 온도를 높여놓았다. 돌솥밥을 준비했는데 덥다며 갑자기 공깃밥으로 나가라고 지시했다. 본인과 가족이 먹겠다며 행사 음식을 가져가기도 했다. 전임 대사 부부와 직원들은 시연씨를 ‘셰프’라고 불렀는데, 대사 사모는 감정이 상했을 때 ‘당신’이나 ‘자기’라고 했다. 대사도 행사가 끝난 뒤 손님들에게 요리사를 소개하지 않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민간인 배우자 괴롭힘은 신고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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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정도 지났을 때다. 대사 부부의 휴가 기간에 만두 500개를 만들라고 했다. 시연씨는 개인 일정이 겹쳤고, 양이 많아 행사가 없는 다음주에 만들겠다고 보고했다. 휴가에서 돌아온 사모는 왜 만두를 만들지 않았느냐고, 휴가 갔을 때 뭐 했느냐고, 왜 지시를 따르지 않느냐고 했다. 시연씨도 화가 났다. 음식을 준비하라고 하면, 근무시간에 맞게 업무 조정을 하는 것은 요리사의 결정권이라고 항의했다.

그러자 사모가 말했다. “얻다대고 말대꾸예요. 지금 보고할 상황이 아닌 건 마담인 내가 결정해요, 자기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그거는 마담이 하기 나름이고 다 다른 거예요. 그걸 왜 자기가 결정해요. 이제부터 매일매일 뭐 할 건지 업무 보고하세요.”

만두 사건 이후 시연씨는 업무차 공관에 갈 때, 장 보러 갈 때, 식재료 구입 목록을 정할 때, 초과근무를 할 때 사모에게 일일이 보고하고 지시를 받았다. “업무 지시와 확인을 이유로 하루에 최소 네 번 이상 내려오시며 체크하는데 지나친 감시를 받는다는 느낌이 들고 발자국, 엘리베이터 소리만 들려도 손이 떨리고 숨이 가빠지는 증상이 한 달 내내 지속돼 결국 심리 상담까지 받았습니다.”

시연씨는 담당 서기관에게 근로계약서 당사자가 아니고 대사관 직원도 아닌 사모가 요리사에게 지시할 수 있느냐고 문의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지시로 계약서에는 ‘배우자’라는 단어가 빠졌는데, ‘관저 요리사 운영 지침’은 바뀌지 않고 “공관장(배우자)의 지휘, 감독을 따른다”고 돼 있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사모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할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사모는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이어서 불가능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시연씨는 대사를 찾아갔지만, 대사는 사모의 생각은 곧 자신의 의견이라며 상황이 어렵다고 생각하면 떠나도 좋다고 했다. 사모의 괴롭힘은 더욱 심해졌고, 결국 그녀는 사직서를 냈다.

관저 요리사에 대한 차별도 심각했다. 2년이 지난 대사관 행정 직원들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지만, 관저 요리사는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됐다. 행정 직원들은 현지 법령에 따라 휴게시간을 포함해 하루 8시간 근무하고, 관저 요리사는 한국 노동법에 따라 휴게시간을 포함해 9시간을 일해도 재외공관담당관실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외교부 아이디를 주지 않아 정보를 총무서기관이나 행정 직원에게서 전달받아야 한다. 대사, 대사 사모, 총무서기관 3명에게 업무 지시를 받아야 한다. 시연씨는 전세계 관저 요리사들이 겪는 차별과 갑질을 바로잡기 기대하며 감사원에 신고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심부름, 폭언, 성차별 등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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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입니다. 폭언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신적 후유증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그 사람만 보면 언제 폭언을 할지 두렵기도 합니다.”

“상사는 회사 업무가 아니라 사적인 용무를 시킵니다. 상사의 개인 휴가 항공권을 알아보게 하고, 아파트 거주 신고나 개인 집의 메이드 관련 업무까지 지시하고, 문제가 생기면 심하게 질책하고 폭언도 계속됩니다.”

“지사장이 저를 싫어해서 임기가 많이 남아 있는 저를 강제로 귀국하도록 종용해 거부하다 귀국한 적 있는데, 그 후 국외 지사 근무 지원을 해도 매번 탈락하고 있습니다.”

“한국계 기업의 국외 지점에서 일하는 직원입니다. 폭언, 성차별 발언, 회식 자리 지정, 자율을 가장한 회식 강요 등 매일같이 직원에게 폭언하고 무시하는 언행을 합니다.”

“인격 모독, 욕설 등의 폭언, 현지 성매매 업소 탐색과 알선 종용, 법정 노동시간 이상의 노동 강요 등 갑질이 너무 심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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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직장갑질119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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