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회계 업무 구인광고를 본 경은(가명)씨는 서류와 1차 면접에 합격하고 본부장과 2차 면접을 했다. 본부장은 근무기간이 3개월 또는 그 이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계약직이면 입사하지 않으려 했는데, 본부장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 즉 정규직이라고 했다. 연봉도 본부장과 상의해 결정했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3개월은 수습기간이라 생각하고 회사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규직인데 근무기간 3개월, 그 이상 될 수도?회사는 면접에서 이야기했던 업무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줬다. 힘들었지만 경은씨는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회사 자금이 없는데 대표가 직원을 시켜 경은씨에게 정당하지 않은 자금 지출을 요구했다. 채무자가 회사로 찾아와 대표가 빌려간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도 했다. 회계 업무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경은씨는 부당한 지출을 하기 어렵다고 했다. 본부장에게 근로계약서를 요구했지만 곧 주겠다는 말만 하고 근로계약서 교부를 미뤘다.
본부장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은 직원에게 사직을 강요했다. 자진퇴사로 나가라고 했다. 그 직원이 거부하자 다른 지점으로 발령을 냈다. 그 직원은 노동청에 구제신청을 냈고, 결국 합의금을 주고 권고사직 처리를 했다.
입사 한 달 뒤 경은씨는 연차를 냈고, 승인을 받았다. 쉬고 있는데 본부장에게서 문자가 왔다.
“근무를 이번주 금요일까지만 해주세요. 그동안 수고했어요.”
황당했다.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이해해달라고 했다. 권고사직이냐고 했더니 계약 종료라고 했다. 3개월 또는 그 이상도 될 수 있다고 했고, 계약기간의 정함이 없는 정규직이기 때문에 최소한 한 달 전에 해고를 통보하고, 해고예고수당도 지급해야 한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본부장은 계약기간은 유동적으로 얘기한 것이고, 일부 직원이 불편함을 이야기해서 조기에 구두계약을 종료하는 것이라고 했다.
회사 회계 업무를 혼자 하고 있기 때문에 직원들과 부딪칠 일이 없었다. 부당한 회계 지출 요구를 거부한 직원 말고는 불편함을 느낄 사람이 없었다. 원칙대로 회계 업무를 처리한 것이 싫었던 회사 쪽이 본부장을 통해 해고를 통보한 것이었다.
연차휴가 다음날 얼굴 보고 얘기할 수도 있는데, 휴가 중인 직원에게 문자로 해고를 통보하는 회사라니, 기가 막혔다. 하지만 경은씨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해고예고수당도 필요 없다고 했다. 권고사직을 확인받아 퇴사하고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다른 회사를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후임 회계 담당에게 인수인계한 뒤 본부장과 나눈 문자를 보여주고, 국민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자격취득 신고서 ‘계약직 여부’ 확인란에 ‘아니요’라고 된 내용을 확인시켜줬다. 후임자는 경은씨 퇴사 사유를 ‘권고사직’으로 기입했다.
손배 소송하겠다며 협박도경은씨는 실업급여를 3개월 받고 다른 회사에 취직했다. 그런데 최근 본부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고용보험 상실신고서에 권고사직을 자진퇴사로 정정하겠다고 했다. 회사에 3명이 청년내일채움공제를 하고 있어 기업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된 금액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다른 회사를 가도 피해를 보게 하겠다고 했다.
근로복지공단에 확인했더니,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자진퇴사로 정정신청을 했다. 한마디 상의도 없이 문자로 해고를 통보한 회사가 8개월이 지나 상실 사유를 정정하고 손해배상까지 청구하겠다니, 게다가 3개월 동안 받은 실업급여를 반환해야 한다니, 경은씨는 눈앞이 캄캄했다.
그는 직장갑질119에 본부장과 나눈 문자와 갈무리해놓은 국민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자격취득 신고서를 보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2018년 3월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를 도입했다. 청년근로자, 기업, 정부가 공동으로 공제금을 일정 기간 적립하고 만기 때 적립금 전액을 청년근로자에게 성과보상금 형태로 지급한다. 노동자는 월 12만원, 기업은 월 20만원을 5년간 적립하고 정부도 최초 3년간 1080만원을 지원한다. 5년 만기 재직 뒤 3천만원을 받는다. 중소·중견기업에 1년 이상 일한 만 15~34살 청년근로자다. 기업이 낸 공제납입금에 대해 100% 손비 인정과 25% 세액공제 등 세제 혜택을 받는다.
회사가 인위적으로 인원을 줄이면 그 수만큼 청년공제에 가입 중인 자의 기업순지원금 지급이 중단된다. 대신 폐업, 권고사직 등 사업주의 귀책사유로 중도 해지된 노동자가 퇴사 뒤 6개월 이내에 재취업해 공제에 재가입을 원할 경우 1회에 한해 기회를 준다.
경은씨가 일했던 회사에서 청년내일채움공제로 일하는 사람이 대표이사의 친인척으로 서류상 직원일 수도 있다. 친척 회사에 입사해 최대 3년간 서류상으로만 직원으로 남으면 600만원을 넣고 3천만원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은씨를 협박해 퇴사 사유를 권고사직에서 자진퇴사로 바꾸려고 한 건 아닐까?
직장갑질119의 도움을 받은 경은씨는 근로복지공단 관계자에게 본부장과 주고받은 문자와 관련 자료를 냈고, 이직 사유는 권고사직이 유지됐다.
“채용공고에는 정규직 모집이라 하고는 근로계약서는 계약직으로 계약된 거라고 합니다. 출근시간 이전에 나와 책상 닦기, 담배 심부름, 성희롱 발언 등을 당했습니다. 업무상 지시가 아닌 갑질에 불응하자 계약 종료를 이유로 퇴사를 권유받았습니다. 계약직이 아니라 퇴사를 거부하겠다고 했더니 계약직으로 근로계약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청년내일채움공제 서류에는 표준근로계약서를 첨부해 신청하고 이면에는 계약직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습니다. 사업주에게 제재나 처벌이 가능할까요?”(직장인 A씨)
“수습 3개월이 되기 사흘 전에 우리 회사와 맞지 않으니 다른 데를 알아보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어떤 평가도 없었고 단순히 성실함과 거리가 멀다는 이유였습니다. 대표가 부탁해서 청년내일채움공제도 했는데 해지한 상태입니다. 평생 딱 한 번 할 수 있는 거고 저는 어디 가서 할 수 없는데,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 1회 정도 받고 수습기간 끝나고 저를 해고했습니다.”(직장인 B씨)
‘정부지원금 혜택’ 불시에 근로감독 필요청년추가고용 장려금(1명당 최대 900만원 3년간 지원), 일자리안정자금(노동자 1명당 15만원), 두루누리 지원금(고용보험 국민연금) 등 고용 관련 정부지원금과 세제 혜택이 다양하다. 당연히 필요한 제도고 더 확대돼야 한다. 그런데 악덕 기업주들이 직원을 해고하면 지원금을 못 받으니까 괴롭혀서 내보내고 고용보험 상실신고서에 이직 사유를 자진퇴사로 적는다. 정부가 방치하는 사이 못된 사장들이 청년의 내일을 털어간다. 청년내일‘비움’공제로 만든다.
청년내일채움공제로 정부지원금을 받는 기업들에 불시 근로감독을 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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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직장갑질119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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