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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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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 폭언에 구토·복통·공황장애 겪는 노동자

5년간 직장 정신질환으로 자살 등 극단적 선택 170명…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가해자 처벌 조항 없어
등록 2019-10-15 13:05 수정 2020-05-03 04:29
경기도 수원시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민원실에 마련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센터. 연합뉴스

경기도 수원시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민원실에 마련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센터. 연합뉴스

100명 규모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진우(가명)씨는 5년 전 경력직으로 입사할 때 잔업과 특근이 많지 않다는 설명을 듣고 연봉제로 계약했다. 그런데 2년 전부터 주문이 늘어나 업무량이 폭증했다. 아침 8시20분에 출근해 밤 9시까지 일하는 날이 일주일에 3~4일이고, 토요일 특근은 물론 일요일에 출근하기도 했다.

잔업·특근으로 아파도 제대로 못 쉬는 회사

가족과 저녁 약속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업무가 많아 인원 충원을 요청했지만, 회사는 연봉제 계약이라는 이유로 진우씨와 동료들에게 야근을 강요했다. 종업원 300명 미만 회사는 주 52시간 근로제가 2020년 1월부터 시행된다는 점을 이용해 300명 이상 사업장인 자회사의 물량까지 받아와 일을 시켰다. 아픈 곳 하나 없던 진우씨 건강이 점점 나빠졌다.

직속 상사의 괴롭힘도 심각했다. 날마다 듣는 폭언과 모욕으로 진우씨는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걷기조차 힘들 만큼 몸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허리디스크를 진단받았다. 의사는 그에게 3개월 이상 쉬면서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진우씨는 인사과에 휴직 신청하면서 직속 상사의 괴롭힘도 신고했다. 인사과 담당자는 그 상사 성격이 원래 그렇다며 별일 아닌 듯이 웃었다. 함께 휴직을 신청하러 간 진우씨 아내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니 앞으로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폭언하는 상사들에게 주의를 주고, 다른 직원들도 이런 일이 생길 때 인사과에 신고하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했다. 담당자는 그제야 심각성을 알고 공장장에게 상황을 전하겠다고 했다.

진우씨는 의사 소견서를 제출해 3개월 무급휴직을 신청했다. 회사 책임자가 휴직 기간을 2개월로 줄이라고 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2개월 휴직계를 내고 병원 치료를 받았다. 의사와 상담하면서 진우씨는 건강하던 몸이 지난 2년간 계속된 잔업과 특근 때문에 허리디스크를 앓게 됐다고 판단해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허리는 잘 낫지 않았다. 진우씨는 휴직 연장이 가능하다는 인사과의 답변을 듣고, 회사 책임자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한 것과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사실을 알렸고 휴직 연장을 요청했다.

회사 책임자는 휴직 연장이 안 된다며 무조건 복귀하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아픈 거고, 그럴 거면 개인 사업을 해라. 복귀해도 팀에서 너 반길 사람 없으니 무조건 다른 팀으로 가라.” 진우씨는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해. 생각은 내가 하고 결정하는 거야.” 회사 책임자는 진우씨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진우씨 자리에 사람을 뽑으라고 명령했다.

면담한 날부터 진우씨는 잘 먹지 못하고 제대로 자지 못했다. 몸에 대상포진이 왔다. 스트레스성 위염까지 찾아왔다. 정신적 충격에 휩싸였다. “2년 동안 계속된 야근으로 몸이 망가졌는데, 저를 팀에 민폐 주는 사람으로 만들어 자괴감이 들고, 바보 같아서 상사한테 5년 동안 당하면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했다며 자책하고, 자해까지 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우씨는 휴직 연장이 안 되면 퇴사하게 되리라는 위기감이 심했다. 회사에서 연락 올 때마다 두근거리고 불안했다. 결국 휴직 만료 전날 숨 쉬기 어려울 정도로 불안이 와서 정신과 진료까지 받았다.

면담 뒤 찾아온 공황장애

이런 상황에서 출근을 못하자 회사는 무단결근으로 자진퇴사 처리를 하겠다고 했다. 회사에 불이익이 온다고 권고사직을 써줄 수 없다고 했다. 진우씨는 사직서에 산재 신청과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이후 퇴사를 강요당했다는 것을 써서 내용증명으로 회사에 보냈다. 노동청에 전화해 직장 내 괴롭힘, 산재 신청 불이익, 정당한 사유 없이 휴직 거부, 취업규칙 미개정과 미게시 등을 상담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7월16일부터 9월30일까지 77일 동안 신원이 확인된 전자우편 제보 712건 중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것이 98건(13.8%)이었다.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받고, 상습 폭언에 불면증으로 한 달째 약을 먹고, 폭언으로 체중이 급격히 줄고, 상사의 트집으로 공황장애가 오고, 모욕으로 극심한 복통에 시달려 입원했다. 근로복지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직장에서 얻은 정신질환이 산업재해로 인정된 것만 500건이 넘는다. 170여 명은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지금까지 나름 멘탈이 강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퇴근 뒤, 주말 내내 상사가 머릿속에 떠올라 ‘출근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으로 잠을 설치고 그분 꿈도 꿔 머리가 아프고 구토한 날이 하루이틀이 아닙니다. 정신과 진료도 받고 수면진정제, 항우울제, 신경안정제도 복용했습니다.”(공공기관 직장인)

“원장의 괴롭힘, 갑질, 다른 직원과 비교, 학부모님 면전에서 무시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신경과를 다녔고, 결국 정신과에 가서 전문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두근거리고 내일도 출근할 생각에 두렵습니다.”(어린이집 교사)

정신질환은 업무 재해, 산재보상보험법은 개정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한 카페 직원이 상사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2006년 9월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이를 계기로 2011년 ‘브로디법’이 만들어져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는 최대 징역 10년형에 처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가해자 처벌 조항이 없어, 법 시행 뒤 실효성이 없고 상사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는다. 다만 직장 내 괴롭힘과 고객 등의 폭언에 의한 정신질환이 업무상 재해가 된다고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개정됐다. 직장 괴롭힘으로 산업재해가 인정돼 회사가 내야 할 산재보험료가 인상되면 괴롭힘이 줄어들까? 정부가 공공기관부터 일벌백계한다면 민간기업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야만의 한국 직장에서 살아남기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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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직장갑질119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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