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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공고는 광고, 좋은 건 다 쓸 수 있다?

정규직 모집 광고 실제는 비정규직… 정부와 구인·구직 사이트, 불법광고 방치
등록 2019-05-09 11:22 수정 2020-05-03 04:29
구직자들이 채용 공고를 살피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구직자들이 채용 공고를 살피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었던 준규(가명)씨는 채용정보 사이트 ‘잡코리아’에 올라온 광고를 보고 원서를 냈다. 비정부기구(NGO)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캠페인을 하는 업무였다. 전화로 정규직을 뽑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라고 했다. 면접 때 인사 담당자는 유럽 본사의 채용 규정에 따라 1년마다 계약서를 쓰고 2년 이후에는 ‘오픈 엔드’(open end·계약 종료가 정해지지 않음)라고 했다. 대표는 준규씨에게 본사의 방침이라 계약서를 쓰긴 하지만 국내법상 정규직이기 때문에 고용 걱정은 말라고 했다.

정규직 공고로 입사했지만

직장생활은 순탄했다. 언론에 나오는 ‘갑질’도 별로 없고 직원들 관계도 좋았다. 연봉은 많지 않았지만 공익적인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사본부장과 사업본부장이 바뀌었다. 사무실 분위기가 달라졌다. 강압적인 업무 지시가 내려오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제대로 업무를 처리하지 못한 직원들에게 모욕을 주는 일도 잦았다. 연차를 쓰는 것도 부담스러워졌다. 준규씨는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새 인사 담당자는 준규씨와 동료들에게 계약 연장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준규씨는 입사 당시 정규직으로 채용공고를 했고 인사 담당자가 정규직임을 확인해줬다고 말했지만, 새 담당자는 근로계약서를 내밀며 본인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준규씨는 퇴사한 임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사가 국세청에 신고할 때 정규직 인원을 보고하는데, 정규직으로 보고했고 근로복지공단에도 계약직이 아닌 상근직으로 등록돼 있다고 했다. 그는 재차 인사 담당자에게 물었지만, 법적 효력이 있는 것은 근로계약서라고 했다. 계약기간이 명시됐기 때문에 정규직이 아니라고 했다. 준규씨와 동료들은 억울했다. 채용공고와 약속은 효력이 없고, 근로계약서만이 법적 효력이 있다면 취업 사기를 당해도 어쩔 수 없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은 2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기간제 노동자를 쓸 수 있게 돼 있다. 근로계약서에 기간이 명시된 상태라면 기간제(계약직) 노동자이기 때문에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근로관계가 해지된다. 계약기간을 둔 것이 형식에 불과하고, 계약이 갱신되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생겼다는 이른바 ‘갱신기대권’이 있다면 법원은 정규직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채용공고나 당시 인사 담당자의 증언만으로 갱신기대권이 있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

2017년 11월 서울고등법원은 15차례 ‘쪼개기 계약’을 한 뒤 2년이 되기 직전인 1년11개월에 근로계약을 해지한 사건에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2년을 초과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을 회피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기간제법의 취지를 잠탈하는 탈법행위”라며 부당해고를 인정했지만, 1·2심 법원은 갱신기대권이 없다고 판결했다.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 제4조(거짓 채용광고 등의 금지) ②항에는 “구인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채용광고의 내용을 구직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돼 있다. 하지만 벌칙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다. 채용절차법 위반으로 벌금을 물 수는 있지만, 부당해고를 인정받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사기광고 냈다가 수정하면 그만

지혜(가명)씨는 구인·구직 사이트 ‘사람인’에서 ㄷ회사의 채용공고를 봤다. “계약직 근무기간 6개월 정규직 전환 가능”이라 돼 있었고, 상여금과 식대도 준다고 했다. 면접에서도 별다른 얘기가 없었다. 정규직 꿈을 갖고 출근했지만 그의 자리는 어느 정규직 노동자의 출산휴가를 대체 하는 것이었다. 6개월이 지나 정규직이 돌아오는 날, 그는 회사에서 쫓겨났다. 정규직 전환은 애초에 거짓말이었다. 상여금과 식비도 지급되지 않았다.

지혜씨는 인사과를 찾아갔다. 산전후 휴가 대체 자리라는 사실을 채용공고와 면접, 근로계약서에서 숨긴 것에 대해 항의했다. 인사과장은 “근로기준법상 꼭 ‘산휴대체’라고 기재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가 고용노동부에 신고하자 나타난 사장은 “공고는 일종의 광고라 좋은 것은 다 쓸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여태껏 회사에 너처럼 불만을 제기한 사람이 없었다. 그냥 계약기간 끝나면 나갔지. 사람이 좋게 좋게 넘어갈 줄 알아야지.”

지혜씨가 문제를 제기하자 회사는 사람인의 채용공고를 바꿔놓았다. 그는 사람인에 거짓 구인광고를 신고하고 구인광고 수정 내용 자료를 요청했지만, 사람인은 기업정보 자료를 개인에게 전달할 수 없다고 했다. 회사가 사기 채용공고를 올려놓고 문제가 되면 수정하면 그만이었다.

고용노동부는 “출산휴가자 대체인원을 구하는 것을 채용공고상에 명시하는 것이 구인자의 법적인 책임은 아니고, 채용공고상의 복리후생과 근무환경은 사업장의 단순한 근무환경을 서술한 것이지 근로조건을 게재한 것이 아니”라며 회사를 감쌌다.

준규씨와 지혜씨는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알바천국’에서 한 달에 550만원 이상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한 나머지 사이트에 올려진 번호로 전화했고 면접을 봤습니다. 광고에 나온 대로 벌고 싶다면 지입차(운수회사 명의로 등록된 개인 소유 차량)를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면 되는 줄 알고 계약서를 썼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기당했음을 알았습니다.”

“처음 채용공고에서도 멀리서 온 직원들을 위해 기숙사를 무료 제공한다고 했고 면접에서도 그렇게 말씀해주셨는데, 한 달 수습기간이 끝나니 일방적으로 기숙사 비용을 받겠다고 합니다.”

“채용공고에서 근로 제공 업무는 ‘냉동기 선임’인데 전보 배치로 근무 장소가 이전돼 ‘보일러 선임’을 맡게 되었고, 업무 변경이 부당하다고 얘기했지만 퇴사 압력이 두려워 이의 제기를 못했습니다.”

‘일자리 사기’는 상품 사기보다 나쁘다

구인·구직 사이트에 불법·과장 광고가 판친다. 정규직이라고 광고하는데 가보면 파견직이다. 세상 경험이 짧은 청년들이 덜컥 낚시에 걸려든다. 채용정보 회사들이 방치하고 정부가 외면하는 사이, 불법광고가 넘쳐난다. 채용절차법의 처벌 조항을 징역형으로 강화해야 한다. 이에 앞서 고용노동부가 채용절차법 위반으로 불법광고 회사를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 구인·구직 회사도 ‘삼진아웃제’를 도입해 불법광고를 규제해야 한다. 일자리 사기, 불법 채용공고는 상품 사기광고보다 죄질이 훨씬 나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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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직장갑질119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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