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나는 이제 제법 오래된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BIYN·Basic Income Youth Network)의 후원회원이다. BIYN은 기본소득이 실현된 사회를 만들려는 개인들의 네트워크로, 2012년 생긴 단체다. 전업 활동가 한 명도 없는, 다시 말해 각자 다른 직업을 가진 n%의 활동가(일상의 일정 부분을 ‘활동’으로 채우지만, 자신의 직업 정체성을 활동가로 일치시키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로 구성된 BIYN은 지난 4월8일 ‘리론칭 파티’를 열었다. 단체라고는 하지만 법적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으며, 몇몇 운영위원과 좀더 적극적인 활동회원들의 자율적 의지만이 이 단체의 존속을 책임지고 있다. BIYN은 이런 형태로 단체를 유지해갈 수 있을지 고민해왔고, 그 고민의 결과가 리론칭 파티에 담겼다.
BIYN은 ‘느슨한’ 구성뿐만 아니라 활동 방식도 독특하다. 대개의 비영리조직 또는 시민단체가 정서적 기조든 활동의 방법이든 저항·계몽·지원 중 하나의 모습을 띠기 마련인데, BIYN은 이 중 어떤 것과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 이 세 가지보다 BIYN에 어울릴 법한 단어는 ‘스토리텔링’일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그 자체로 뚜렷이 설계된 목적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충실성에 초점을 맞춰 이루어지는 행위다. 리론칭 파티를 열면서 운영위원인 박유형이 공유한 글을 보면,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스스로 하는 일이 그들 활동의 중심에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글의 일부를 아래 옮긴다.
“BIYN이 호명되는 순간들은 청년의 이야기가 필요한 몇 안 되는 경우였고, 그마저도 사회에서 통용되는 ‘청년서사’에 부합하길 요구받았지요. 그러나 우리는 처음부터 기특하거나 불쌍한 청년이 될 생각은 없었습니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그건 곧 자기 자신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이 무엇인지 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이 굳이 ‘기특함’이나 ‘불쌍함’ 같은 우회로를 선택할 이유는 없지요. 물론 때때로 어느 자리에 나가서 내 말은 아니지만 그 자리에 어울리는 말들을 하고 돌아온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은 꼭 자기 전에 후회했지요. 그런 시행착오를 여러 번 거치면서 BIYN 안에는 암묵적인 약속이 생겼습니다. 우리의 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게 아니라면 하지 말자. 처음에는 사회가 요구하는 청년의 서사를 이겨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지만, 결국 깨달은 것은 기존 서사의 압력을 이겨내고 우리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이 이야기가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대신해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그들 활동의 ‘운동’으로서 효과성을 따져볼 생각도 없이 후원을 시작했다.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이야기를 통해 상상한 화자를 좋아한다는 것과 대체로 같은 의미다. 회원이 되어 단체에 관심을 더 기울이게 되면서 BIYN의 울타리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응원하게 됐다. 이제 BIYN은 내게 실재하는 얼굴들로 떠오른다. 나는 그 얼굴들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어 BIYN을 후원한다.
스토리텔링은 가상으로든 실제로든 개인적일 수밖에 없다. 개인적인 이야기들은 정확한 맥락 안에서 전해질 때 힘이 생기고, 그런 만큼 당장 규모화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운동의 전략으로서 스토리텔링이 영리한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좋은 스토리텔링의 힘이 귀한 것은 좋은 이야기는 어떤 열매가 될지 모르는 ‘씨앗’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금전으로 환산될 수 있는 효용이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라고 믿듯이, 운동 역시 당장의 정치적 영향력으로 모든 가치가 환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존속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탄생한 성평등 규약과 활동 계획을 발표한 BIYN의 리론칭 파티는 또 하나의 근사한 스토리텔링이었고, 그만큼 두터운 맥락을 전제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BIYN의 이야기에 공명해온 이들이 여기 모여 귀 기울여 듣고 있다는 믿음 덕분이었을 테다. 맥락을 공유하는 자리의 미덕은 서론을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깊이 내려가는 대화를 할 수 있다. 그 대화 덕에 우리는 더 많은 이들 앞으로 나아가 ‘나는’을 주어로 각자의 이야기를 시작할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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