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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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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4·3

등록 2018-04-06 22:52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지난 1월 말, 고교를 졸업한 친구 아들이 홀로 산티아고로 떠난다고 했을 때 그 여정이 궁금했다. 수능에 시달리며 온갖 스트레스에 어두운 얼굴이던 아이가 가슴속에 오래도록 준비해온 꿈이 걷는 것이었다니. 30일간의 여정에서 돌아온 그와 마주했다. 부끄럼 많고 웃음기 없던 아이는 자주 웃고, 한결 부드러워진 얼굴이었다. 길을 나서던 풋풋한 청춘의 가슴은 또 얼마나 설레었을까. 걸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제주의 올레길은 애도의 길

“그런데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걷기만 했죠. 한국 사람들은 너무 생각이 많고, 걱정도 많고, 욕심도 많은 것 같아요. 블로그, 사이트, 카카오톡 다 정보 알아보고 여기가 좋다 하면 무리해서라도 거기까지 걷고, 그러는 거예요.”

아이 눈에 비친 산티아고 풍경은 이랬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리밭길이라 처음엔 예쁘다가 며칠 가니깐 나중엔 질려요. 제주 올레길은 계속 풍광이 바뀌잖아요.” 그렇지만 스페인 땅끝 피스테라에서 본 바다가 고향 제주 바다와 닮아 놀랐다고 했다.

아이가 오래 머문 길은 ‘용서의 언덕’이라는 곳이었다. 순례객들이 발길을 멈추는 기다란 추모비 앞이었다. 왜 용서일까. 스페인 내전에서 숨진 희생자 추모비를 보니 4·3이 생각나서 마음이 더 아팠다고 했다. 아이는 이제 올레길을 걷고 싶어 한다. “우린 4·3을 잘 배우지 못했어요. 근데 70년이 됐잖아요.”

4·3 70주년을 맞는 제주의 올레길은 애도의 길이다. 절경의 올레 코스마다 4·3 흔적이 없는 곳이 없다. 겨울에서 봄까지 생명력을 자랑하는 동백길, 화들짝 봄을 편 벚꽃길, 샛노란 유채꽃길, 4·3평화공원의 꽃등처럼 켜진 백목련길을 걷는다. 꽃길을 걷지만 마음은 꽃길이 아닌 시대를 살았던 이들을 생각하며 그 길을 걷는 사람이 많아졌다.

70년이 되는 4·3을 맞아 제주를 답사하는 순례팀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4·3평화공원을 찾는 관람객은 하루 1천 명이 넘는다. 4·3길을 걷는 이들은 제주 곳곳이 학살터이자, 통곡도 없이 묻혀버린 사람들의 길이자, 잃어버린 마을터, 성곽터였다는 사실에 충격받는다. 외국 기자들은 4·3 참극을 지금껏 몰랐다며 그들의 나라에 가서 알리겠다고 했다.

직접 이 길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이들의 감각은 어떤가. 70년 전 정방폭포에서 부모가 학살되는 장면을 보았던 팔십 대 할머니는 폭포 이름을 들으면 지금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갓난아이였던 자신을 맡겨두고 어머니만 희생된 곳이 성산포 터진목임을 뒤늦게 알았다는 할머니에게 이곳은 아픈 공간이다, 열여덟 학생복 입은 신랑을 표선백사장에 쓰러져 있던 집단 희생된 주검 속에서 찾았다고 회상하는 아흔의 해녀에게 이곳은 슬픈 기억의 공간이다.

4·3의 전국화를 향한 큰 외침

하여, 이번 4·3 70주년은 각별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국가폭력의 희생자들과 유족들은 올해 4·3 추념일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맺히고 맺힌 유족들의 통한을 달래주리라 기대하며 가슴 설레어한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던 4·3이기에 올해는 1년 내내 행사가 이어진다. 모두가 “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를 외치고, 서울 광화문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제주4·3, 이제 우리의 역사로’란 주제로 4·3 70주년 특별전을 열고 있다. 4월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문화제는 4·3의 전국화를 향한 큰 외침이다. 4·3에 대한 지독한 반성과 철저한 진실 규명만이 억울하게 학살된 영혼들을 위로할 수 있다. 4·3은 이제 4·3을 모른다 하지 말라고 외친다.

허영선 시인·제주4·3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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