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서 도담이는 저렇게 앉은 채로 책을 읽는다.
날마다 낮 2시30분이 되면 알림장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날아온다. 알림장의 정체는 도담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이 아내와 내게 보내는 도담이 생활 보고서다.
‘원에서 가정으로’라는 제목이 달린 이 알림장은 글과 사진으로 구성돼 도담이의 어린이집 생활을 소상히 확인할 수 있다. 글과 사진 아래에 있는 표에는 아이의 기분, 건강, 체온, 식사 여부, 수면 시간, 배변 상태 등 각종 정보가 기록돼 있다. 아침 일찍 출근해 해 질 녘에 퇴근하는 나와 아내는 도담이가 보고 싶을 때마다 알림장을 몇 번씩 들여다보며 그리운 마음을 달랜다.
알림장을 보다가 도담이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또래 친구들과 달리 집에서 도담이는 걷기는커녕 앉지도 않는다. 대체로 기거나 눕고, 보행기를 탈 때만 앉거나 선 자세다. 선배 아빠 김완 기자는 “연습 안 시켜도 된다. 인생은 실전”이라고 말해주었지만, 내 아이가 발달이 늦은 걸까 걱정 안 할 도리가 없다. 그런 아이가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어린이집에선 태연하게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선생님이 반 아이들과 함께 놀게 하기 위해 일부러 앉게도, 서게도 한단다. 선생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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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장 중에는 아빠로서 울컥하며 속으로 뜨끔한 내용도 있다. “오늘은 놀이하면서 옹알이를 엄청 하구요. 아빠, 아빠를 한동안 계속 불렀어요. 도담이가 집에서 아빠와 얼마나 좋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요즘 밤마다 취재원을 만나랴 마감하랴 제대로 놀아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내용의 댓글을 남기고 싶었지만, 끝내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알림장을 처음 받았을 때는 도담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지만, 지금은 담임선생님이 도담이를 포함해 세 아이를 돌보느라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이 앞선다. 알림장을 토대로 선생님의 하루를 그려보면, 등교 시간인 9시30분보다 한 시간가량 일찍 출근해 아이 맞을 준비를 하고, 아이들이 도착하면 함께 놀아주다가 간식과 점심을 챙겨준다. 낮잠을 재운 뒤 간식을 먹이고 오후 3시에 집으로 돌려보낸다. 참, 알림장도 작성해야 한다.
아이 하나 돌보기도 큰일인데 무려 셋을 하루 종일 본다니 힘에 부칠 만하고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없겠다 싶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처음 등교했던 3주 전,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퇴근하자마자 초저녁에 곯아떨어졌다는 공지 내용을 보고 안쓰러움과 동시에 존경심이 들었다.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고 싶다면 아이를 안정적으로 키울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데 신경 써야 하고, 그러려면 어린이집 확충만큼이나 선생님들의 근무 환경을 좀더 쾌적하게 만드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글·사진 김성훈 기자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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