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 좀 길게 머무른 캐나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있었던 일이다. 예약해둔 공항버스가 제시간에 오지 않았고, 정류장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점점 길어졌다. 지나던 같은 회사의 다른 버스 기사가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버스를 세운 기사는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정류장의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다들 전화 끊어요. 내가 통화 중이에요.” 버스회사 사무실 쪽과 이야기 중이었던 모양이다. 승객들은 버스가 안 오니 전부 회사로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차 세우고 잠이 든 버스 기사전화를 끊은 버스 기사가 전한 소식은 이랬다. “이 기사 양반이 어딘가에 차를 세워놓고 잠이 든 모양이에요. 찾아내서 깨웠다고 하니 곧 올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내가 덜컥 겁이 났다. 저런 말을 하면 어떡하나, 화난 승객들이 늦게 온 기사에게 안 그래도 불평할 텐데. 그러나 그는 금세 한마디를 더했다. “어젯밤 도로 한복판에서 버스가 고장났거든요. 날밤을 새웠을 거예요.” 이 말에 날카로워져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일순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뒤통수에 까치집을 얹고 허둥지둥 도착한 버스 기사가 사람들의 짐을 짐칸에 다 싣고 출발할 준비를 마쳤을 때, 앞줄에 앉은 승객이 유쾌하게 말을 건넸다.
“어제 긴 밤을 보냈다면서요?”
“아까 그 양반이 얘기했나보군요. 아유, 고생했어요.”
이게 전부였다. 버스 기사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안내방송을 했고, 기사에게 은근하게라도 투덜거리는 승객은 한 명도 없었다.
일은 사람이 한다, 제각각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그 제각각의 얼굴이 드러나도 좋은 곳에서 일하며 산다는 것, 그 얼굴이 지닌 맥락을 상상해보고 이해해볼 여유를 갖고 서비스를 사고판다는 것은 일의 본질 자체를 바꾸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캐나다에 머무는 동안 만났던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제각기 다른 표정들이 떠올랐다. 유난히 살갑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좀 퉁명스러운 사람도, 익살스러운 사람도, 내가 산 식료품 중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이 있다며 반가워하던 사람도 있었다. 그곳에서 유난히 상냥한 표정을 하던 사람은 실제 상냥한 사람일 것 같았고, 무뚝뚝하게 할 일만 하던 사람은 내게 불친절한 게 아니라 원래 좀 무뚝뚝한 사람일 것 같았다. 어쩌면 그날 그에게 좀 나쁜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서 나는 서비스가 한명 한명에 따라 더 좋아지기도 하고, 조금 나빠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그저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누구나 매끄럽게 웃음을 띠며 똑같은 문구로 다듬어진 인사를 건네는 곳에서는 소비자의 권리를 챙기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는데 말이다.
캐나다에 고작 한 달 좀 못 되게 머물렀을 뿐이고, 여행자의 낭만이 나를 좀 너그럽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유가 무엇이든, 똑같은 일을 하는 서로 다른 사람들의, 그래서 좀 다른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그곳에서 내 마음이 편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승객에게 길 묻는 버스 기사캐나다에서 돌아오고 얼마 되지 않아, 성산대교를 타야 할 버스가 길을 잃고 양화대교로 들어섰다는 해프닝을 SNS에서 보았다. 이 글을 쓰느라 다시 뒤져보니, 지난해 4월13일에 있었던 일이다. 버스는 노선을 벗어나 여의도로 들어섰고, 기사는 “길 좀 가르쳐주세요”라고 승객에게 도움을 청하기까지 했단다. 간신히 여의도에서 탈출한 뒤 누군가 “덕분에 벚꽃 구경 잘했다”는 농을 건넸고, 버스 안에 잔뜩 웃음이 일었다는, 그야말로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이 동화 덕에 캐나다에서 겪은 일이 그 나라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여기던 내 마음속 작은 낙담이 좀 누그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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