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날개를 접었다 펴는 제주의 관문 제주국제공항. 비행기 굉음 소리를 들으며 바로 내리고 싶지 않다.”
1988년 43년 만에 고향을 방문하려던 자이니치 작가 김석범은 그렇게 말했다. 이곳은 한국 현대사의 대광풍이었던 4·3 때인 1949년과 이듬해 한국전쟁이 터지자마자 수백 명의 민간인이 정당한 사법절차 없이 트럭에 실려와 집단학살된 현장이다. 김석범은 사라진 사람들이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공항 활주로 위를 딛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고향땅에 배로 천천히 닿았다.
10년 만에 재개될 유해 발굴그 예감은 현실이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제주4·3연구소의 유해 발굴 작업으로 활주로 구덩이에서 드러난 실체적 진실은 충격이었다. 목격자들의 증언은 맞았다. 기적처럼 60여 년 만에 층층 산더미를 이룬 주검은 ‘묻힌 진실은 끝내 드러난다’고 말하는 듯했다. 도장, 학생복, 단추, 허리띠 등 유품들이 주검의 신분을 말해주고 있었다. 완전 유해 혹은 뼛조각으로 확인된 380구의 유해 가운데 DNA 검사로 90구의 신원이 확인됐다.
유족들의 참고 참았던 곡소리가 제주 바다를 오래도록 삼켰다. 언젠가 만났던 강 할머니. 서울 가는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마다 큰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기도했다. 정작 아내인 그녀는 비행장 어딘가에 매장돼 있을 남편 생각도 없이, 아무 생각도 없이 타고 내려 미안했다 했다. 그 아내, 62년 만에 남편의 주검을 찾은 여든아홉 그녀는 혼자서 좋은 세상 살아서 미안하다 했다. 그 구덩이에서 아버지를 찾은 초로의 아들은 대학살 시기 부모를 잃고 어떤 아름다움 앞에서도 ‘아름답다’ 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육친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지금도 분명 공항 활주로 어딘가에 묻혀 있을 거라 믿으며 기다린다.
다행히 올봄, 10년 만에 다시 공항의 유해 발굴이 재개된다. 아마도 목격자들의 눈에 비쳤던 지점이 파헤쳐질 것이다.
그들이 본 것이 사실이라면 희생자들은 저 아래 누워 있을 것이다. 저 비행장 아래 구덩이에 여럿이 함께 묻혀 있을 것이다. 공항 가까이 살았던 열네 살 소녀는 집안 제삿날 있었던 일이어서 기억이 또렷하다 한다. 일곱 살 아래 남동생과 와작착 총소리 나는 방향을 함께 봤다. 사람들이 막 우는 소리가 났다. 통시담(변소 돌담)은 높았다. 군트럭엔 불이 켜져 있었고, 유월 열사흘 달이 밝았다. “유난히 휘영청한 달은 너무 환해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았어.”
1950년 8월20일 예비검속으로 희생된 오빠를 둔 구순의 양 할머니가 말했다. “칠월 초야. 어른 키만 한 풀, 천상쿨이 우거졌어. 큰 소나무가 있었어.” 아무 일도 없이 곧 나온다 했던 오빠는 비행장 어딘가에 누워 있을 것이란다. 첫 번째 발굴 때 오빠의 유해가 나오지 않자 할머니의 상심이 컸다. “이것이 마지막 될 거라이.” 그녀는 초조해 보였다. “이게 어디 잊어불 일이야.” 그렇다. 어떻게 잊겠는가. 그녀는 이번 유해 발굴 작업에 생의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었다. 팔십 대의 할아버지도 아버지 주검을 찾을 마지막 기회라 했다.
4·3 70년. 제주섬은 지금 온통 4·3이다. 문재인 정부는 4·3을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어느 해보다 유족들은 올해 4·3을 기다린다. 지금 국회에 상정된 4·3특별법 개정안의 통과는 그 첫 번째 기다림이다. 여기엔 4·3의 진실 규명과 명예회복,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보상 등이 포함돼 있다. 4·3 때 행방불명된 사람만 4천여 명. 죄 없이 구금의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후의 삶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
인권 일으켜 세워야 하는 시간제주국제공항은 누군가에겐 그렇게 아픈 공간이다. 4·3 70년 동백꽃 배지 하나씩 가슴에 달고 비행기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어여쁘지만 하얀 눈 위에 뚝뚝 지던 동백꽃 목숨들처럼 아리다. 비행기는 여전히 굉음을 내며 오르락내리락 분주하고, 찬란하다. 하지만 한 귀퉁이에선 아픈 비명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여기뿐이겠는가. 국가 공권력에 희생된 인권의 무덤이 이 땅의 곳곳에 있다. 강요당한 망각의 역사, 인권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시간이 오고 있다.
허영선 시인·제주4·3연구소 소장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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