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소였다. 그렇지만 다소 허탈감이 몰려왔다. “만세”를 부르고 싶을 만큼 상쾌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11월16일 내 친구인 자이니치 코리안인 이신혜씨가 온라인에서 차별을 선동한 사이트 운영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재판에서, 오사카 지방재판소는 사이트 운영자 쪽에 200만엔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넷우익’들의 모욕적 댓글문제가 된 사이트는 ‘호슈소쿠호’(보수속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오는 댓글을 테마별로 묶어주는 곳이다. ‘보수속보’라는 이름 그대로 보수(우익)적 입장이 특징이다. 좌파나 리버럴, 일본에 사는 외국인 등을 공격하는 댓글을 모아 온라인에서 확산시키는 짓을 하고 있다.
원고 이씨는 자이니치 독립 작가로, 한결같이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기사를 써왔다. 그 탓에 온라인엔 이씨를 멸시하려는 ‘넷우익’들의 댓글이 쏟아졌다. ‘북한 공작원’ ‘기생충’ ‘바퀴벌레’ ‘일본에서 꺼져’ ‘못생긴 년’ ‘거울을 봐라’ ‘죽어’. 이런 내용을 다시 옮겨 적는 것도 지긋지긋한 일이다.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고 모욕할 뿐 아니라,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 정서가 넘쳐난다. 호슈소쿠호는 이런 욕을 온라인에서 모아, ‘재미있고 황당한 뉴스’라고 선전하며 제공했다.
사이트 운영자는 재판에서 “차별의 의도는 없었다” “온라인 댓글을 모은 것뿐이다” “단순한 평론이다”라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웃기지도 않은 소리다. 자이니치에 대해 ‘꺼져’ ‘죽어’라는 글을 쓰는 것이 차별이 아니라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있었던 ‘일본계 미국인 격리 정책’(전쟁 때 미국에 살던 일본계 미국인을 강제로 수용소에 가둔 사건)을 비판할 근거가 사라진다. 유대인 증오를 선동한 히틀러도, 간토 대지진 때 이뤄진 조선인 학살도 모두 긍정할 수 있게 된다.
재판소의 판단은 옳았다. 사이트 운영자의 주장을 ‘인권침해’로 단정하고, 이런 것들은 “평론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또 “인터넷에서 댓글을 모은 것뿐”이라는 변명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운영자의 의사와 의도”가 사이트에 반영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 결과가 200만엔의 배상 판결이었다. 기쁜 일이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기뻐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상식적이고 극히 당연한 결론을 쟁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지, 그리고 이씨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이씨가 제소를 결행한 것은 2014년이다. 이후 그에 대한 엄청난 공격이 시작됐다. ‘건방지다’ ‘외국인 주제에’ ‘일본이 싫으면 꺼지면 되는데’. 차별에 항의하기 위해 소송을 시작했는데, 자신에 대한 한층 더한 차별과 모욕을 불러오게 된 것이다. 이씨는 그럼에도 꺾이지 않고 재판을 이어갔다. 전신에 ‘악의’라는 총탄을 맞아가며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상처를 입으면서도 드디어 승소를 얻어냈다. 그는 일본에서 차별 피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무서워서 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꼭 이겨야 한다”며 사명감을 갖고 재판에 임했다.
소수자들의 고달픈 싸움소수자들의 싸움이란 이런 것이다. 우리 다수들은 “힘내라”고 성원을 보내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이길 때도 질 때도 소수자는 대열의 선두에 섰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증오의 파도를 감당해야 한다. 일본이 이런 사회로 남아서 좋을 리 없다. 차별당하는 이를 ‘운동의 상징’으로 떠받드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성원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차별에 반대하는 우리 자신이 굳은 각오를 해서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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