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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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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무기 없는 세상' 피폭국 일본의 책무

72년 전 히로시마 원폭에 신음하다 숨진 아이들과

지난 7월 핵무기금지조약 교섭 불참한 일본과 한국
등록 2017-08-16 22:38 수정 2020-05-03 04:28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72주기를 맞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8월6일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마련된 ‘원폭사몰자위령비’에 조화를 놓으며 추모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72주기를 맞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8월6일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마련된 ‘원폭사몰자위령비’에 조화를 놓으며 추모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8월6일 일본 히로시마.

예년처럼 올해도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했다. 원자폭탄 투하 시간인 아침 8시15분이 되자 공원에는 평화의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사람들은 고개 숙여 눈을 감았다. 이 시간에는 전차와 버스도 운행을 멈추고, 승객들도 묵도를 올린다. 히로시마는 1분간 깊은 정적에 휩싸였다. 찜통더위에 매미 울음소리만 울려퍼졌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원폭으로 숨진 이들과 하나가 된다.

물을 찾는 아이, 하천 메운 주검들

72년 전 그날, 한순간 섬광에 의해 수만 명이 핵의 화염 속에 타죽었다. 화상으로 짓무른 피부를 축 늘어뜨린 아이들이 “물을 달라”며 이곳저곳에서 가냘픈 신음 소리를 냈다.

“심한 화상을 입은 경우 물을 마시면 안 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불쌍하다 생각하면서도 ‘힘을 내라. 곧 구하러 올 테니’ 격려만 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물, 물’ 하며 신음하다 머잖아 눈앞에서 죽어갔습니다.”

올해 90살 된 할머니는 이렇게 옛일을 회상했다. 그날 직장에서 피폭한 할머니는 운 좋게 큰 부상을 입지 않고 가족을 찾아 (시내를) 헤매다 지옥 같은 풍경을 목격했다.

“그냥 물을 마시게 했으면 좋았을걸. 고통스러웠을 텐데, 무서웠을 텐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할머니는 해마다 8월6일이면 그때 일을 떠올린다. 손수건을 눈에 대고 “미안했어, 미안했어” 가느다란 목소리를 흘리며 할머니는 울었다. 마치 어제 일처럼 숨져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선명히 떠오른다고 했다.

그냥 (원폭 때문에) 순간적으로 목숨을 잃었다면 적어도 고통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온몸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데도 많은 사람이 마지막 목숨을 부여잡고 죽음을 향해 나아갔다. 사람들은 물을 마시기 위해 하천으로 뛰어들었다. 그래서 (히로시마 중심부) 하천변은 주검으로 가득 메워졌다.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무기의 무서움을 ‘몸’으로 아는 나라다. 전쟁의 가해국이자 피해국이기도 하다. 그래서 핵무기의 끔찍함과 범죄성을 세계에 널리 호소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핵무기 없는 세계’를 목표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지난 7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핵무기금지조약’ 제정 교섭회의에서 이 조약이 다수의 찬성으로 채택됐다. 조약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위해 핵무기의 사용, 개발, 실험, 생산, 제조, 보유 등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핵억지력의 근간이 되는 ‘(핵을) 사용하겠다는 위협’도 금지된다. 핵무기는 위법이라는 조약이 유엔에서 채택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유일한 피폭국인 일본은 핵보유국인 미국·프랑스 등과 보조를 맞춰 교섭회의에 참가하지 않았다(한국도 불참했다). 미국의 ‘핵우산’(핵확장 억지)에 의존하는 일본과 한국 등 동맹국은 핵무기를 철폐해야 한다는 국제조약을 무시한 것이다.

‘한심한 일이다.’ ‘분노를 느낀다.’ ‘정부에 실망했다.’ 지금도 (원폭 투하로 발생한) 지옥 같은 풍경을 기억하는 피폭자와 유족들은 당연히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8월6일 히로시마 평화기원식전에 참석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기념사에서 “핵무기의 참화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하면서도 “조약은 비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분명히 밝혔다. (핵보유국인) 미국에 대한 배려를 피폭국으로서 갖는 책임보다 우선시한 결과였다.

피폭단체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책상을 치며 “용서할 수 없다”고 분노를 쏟아냈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고령의 피폭자들은 살아 있는 동안 핵무기 철폐를 향한 길잡이 세우기를 염원한다. 올해야말로 기회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기회를 넘겨버리고 말았다.

일본인이 짊어진 의무

지금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해야 할 책무가 있다. 나는 그 책임을 방기하고 싶지 않다.

핵 화염 속에 타죽어가는 아이들을 보고 싶지 않다. 나 역시 죽고 싶지 않다. 그 누구도 죽이고 싶지 않다. 지옥 같은 (핵의 참상에 대한) 기억을 계속 간직하면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전쟁 없는 사회’와 ‘핵무기 없는 사회’를 만들어가자고 호소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일본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가 짊어진 의무이다.

야스다 고이치 일본 독립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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