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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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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역할은 ‘권력 감시’

아베에 맞서면 프라이버시 폭로되고

추어올리면 체포도 피하는 언론 현실
등록 2017-06-15 14:33 수정 2020-05-03 04:28
성폭행 혐의를 받았지만 기소되지 않은 야마구치 노리유키. 과거 일본 민영방송 TBS에서 활동했던 그는 2016년 아베 신조 총리의 국정운영을 다룬 책 <총리>를 펴낸 대표적인 ‘친아베’ 언론인이다. 일본 NTV <뉴스제로> 화면 갈무리

성폭행 혐의를 받았지만 기소되지 않은 야마구치 노리유키. 과거 일본 민영방송 TBS에서 활동했던 그는 2016년 아베 신조 총리의 국정운영을 다룬 책 <총리>를 펴낸 대표적인 ‘친아베’ 언론인이다. 일본 NTV <뉴스제로> 화면 갈무리

젊은 시절 선배 기자로부터 철저히 교육받은 내용이다. “언론의 역할은 권력 감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권력에 포섭되는 기자는 되지 마라.”

지켜야 할 교훈

나는 실패를 거듭하는 무능한 기자였지만 이 교훈만큼은 앞으로도 지켜갈 생각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를 엄하게 교육한 선배 기자들 가운데 ‘권력’이란 강한 힘에 바짝 다가서 어느 사이 ‘어용기자’가 되어버린 사람도 있다. 서글픈 일이다. 물론 모두에게 그럴 만한 사정은 있었을 것이다. 권력을 가진 이는 언제나 달콤한 꿀을 준비해두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손대면 끝이다. 기자로서의 신뢰성이 사라지고 만다.

아베 신조의 집권이 장기화되는 일본에선 국가권력과 언론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용인할 수 없는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현재 ‘가케학원 스캔들’(아베 총리의 지인이 이사장으로 있는 가케학원에 일본 정부가 수의학부 설립과 관련해 특혜를 줬다는 의혹)로 흔들리고 있다. 일본에선 수의학부의 질을 유지하고, 질이 떨어지는 의사의 범람을 막기 위해 오랫동안 대학 수의학부 신설을 허용하지 않았다. 가케학원 이사장은 아베 총리와 ‘친한 친구’ 사이다. 게다가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는 이 학교법인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명예원장’을 맡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의학부 신설에 총리 쪽의 움직임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 와중에 일본 교육행정을 담당하는 문부과학성의 내부 문서가 언론과 야당 쪽으로 흘러들었다. 문서에는 가케학원의 수의학부 신설 신청과 관련해 총리 쪽에서 압력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기록이 담겨 있었다.

총리관저(한국의 청와대)에선 이 문서를 ‘괴문서’로 취급해 “어떤 근거도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얼마 전까지 문부과학성 행정 고위직(한국의 차관)에 있던 인물이 “이 문서는 진짜 내부 문서”라고 일부 언론을 상대로 반론을 제기했다. 정권 처지에선 큰 위기를 맞은 셈이다.

여기서 총리관저의 ‘구세주’가 등장한다. 일본에서 최대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일본의 유력 보수지로 흔히 한국의 와 비교된다)이다. 신문은 이 문서가 ‘진짜’라는 것을 인정한 전 사무차관이 ‘밀회바’(남녀의 은밀한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유흥업소)의 단골이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 정보를 제보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총리관저 쪽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사무차관을 감시하고 미행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정보였기 때문이다. 교육행정 고위직에 있던 인물이 그런 장소에 출입한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은퇴했고 유흥업소에 드나든 일이 법에 저촉되는 행위도 아니다. 이는 분명 ‘가케학원 스캔들’의 불을 진화하려는 총리관저의 책략이었다. (총리관저의 부당한 압력을) 내부 고발한 사건을 ‘아랫도리 스캔들’로 논점을 바꿔치기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정권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지는 이 이를 일부러 기사화했다는 것이다. 이 노골적인 정권 옹호에 내부에서조차 “언론으로서 창피한 일”이라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자연스럽게 가 보도했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보도가 연상된다. -편집자)

또 하나, 한 독립언론인의 ‘성폭행 문제’다. 그는 전 TBS(도쿄방송)의 워싱턴 특파원이었다. 우수한 기자였지만, 역시 아베 정권과 가까운 인물로 알려졌다. TBS 퇴사 뒤 아베 정권과 밀착해 총리를 추어올리는 책을 출판했다.

채동욱 뒷조사와 닮은꼴

그가 TBS 시절 저널리스트를 지망하는 한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그는 여성에게 술을 마시게 해 의식을 잃게 한 뒤, 호텔로 데려갔다. 여성이 눈을 떠보니 자신의 위에 그가 올라타 있었다. 여성은 이후 경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호소했다. 기자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형사들은 해외 출장에서 귀국하는 그를 체포하기 위해 공항에서 대기했는데, 한 경찰 간부로부터 전화가 왔다. “체포를 중지하라”는 것이었다. 현장에 나갔던 형사도,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도 납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사건은 잊혔다. 사실 ‘체포 중지’를 알린 경찰 간부는 아베 정권과 아주 가까운 인물이다. 어용기자가 정권의 힘을 통해 체포를 피했다고 여론은 받아들였다.

정권의 어금니를 뽑으면, 어용신문에 의해 프라이버시가 폭로된다. 정권과 친한 기자라면 체포를 피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용납돼도 좋은 것일까. 권력 감시 의무를 잊은 언론은 속이 텅 빈 살충제와 같다. 무엇을 쏟아내더라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

야스다 고이치 일본 독립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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