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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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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의 증오선동

다니모토 지사 “북한 국민 아사” 발언

차별 용납 않는 시민이 ‘희망의 등불’
등록 2017-07-26 17:46 수정 2020-05-03 04:28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평화공원에서 7월16일 시민들이 ‘같이 행복하게’라고 쓰인 펼침막을 들고 헤이트 스피치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한겨레 조기원 기자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평화공원에서 7월16일 시민들이 ‘같이 행복하게’라고 쓰인 펼침막을 들고 헤이트 스피치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한겨레 조기원 기자

“조선인을 모두 죽여라.”

일본 아이치현에 사는 한 대학생이 트위터에 이 글을 올린 것은 6월21일이다. ‘헤이트 스피치’(차별·선동 표현)로 불리는 글은 인터넷에서 끊이지 않는다. 많은 경우 익명 발언이라 누가 글을 썼는지 특정하기도 어렵다.

증오 흩뿌리며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

특이하게도 이 학생은 실명으로 글을 올려 소속 대학이 곧바로 드러났다. 대학 쪽에 학생을 비판하는 항의가 이어졌다. 대학은 바로 조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문학부 3학년 남학생이 자신이 올린 글이라고 했다. 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이 남학생은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다니모토 마사노리 이시카와현 지사의 발언에 자극받아 트위터에 “모두 죽여라”는 글을 썼다고 한다.

다니모토 지사는 6월21일 이시카와현의 한 호텔에서 열린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계속한다면) 군량미를 차단하는 공격을 해서 북한 국민들을 아사시켜야 한다.” 다니모토 지사는 강연 뒤 기자회견에서 이 발언을 문제 삼는 기자에게 “북한 국민들의 생활이 곤궁하도록 몰아붙인다면, (김정은 정권은) 내부로부터 붕괴할 것이다. 국민들이 아픔을 느낄 만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발언 취지를) 설명했다.

완전히 용납할 수 없는 발언이다. 지사라는 공직에 있는 사람이 인간이 ‘굶어죽는 것’을 바란다는 것인가. 나 역시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선, 이를 긍정하려는 어떤 이유나 논리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권력자를 비판할 때 과격한 언어를 사용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니모토 지사의 발언은 일반 국민들이 ‘굶어죽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죄 없는 사람들의 죽음을 바라는 위정자는 절대 용납해선 안 된다.

“모두 죽여라”고 쓴 대학생을 용납할 수 없지만, 그 이상으로 다니모토 지사의 발언을 문제 삼아야 한다. 증오의 감정은 연쇄작용을 일으키고 확대된다. 우리가 정신 차렸을 때는 차별과 편견으로 인해 모든 것이 불타고 만 세상 풍경이 드러난다. 이런 화재의 발화점은 늘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작가·예능인의 입이다. 자기 발언의 영향력을 아는 사람들이 무책임하게 내뱉은 한마디로 인해 사회 전체에 분단과 균열이 발생한다. 타인을 배제하는 사람들을 길러내는 것이다.

문제의 글을 쓴 남학생에게 대학이 ‘주의 처분’을 내리고 정기적인 상담을 받도록 조처했다고 한다. 물론 이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남학생을 선동한 사람은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았다. 그래도 좋은 것일까.

나는 수년간 일본의 차별 문제를 뒤좇았다. 이 문제를 취재하면서 즐거웠던 경험은 한 번도 없다. 눈앞에 날아드는 것은 언제나 일본 사회의 추악한 풍경뿐이다.

“자이니치 코리안을 일본에서 몰아내자”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인을 “사회의 천덕꾸러기”라며 죽인 이가 있고, 가난한 사람에게 “사회복지에 의존하지 말라”고 공격하는 이도 존재한다. (지진이나 원전 피해 등으로) 가설 주택에 사는 사람들에게 “국가에 응석 부리지 말라”고도 한다.

이들은 꼭 ‘애국자’라 자칭하며 ‘국가를 위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에게 (남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논리를 제공하는 것은 늘 권력 있는 사람이다. 정치인이, 영향력을 가진 저명인이 ‘증오’의 연료를 사회 전체에 흩뿌리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애국도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의 마음과 사회를 파괴하는 일이다. 나는 자신을 ‘애국자’라 칭한 적은 없다. 그러나 차별의 현장을 보면 결국 국가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더 이상 국가를, 내가 사는 사회를 부수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다.

“내가 사는 사회를 부수지 말라”

어깨를 붕붕 휘저어도 모자랄 만큼 차별이 횡행하는 일본 사회이지만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7월16일 자이니치 코리안이 많이 사는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서 차별주의자들이 ‘외국인 배척 시위’를 했다. 이런 시위를 용납했다는 자체가 일본 사회의 오점이다. 그날 아침 이 추악한 시위에 반대하는 시민 약 1천 명이 가와사키에 모였다. 대부분은 노조나 정당에 속하지 않는 보통 시민이었다. “차별을 용납할 수 없다”는 현수막을 걸고 시위대를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대를 가로막는 사람들로 인해 시위는 겨우 몇 분 동안, 거리상으로 300m를 나아간 상태에서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차별주의자들을 물리친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희망의 등불을 보았다.

차별은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 힘을 믿고 싶다. 그런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사회를 사랑한다.

야스다 고이치 일본 독립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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