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전 일본 오키나와 지사 오타 마사히데가 숨졌다. 92살 생일에 입원 중인 병원에서 가족과 간호사들이 불러주는 생일 축하 노래를 끝까지 듣고 숨을 거두었다. 그는 미군기지에 둘러싸인 오키나와에서 학자로, 지사로 ‘반전’ ‘반군사기지’의 외길을 걸어온 인물이었다.
나는 지난해 입원하기 직전의 오타와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는 “전쟁을 증오한다”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오키나와에선 일본에서 가장 격렬한 지상전이 펼쳐졌다. 이 지역 학생이던 오타도 철혈근황대(鐵血勤皇隊·자기 몸을 무기 삼아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부대로, 주로 오키나와의 어린 학생들이 징집됐다)에 징집돼 정글 안에서 미군과 싸웠다.
당시를 회상하던 오타는 “지옥 같은 날들이었다”며 고통에 일그러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친구들은 대부분 미군 공격으로 숨졌다. 죽은 이들의 피가 섞인 더러운 물을 마셔가며 정글 안을 헤매었다. 적은 미군만이 아니었다. 오타는 본토에서 파견된 일본군에게도 증오를 품었다.
전쟁이 끝난 자리, 평화를 꿈꾸다예전이나 지금이나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로부터 차별당하고 있다. ‘야마톤추’(일본인을 부르는 오키나와어. 오키나와인들은 자신을 ‘우치난추’라 부른다)는 오키나와 현민을 신용하지 않고 미군의 스파이라고 의심해 처형하는 일도 있었다. 주민의 음식을 빼앗거나, 병사들의 안전을 우선시해 방공호에서 주민을 내쫓는 일본 군인도 있었다.
전쟁이 끝났는데도 오타에게 남은 것은 절망뿐이었다. 살아갈 의욕을 잃었다. 미군 포로로 군 시설에서 일할 무렵인 1946년 11월, 일본군헌법이 새로 공포(시행일은 1947년 5월3일, 이날은 일본 헌법기념일로 휴일이다)된 것을 알았다. 오타는 여기서 희망을 보았다.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감동을 느꼈다. ‘일본은 두 번 다시 전쟁을 하지 않는다, 군을 갖지 않는다’고 헌법에 쓰였다. 살아남아 잘됐다고, 그때 처음 생각했다.” 오타는 헌법을 노트에 필사했다. 이를 소중하게 가슴에 품고 새로운 사회에서 살아가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오키나와는 헌법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있었다. 오키나와는 일본에서 분리돼 미군 점령 아래 놓였다. 미군은 오키나와에 계속 남았다. 일본도, 미국도 오키나와를 이용했다.
오타는 헌법을 믿었다. 오키나와를 전쟁터 삼아 사람을 죽이고 지역을 파괴한 일본과 미국의 민주주의를 믿었다.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 그 일원이 되기 희망하며 오타는 도쿄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다시 미국에 유학을 갔다. 필사적으로 민주주의를 배웠다.
1972년 5월 오키나와는 겨우 일본에 복귀했다. 동경하던 헌법을 일본인으로서 획득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일본도 미국도 오키나와를 계속 배신했다. 미군기지는 오키나와에 남겨진 그대로였다. 미국과 일본은 격전지로서 전쟁의 희생양이던 오키나와를 ‘안전 보장의 요석’으로 위치지었다.
오타는 싸웠다. 학자가 되어 전쟁의 기억이 잊히지 않도록 오키나와전 역사 연구에 몰두했다. 다시는 전쟁을 되풀이하면 안 된다고 학생들에게 호소했다. 또 ‘기지 없는 섬’을 이상으로 내걸고 지사에 당선됐다. 기지의 정리와 축소를 주장하며 미·일 정부와 싸웠다.
양국 정부의 압력을 계속 받으며, 요구마다 건건이 거절당하면서도 오타는 포기하지 않았다. “헌법과 민주주의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정글 안에서 포격을 받으며 죽음을 생각한 그였기 때문에 한번 품은 희망을 간단히 포기할 수 없었다.
헌법으로부터 가장 먼 섬에서 오타는 “전력을 포기한다”고 선언한 일본 헌법을 믿었다. 일본이 이를 어떻게 형해화하려 해도, 난폭하게 다루더라도 믿었다. 동시에 미국 민주주의를 믿었다. 오키나와에 광대한 기지를 계속 유지하며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미국에 격렬히 저항하면서도 민주주의를 믿었다.
새 기지 건설은 오타를 짓밟는 일오타에 대해 ‘반일’ ‘반미’라 평하는 이가 있다. 반체제의 과격파라고 매도하는 이도 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정글 안에서 헤맨 그였기 때문에 누구보다 일본 헌법과 민주주의를 사랑했다. 연필로 헌법을 베껴 쓰던 그날부터 오타는 결코 희망의 빛을 잊지 않았다.
일본의 헌법과 민주주의를 변질시켜 매장하려는 것은 미·일 정부다. 지금 오키나와에서 미·일 정부는 새 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오타의, 아니 오키나와의 희망을 언제까지 배신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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