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란 말이 이렇게 흔히 쓰인 적이 있었을까. 이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일단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 ‘퇴사’를 검색해보았다. 제목이나 부제에 ‘퇴사’가 쓰인 책은 총 15권, 전부 2015년 12월 이후에 출간됐다.
‘회사인간’을 졸업한다는 것퇴사가 요샛말인 건 분명하다. 회사를 그만두는 상황을 표현하는 단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직’이거나 ‘은퇴’였다.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대개 다른 회사로 옮기거나, 더 다닐 수 없거나, 다니지 않아도 될 나이까지 회사를 다녔을 때 벌어지는 일이었다. 퇴사란 말에는 좀 다른 뉘앙스가 있다. 15권의 제목을 죽 살펴보면 알 수 있다. …. 이 책들에서 퇴사는 ‘한 회사에서 물러남’이 아니라 ‘회사생활에서 퇴거’다. 다음 직장을 전제하지 않은 채, 회사 바깥에서 일하기를 모색하려고 회사를 그만두는 일을 뜻한다.
나는 세 번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앞선 정의에 따르면, 처음 두 번은 이직이었고 한 번은 퇴사였다. 세 번째 회사에선 그곳 사람들과 일을 좋아했다. 몇 년에 걸친 고민 끝에 도달한 결론은 그 회사가 아니라 보편적 회사가 만들어내는 일상의 틀이 나를 괴롭게 한다는 것이었다. 다음 갈 곳을 정하지 않은 채 회사를 떠나던 날, 나는 홀가분하면서 무서웠다. 여전히 일하겠지만, 명함 없이 일한다는 것이, 소속이 없다는 것이 어떤 무게일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때까지 나는 조직 밖에서 일하는 다양한 사례와 만나지 못했고, 창업자도 자영업자도 아닌 그 무엇으로 회사 밖에서 일하는 방식을 상상할 수 없었다. 퇴사하고 나서야 회사 밖의 세계와 만났고, 그곳에서 적잖은 사람이 규정되지 않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일하며, 나름대로 먹고산다는 것을 발견했다.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라는 만화 의 대사에는 진실이 담겨 있다. 그렇다고 회사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지옥에 사는 것처럼 모두 불행한 것도 아니었다.
세 번째 퇴사 뒤 7년 가까이 지났고, 나는 예기치 않게 다시 회사에 다녔다. 그러나 퇴사를 경험한 뒤의 회사는 결코 예전 같지 않다. 이직이 아닌 퇴사는 ‘회사인간’을 졸업하고 ‘회사사회’ 밖 세상을 발견한다는 의미였다. 이후 다시 직장인이 됐지만 회사는 이제 그전의 회사와 같지 않다.
‘일상기술연구소’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책을 펴낸 탓에 기술 있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 얼마 전엔 “회사 밖에서 일할 때의 기술과 직장인으로 일할 때의 기술이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을 받았다. 곰곰이 생각해보고 내놓은 답은 이랬다. “저는 그 둘이 다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요.” 직장 밖에서 7년가량은 ‘나의 일’을 하는 감각을 만들어주었고, 직장 안에서 일하는 지금도 그 감각을 최대한 지키면서 일하려 노력한다. 그렇게 일하는 게 회사에도 좋은 일이라고 믿는다. 물론 이런 식의 일하기가 모든 직장에서 가능한 게 아님을 안다. 나는 아직까지 운이 좋은 직장인인 셈이다.
밖이 지옥이 아닐 때원하든 원치 않든, 이직도 은퇴도 아닌 퇴사를 경험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아니, 이미 그런 시대의 한복판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 사회를 지탱하는 노동과 분배, 복지의 시스템도 이에 발맞춰 움직이고 있을까. 아무래도 답은 ‘아니다’에 가까운 듯하다. 회사 밖이 지옥이 아니라고 믿을 수 있을 때 회사 안도 전쟁터가 되지 않는다. 그때 비로소 모두가 불안을 무릅쓰지 않고도 ‘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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