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한다.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정말 몰랐다. 속도감이 눈부시다. 원래 ‘개혁’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가히 하루에 한 가지씩 ‘적폐’들을 격파해가고 있다. 벌써 제7호까지 나온 대통령의 업무지시는 하나같이 그동안 한국 사회를 짓눌러온 악과 적폐의 해소다. 문재인 정부가 겨냥한 문제들은 ‘4대강 정책 감사’부터 ‘국가인권위원회 위상 강화’까지 그야말로 사회를 전방위적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이니스프리’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뉴스를 보는 것이 제일 재밌다’는 말이 SNS에 횡행할 정도니 국민적 반향도 더할 나위 없다. 국정 수행 지지도는 역대급이다. 누군가는 군부 사조직 ‘하나회’를 숙청했던 김영삼 정부 초기에 비유하고, 또 어떤 이는 대통령 최초로 피규어가 나온 참여정부 초기의 열기가 재현됐다고도 한다. 촛불의 열망을 업었던 이가 대통령이 되어, 촛불의 의지에 충만한 일들을 펼치니 잊고 있던 정치 효능감이 온 사회를 각성시키고 있다. 국민이 정치에 희망을 품는다는 건 그 자체로 바람직한 일이고, 사회적 진전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기서 철저히 배제된 존재가 있다. 환호와 열기 속에 너무 빠른 속도로 내달리다보니 미처 돌아보지 못한 탈락자들이다. 지난 5월24일 육군본부 보통군사법원은 동성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육군 장교 A대위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군형법 제92조 6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군인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이 조항은 ‘항문’이 직접 명문화된 몇 안 되는 법령 가운데 하나다. 국가가 누군가들의 ‘항문’까지 관리하는 건 과잉이고 냉정히 말하면 법으로 꼴값을 떠는 격이다.
군사법원의 결정으로 동성애는 불법적 행위가 됐다. A대위의 행위는 추행이 아니었다. 그는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하는 군인이었을 뿐이다. 그의 성행위에는 업무적 연관성이 없다. 또 다른 군인과 사랑을 나눴을 뿐이다. 제아무리 군인이라고 해도, 그가 사랑을 나눈 곳은 사적 공간이었다. 성인이 합의하에 마음이 동해 성관계를 맺었는데 그 대상이 동성이란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것이 어째서 이성의 총체라고 하는 민주주의 법률일 수 있는지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다.
동성애 문제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뜨거운 논쟁이 오갔던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동성애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같은 혐오적 질문에 시달리다 혐오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한 채 그 프레임에 휩싸여버렸다. 혐오 질문에 혐오 답변을 공공연히 했던 그는 ‘인권변호사’로서의 자격과 현재성을 의심받다가 결국 사과했야 했다. 문 대통령의 취임 보름여 만에 군사법원이 동성애 군인을 불법적 존재로 낙인찍어버린 것에 그의 책임은 얼마나 있는 것일까. 물론 그 판결은 독립적이다. 대통령의 책임이 직접적이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동성애 차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더라도 법원이 그렇게 판결할 수 있었을까. 문재인 시대 개막 국면에 동성애 차별과 혐오를 흩뿌릴 수 있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앞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넘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노라고 약속했다. 어떤 사람들이 아예 포함되지 않는 나라는 나라다운 나라는 고사하고 온전한 의미의 나라가 아니다. 고려대 김승섭 교수의 말대로 “어떻게 설명하더라도 혐오는 혐오이고, 어떤 낙인을 찍어도 사랑은 그냥 사랑일 뿐”이다. 특정한 사랑만 합법이고, 다른 모든 사랑은 불법으로 범죄시하는 사회는 민주주의 관점에서 결코 ‘나라다운 나라’일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 강화를 지시한 문 대통령의 인권 감수성은 믿음직스러운데 유독 왜 이 문제에는 소극적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군사법원이 동성애를 불법으로 낙인찍은 날, 다른 아시아 국가인 대만은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우리가 함께 혐오의 바다를 건넜으면 좋겠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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