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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하지만 조용한 안보란 무엇인가

북한 군사 문제와 국방안보 분야를 연구하는 김동엽 교수가 쓰는 ‘안 보이는 안보’ 이야기
등록 2017-05-27 17:13 수정 2020-05-03 04:28
좋은 안보란 국민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안 보이는 안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상대의 실체를 인정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대화일 수밖에 없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가동된 2008년 7월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 모습. 연합뉴스

좋은 안보란 국민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안 보이는 안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상대의 실체를 인정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대화일 수밖에 없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가동된 2008년 7월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 모습. 연합뉴스

“해군이던 우리 아빠는 북방한계선(NLL)을 지키기 위해 판문점에서 북한군과 몸싸움을 했습니다. 그때 대통령님이 포기하려 했다면 과연 아빠가 그랬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글을 읽는 순간 제 머릿속에 그동안 겪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마치 빨리 돌린 영화처럼.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딸이 예로 든 판문점 몸싸움 사건은 제 군생활 동안 있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선 천천히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백수 시절 초등학생이던 큰딸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글쓰기를 가르쳤습니다. 기사 한 편을 주고 일주일 동안 고민해서 자기 느낌을 형식 없이 마음대로 써오게 했습니다. 써온 글월을 가지고 딸과 이야기를 나누는 식이라 당시 직업도 없는 아빠로선 무엇인가 해준다는 나름의 뿌듯함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NLL 포기 발언으로 시끄러운 정상회담 대화록 관련 기사를 주었습니다. 딸은 어느 때보다 긴 글을 써서 왔더군요. 그런데 글 속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바로 저였습니다.

딸은 그때 어떻게 그런 용감한 행동을 할 수 있었는지 물어봅니다. 저는 “군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지”라고 대답합니다. 딸은 군복만 입으면 저절로 용기가 생기냐고 되받아칩니다. 저는 군복은 아무나 입을 수 없는 옷이라고 설명해줍니다. 군복을 입을 때는 그만한 자격을 갖추어야 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이지요.

<font size="4"><font color="#006699">북한은 나의 운명</font></font>

딸은 글 마지막에 이렇게 썼습니다. “아빠는 NLL을 포기하지도, 양보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북한을 양보시키려 했습니다. 난 그런 아빠가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대통령님을 믿습니다.” 한때 딸을 학원에도 보내지 못하는 무능한 아빠였습니다. 그래도 부끄러운 아빠만큼은 되지 않았나봅니다.

독자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의 김동엽 교수입니다. 백수를 탈출해 정식으로 ‘교수’ 직함을 받아 월급을 받은 지 이제 1년 남짓이라 여전히 어색합니다. 주로 북한 군사 문제와 국방안보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지만 아직 내세울 만한 성과는 없습니다. 부족함이 많음에도 앞으로 3주에 한 번씩 여러분과 만날 기회를 가지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여느 학자들과 다른 독특한 이력이 있습니다. 1992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했고 20년간 해군장교로 군에 복무했습니다. 2011년 중령으로 예편할 때까지 항해과 장교로 여러 함정에서 근무했습니다. 연평해전(1999년·2002년), 대청해전(2009년) 하면 생각나는 고속정 참수리의 정장과 편대장으로 지휘관 직책도 수행했습니다. 가슴 아픈 일인 ‘천안함’과 동급의 초계함 부(함)장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함께 군생활을 한 사관학교 동기생들에 비하면 함정 경험이 적은 편입니다. 바다보다 육지에서 근무한 시간이 많아 ‘드라이 네이비’(Dry Navy·해군이 마른땅을 밟고 다닌다는 의미)라고 놀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대신 국방부에서 오랫동안 근무했고 통일부도 1년간 경험했습니다. 어쩌면 지금 총을 들었던 손에 펜과 책이 들린 것도 그 때문인지 모릅니다.

제게 북한은 운명이었나봅니다. 동해에 있는 1함대 사령부에서 근무하다 갑작스럽게 발령 난 곳이 해군대학의 북한학 교관이었습니다. 당시 제게 북한은 그저 싸워서 이겨야 할 적 이상,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사실 아는 것이 없었지요. 모르면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범죄입니다. 결국 사비를 들여 몰래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땐 그저 후배들에게 제대로 가르쳐보자는 욕심이었습니다.

북한 한번 제대로 공부해서 가르쳐보자는 꿈은 결국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해군대학에서 강의 준비를 하다 말고 갑작스럽게 통일교육원으로 1년간 연수를 가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지요. 지금도 진행 중인 ‘통일미래지도자과정’ 1기생으로 강제(?) 차출된 것입니다. 덕분에 북한학 박사과정도 중단하지 않고 마칠 수 있었습니다.

통일교육원 연수를 마치고 국방부에 들어간 것은 2006년 제1차 북핵 실험 직후입니다. 당시까지 없었던 새롭게 만든 북핵 문제를 담당하는 자리를 꿰차는 행운을 얻은 것입니다. 제가 가진 핵 지식은 대부분 이때 공부한 것입니다. 육군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말 미친 듯이 자료를 파고 또 팠던 기억이 납니다.

<font size="4"><font color="#006699">총대에서 펜대로</font></font>
6자회담이 사실상 기능을 멈춘 뒤 한·중·일 3개국 수석대표들이 모여 북핵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했지만 해결의 길은 멀기만 하다. 2016년 5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수석대표 회의. 한겨레 박종식 기자

6자회담이 사실상 기능을 멈춘 뒤 한·중·일 3개국 수석대표들이 모여 북핵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했지만 해결의 길은 멀기만 하다. 2016년 5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수석대표 회의. 한겨레 박종식 기자

덕분에 2007년 ‘<font color="#00847C">2·13 합의’*</font> 등 6자회담 과정을 지켜보고 전략을 수립하는 데 참여할 기회도 얻었지요. 6자 틀 속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가장 힘이 실렸던 시기이기에 힘들었지만 참 행복했습니다. ‘2·13 합의’ 이행 발목을 잡았던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불법 자금 반환 문제가 러시아를 건너 해결될 수 있었던 과정이나, 6자회담 참가국 가운데 북한을 뺀 5개국이 중유 100만t에 해당하는 지원을 분담하는 내용 등은 여러분께 꼭 글로 들려드리고 싶은 기억입니다.

2007년은 각종 남북회담이 가장 활발하게 열린 해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제2차 정상회담뿐만 아니라 국방부 장관 회담을 비롯해 다양한 군사회담이 열렸습니다. 해군으로 바다를 떠나온 지 2년여 지나 복귀할 시점에 NLL과 남북 군사협상을 담당하는 자리로 옮겨 국방부에 남게 되었습니다. 적잖은 남북회담 현장에 있었습니다. 판문점 몸싸움 사건도 그때 일어난 일입니다.

금강산 총격, 대청해전,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 등의 사건을 겪으며 밤을 지새웠던 일이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뜻하지 않게 군문을 떠나 연구자로 변신했지만 군에서 배운 이 말만은 간직할 것입니다.

“안이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지난 며칠간 제가 가진 최고의 관심사는 북핵, 미사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입니다. 제가 정기 필진으로 간택된 이유도 북한이 열심히 미사일을 쏘아주고 사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북한 미사일과 사드 덕에 유명세를 타게 되었지요. 그만큼 제 목소리가 불편한 사람이나 집단도 있었을 겁니다.

<font color="#00847C">*2·13 합의: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6자회담의 가장 큰 성과물이던 2005년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 사항에 대해 2007년 2월 체결한 합의. 북한이 60일 이내 영변 핵시설을 폐쇄·봉인하고 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을 복귀시키는 대신 북-미, 북-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대화를 개시하기로 하고 이행에 들어갔다. 2·13합의는 북핵 불능화 단계까지 진전됐지만 2009년 북한의 장거리로켓발사 및 2차 핵실험 등으로 사실상 중단됐다. 이후 북핵 시설도 원상 복구됐다.</font>
<font size="4"><font color="#006699">가짜 북핵·미사일 전문가에 자칭 사드 독립운동가</font></font>

사실 제 전공은 안보와 북한학입니다. 핵이나 미사일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습니다. 사관학교와 군에 있을 때 배운 무기체계공학이 전부일 뿐 독학을 한 것입니다. 일천한 공부로 북핵과 미사일 전문가를 사칭하며 다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국민을 향해 더 심한 거짓말을 하는 양치기가 있기 때문이지요. 가짜 늑대로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고 안심하며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진짜 늑대가 언제 올지를 알고 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지난 1년간 북한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미사일 발사에 북한이 실패하면 국방부는 신속하게 발표하지만 성공으로 보이면 목소리가 작아집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국방부 발표보다 북한 관영 통신인 이나 발표를 기다리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뜻하지 않게 그 틈새를 공략한 것이 오늘의 제 인기 비결입니다.

사드 역시 배치에 찬성하는 사람이나 반대하는 사람 모두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합니다. 이미 사드가 경북 성주 골프장에 들어간 시점에 국회에서 사드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국회의원들에게 제가 한 말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였습니다. 새 정부가 들어왔음에도 사드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사드가 여기까지 온 것은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사드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오늘도 저는 사드 독립운동가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016년 9월 일본 아오모리현 샤리키와 교토부 교가미사키에 있는 주일미군 엑스(X)밴드 기지를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기차를 15번이나 갈아타며 겪은 모험(?)에 대해서도 천천히 얘길 풀어볼까 합니다.

<font size="4"><font color="#006699">안보는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font></font>
1999년 6월 발생한 연평해전 모습. 해군 고속정과 북한 경비정이 충돌했다. 국방부 제공

1999년 6월 발생한 연평해전 모습. 해군 고속정과 북한 경비정이 충돌했다. 국방부 제공

이제 안보는 과거처럼 전통적인 군사위협만으로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안보는 국가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비단 ‘인간 안보’라는 거창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고 해도 국방과 안보의 진정한 수혜자는 국민이 되어야 합니다. 안보는 국민의 것이고, 국민이 곧 안보입니다.

이 지면을 통해 경험에 바탕을 둔 다양한 국방안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독자 여러분을 찾아갈 것입니다. 국민이 안보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연재를 앞두고 어떤 문패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안 보이는 안보’라는 이름을 달기로 했습니다. 안보는 공기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와, 현재 우리가 직면한 불투명하고 예측 불가능한 안보 상황을 담은 중의적 표현입니다. 그리고 ‘안보 이는 곧 안보’라는 일종의 언어유희이기도 합니다.

지난 대선 기간에 어느 당사에 “안보가 경제다”라는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군요. 안보 위협을 내세워 국민에게 표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안보는 과장돼서도 안 되지만 폐쇄적인 비밀주의로 일관해서도 안 됩니다. 시끄러운 국방이나 국민의 신뢰를 잃은 안보는 실패한 것입니다. 진정한 국방안보는 국민을 안심시키고 편안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투명하지만 조용한 안보가 바로 진정한 안보이기 바라는 마음을 ‘안 보이는 안보’라는 에세이에 담고 싶습니다. 건강한 안보를 위해서라면 저만의 목소리 내기를 멈추지 않을 겁니다. 그래야 비록 딸에게 군에서 별을 다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앞으로도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않을테니 말입니다.

<font color="#00847C">*외교·안보 분야의 ‘뜨는 별’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의 ‘김동엽의 안 보이는 안보’가 이번호부터 3주에 한 번씩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김 교수는 다양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북핵 문제 등 한반도 주변의 안보 이슈에 대해 날카롭고 재미있는 분석을 제공할 예정입니다.</font>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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