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석준·강수돌
그림 허지영
사회 장석준_ 진보정당에서 정책을 만들고 교육을 하는 정당 활동가야. 진보적인 시각으로 사회문제를 해석하고 대안을 만드는 연구 활동도 함께 벌이고 있어. 지은 책으로 등이 있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우리는 학교에서 이렇게 배워.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수많은 불평등이 있어. 인류 역사에서 가장 뿌리 깊은 불평등이 뭔지 아니? 바로 여성과 남성 사이의 불평등이야. 여성은 아주 오래전부터 차별받았어. 요즘은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워낙 뿌리 깊다 보니 아직도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지.
한국의 국회를 한번 보자. 어느 나라든 국민의 절반은 여성이야. 고래를 보는 동무의 절반도 여성일 거고. 그렇다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절반은 여성이어야 해. 하지만 전체 국회의원 가운데 여성은 5분의 1이 되지 않아. 다른 나라도 예전에는 마찬가지였어. 하지만 이걸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나라들이 있었어. 아이슬란드도 그중 하나야. 이 나라는 자랑스러운 기록을 하나 갖고 있어. 바로 선거를 통해 세계 최초로 여성 대통령을 뽑은 나라라는 사실! 1980년,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는 세계 첫 여성 대통령이 됐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 대통령이 뽑히기 5년 전인 1975년, 아이슬란드에서는 여성 총파업이 있었어. 파업은 힘없는 노동자들이 힘센 권력자, 부자들한테 뭔가를 요구하려고 일손을 놓고 집회를 열거나 시위를 하는 거잖아. 그런데 아이슬란드에서는 모든 여성이 파업을 벌인 거야. 집에서 아이를 돌보던 엄마도, 회사에 나가 일하던 이모도, 학교에서 공부하던 언니도 말이야.
이유도 충분했어. 이 무렵 아이슬란드에서는 여성이 일자리를 얻고 싶어도 괜찮은 일자리가 없었거든. 일하는 환경이 좋지 않고, 적은 임금을 받는 일자리만 있었지. 그리고 똑같은 일을 해도 남성이 받는 월급의 60% 정도만 받을 수 있었어.
마침 유엔(UN)이 1975년을 ‘국제 여성의 해’로 정했지 뭐야.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국제 여성의 해가 됐으니 여성의 권리를 얻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10월24일을 ‘여성이 쉬는 날’로 정했어. 이날 모든 여성이 일손을 놓고 거리에 나와 불평등을 해결하라고 외쳤지. 드디어 10월24일이 됐어. 아이슬란드 여성 중 90%가 쉬는 데 동참했어. 엄마들은 유모차를 끌고 거리로 나왔어. 여성 노동자가 출근하지 않은 공장은 일손이 모자라 기계를 멈춰야 했고, 선생님이 없는 학교는 수업을 하지 못했어. 물건값을 계산할 사람이 없어서 커다란 상점도 다 문을 닫았지. 파업에 참여한 여성들은 거리로 나와서 여성의 권리를 외쳤어.
그제야 아이슬란드 남성들도 새삼 절실히 느꼈지. 여성이 없으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야. 물론 한 번의 파업으로 모든 게 바뀌지는 않았어.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먼저 여성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시작했어. 바로 다음 해인 1976년, 여성과 남성의 권리는 동등하다는 법을 통과시켰어. 그리고 4년 뒤에는 세계에서 제일 먼저 여성 대통령을 뽑았지. 아이슬란드 여성들이 총파업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을 이룰 수 없었을 거야.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그 뒤에도 10월24일이 되면 ‘여성이 쉬는 날’을 계속하고 있어. 아직 불평등을 해결하려면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재미있는 것은 일을 멈추는 시간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는 거야. 1975년에는 오후 2시5분에 모든 여성이 일을 중단했는데, 2005년에는 오후 2시8분에 파업을 시작했어. 이렇게 해마다 정해진 시간보다 몇 분 뒤에 파업을 시작해서 2016년에는 2시38분에 다들 일손을 놓았지. 이건 여성의 권리가, 미뤄진 몇 분처럼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 걸 뜻한다고 해. 여성 차별과 억압이 사라지는 날이 오면, 여성이 쉬는 날 운동도 사라지겠지?
아이슬란드 언니들, 정말 굉장하지 않니? 모두 나서서 불평등을 없앨 수 있었잖아. 한국에도 여성이 쉬는 날이 절실히 필요해. 더구나 한국은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수백만 명씩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는 나라잖아. 그럼 여성 총파업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왜 돈을 많이 벌어도 행복하지 않을까?경제 강수돌_ 대학에서 경제를 가르치면서 아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삼촌이야.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돈벌이 경제가 아니라, 이웃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살림살이 경제’를 되살리려고 노력해. 쓴 책으로 등이 있어.
오늘은 ‘이스털린의 역설’에 관해 얘기해줄게. 1974년 리처드 이스털린 교수가 한 논문에서 발표한 이론인데 내용의 핵심은, 돈을 많이 벌어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야. 엥? 돈을 많이 벌면 당연히 더 많이 행복할 거 같은데 왜 행복하지 않다는 거지?
엄마·아빠가 매일 바쁘게 생활하는 이유는 아마도 돈을 많이 벌어야 행복해진다고 생각해서일 거야. 그래야 남부럽지 않게 사고 싶은 것도 다 사고 갖고 싶은 것도 가질 수 있으니까. 그럼 행복해지겠지? 이걸 아니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스털린 교수도 돈을 벌면 행복해진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아. 문제는 ‘돈을 어느 정도까지 벌어야 하느냐’야.
사람들이 먹고사는 데 충분한 정도까지 돈을 벌면 그때까지는 소득과 행복이 같이 늘어나. 하지만 충분한 지점을 넘으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더는 예전처럼 행복하지 않을 수 있어. 이게 바로 이스털린의 역설이야. 역설이란 단어는 언뜻 들으면 틀린 것 같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맞는 말인 경우에 써.
최근 낱낱이 드러나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사건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어. 대통령은 한 달에 약 2천만원의 월급을 받아. 보통 사람은 꿈꾸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은 돈이지. 그런데 대통령과 최순실은 재벌·대기업에 수십억원의 돈을 내라고 했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라는 두 회사에 7백~8백억원의 돈을 대기 위해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두 사람은 이 회사를 가지고 온갖 사업을 할 예정이었어. 이미 먹고사는 데 충분한 돈을 벌면서도 욕심을 부려서 더 많은 돈을 거머쥐려고 하다 보니 마침내 모든 게 들통이 났지. 지금 최순실은 감옥에 갇혀 있고 이 일에 관련된 사람들도 수사를 받고 있어.
흥미롭게도 이스털린 교수가 이 이론을 주장하고 30년 뒤에 쓴 다른 논문에서, 이 이론이 잘 들어맞는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라고 했어. 한국은 50년 전보다 1인당 국민소득(GDP)이 300배 이상 늘었지만, 국민이 느끼는 행복감은 별로 높지 않아.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 늘었지. 어린이와 청소년의 행복지수, 어른과 노인의 행복지수조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여러 나라 중 꼴찌를 차지할 정도로 말이야.
삼촌은 한국인의 소득과 행복도가 함께 증가하던 때는 1990년대 초반까지라고 생각해.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더는 행복해지지 않게 됐고. 물론 1997년의 경제위기라는 이유도 있지만, 한국 경제가 조금씩 회복되어 꾸준히 성장해도 사람들의 행복도는 높아지지 않았어. 그래서 지금 한국의 행복지수는 세계적으로도 낮은 편이야.
돈 버느라 고생하는 사이 삶의 질이 빠르게 망가지고 있어. 엄마·아빠가 일을 너무 많이 하면, 쉴 틈도 놀 틈도 없어지고 동무들과 대화를 나눌 시간도 줄어들어. 심하면 건강이 나빠지기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이 물과 흙, 공기가 오염되고 생태계가 심하게 무너지고 있어. 이것들이 모두 삶의 질과 연결돼.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는 사이, 삶의 질이 계속 떨어져서 행복도가 더는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야.
일과 삶의 질 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람직해. 좀 천천히 가더라도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말이야. 과연 우리 삶의 질은 얼마나 높은지 오늘 한번 곰곰이 따져볼까?
* 스스로 생각하는 힘, 동무와 함께하는 마음이 교양입니다. 하나뿐인 어린이 교양지 와 만나세요. 구독 문의 031-955-9131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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