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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 그려진 박정희 망령

대한민국 출산지도
등록 2017-01-10 16:18 수정 2020-05-03 04:28
컴퓨터그래픽/ 김민하 <미디어스> 기자

컴퓨터그래픽/ 김민하 <미디어스> 기자

국가가 또 여성들에게 모욕을 안겼다. 2016년 12월29일 행정자치부는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온라인으로 공개했다. 여기엔 지방자치단체별 합계출산율, 출생아 수, 가임기 여성 수가 담겨 있었다. 시민들의 비난이 폭주했다. 특히 반감을 산 건 ‘가임기 여성’ 수였다. 지도에서 각 지자체를 클릭하면 가임기 여성이 얼마나 거주하는지 한 자릿수 단위까지 공개됐다. 인구에 따라 순위도 매겨졌다. “여성을 애 낳는 기계로 본다”는 비판이 비등했다.

행자부는 출산지도의 취지에 대해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 감소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지역별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알기 쉽게 알려주고 지자체 간 자율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가가 여성을 ‘출산 기계’로 볼 뿐 아니라 여성의 신체를 실적 경쟁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자인한 것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정부는 황급히 출산지도를 삭제했다. 수정 공지문에서는 “용어나 통계는 통계청 자료를 활용해 제공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자신들은 이미 존재하는 통계를 공개한 것뿐이라는 얘기다. 정부는 여전히 뭐가 문제인지 파악하지 못했고 파악할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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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관련 통계는 필요하며, 시민들은 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별 가임기 여성 통계도 기초자료로 중요하다. 시민들이 분노한 이유는 통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정부의 시선과 방식 때문이다. ‘무엇’(what)이 아니라 ‘어떻게’(how)가 문제였다.

더 심각한 건 이런 사건이 계속 반복된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가 국가건강정보포털에 게시한 ‘여성의 이상적인 가슴의 조건’이란 문서는 국가가 여성의 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 문서는 쇄골 중심과 유두 간 거리, 양쪽 유두 사이 거리, 유륜의 직경과 색깔을 상세히 거론하면서 “아름다운 가슴의 조건”을 제시한다. “이제 나라가 여자 가슴 기준까지 세워주냐” “여자가 가축인가?” 등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복지부는 지난해 8월4일 이 문서를 삭제했다.

바로 이런 것들이 한국 사회가 여성이란 존재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이 나라는 여성의 몸을 마치 국유재산처럼 여긴다. 가히 ‘정책적 미소지니(여성혐오)’라 할 만한 이 경향은 거슬러 올라가면 박정희 시대에 뿌리를 둔다.

박정희 정권 초기인 1960년대 초부터 가족계획이 도입되면서 인구학적·경제적 논리에 따라 여성의 육체에 대한 국가의 통제는 전례 없이 강화됐다. 또한 입양제도를 통해 ‘비정상적 출생인구’를 국외로 송출하는 것을 국가가 공식 승인하고 시행한 시기였다. 체제 재생산과 효율을 명분으로 구성원의 신체를 구속, 통제하고 때로 배제하는 박정희 체제의 생명정치적 성격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대한민국 출산지도에도 박정희주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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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한다는 것, 그리고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공동체가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임을 드러내는 신호다. 그저 임신 가능하다고 해서 출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이 살아갈 만해야, 더 정확히 말해 여성이 살아갈 만해야 아이도 낳는다.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은 기꺼이 다음 세대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는 번드르르한 캠페인이나 지자체 간 실적 경쟁 같은 얄팍한 수단으로 결코 달성될 수 없다.

출산율 반전에 성공한 몇몇 국가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인구학적 접근보다 사회복지 및 여성학적 접근을 한다는 점이다. 이들 사회는 자국 여성이 어떤 문제에 고통받는지 세심히 조사하고, 그들이 존엄하게 살아가도록 지원하기 위해 국가 자원을 총동원한다.

출산율은 지원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때 자연히 따라오기 마련이다. 가임기 여성 수에 이토록 많은 여성이 분노한 건 그 통계를 비밀로 덮어두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국가가 정작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그 책임을 여성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출산지도 사태는, 요컨대 국가의 무책임에 대한 분노였던 것이다.

박권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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