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준성·장석준
그림 허지영
역사 박준성_ 역사를 만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 노동자와 함께 역사를 연구하는 삼촌이야. 구로역사연구소(지금 역사학연구소)와 노동자교육센터 등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어. 나무로 작은 물건을 직접 만들기도 해. 라는 책을 썼어.
제주도에 여행 가면 가보라 권하고 싶은 곳이 있어. ‘동광큰넓궤’라고 들어봤어? 이름난 관광지가 아니라서 낯설지? 동광큰넓궤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마을 서북쪽에 있는 천연 동굴이야. 손전등이나 등산용 헤드랜턴을 가져가야 해.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좁은 굴 입구에서 앉은걸음으로 5~6m쯤 들어가면 굴 안에 높이 2m가 넘는 절벽이 나와. 요즘은 나무 사다리가 있어서 내려갈 만하지만, 없을 때는 내려가기 쉽지 않았어. 아래쪽으로 가면 빛이 하나도 없어.
너른 공간을 지나면 다시 엎드려 기어야 하는 좁은 굴이 나와. 20m쯤 될까. 삼촌이 처음 들어갔을 때는 200m가 넘는 것처럼 길게 느껴졌어. 대학생들과 같이 갔는데 겉으로 내색은 못했지만 속으로 얼마나 무섭고 떨렸는지 몰라. 좀더 들어가면 동굴 속에 넓은 방보다 큰 공간이 있어. 옆으로 가지처럼 난 작은 동굴도 있고 말이야. 밖에서는 칠흑 같은 밤이라도 어느 정도 있다보면 어렴풋이 형체는 보이잖아. 그런데 동굴 안에서는 불을 끄면 완전히 암흑이야. 그런 동굴을 왜 가보라 하냐고?
1945년, 우리나라는 해방되었지만 미국이 그어놓은 38선 때문에 남북이 갈라지게 되었어. 미국이나 친일부역행위자, 이승만 같은 소수의 사람을 빼놓고 대부분은 하루빨리 38선을 지우고 통일된 새 세상이 오기를 바랐지. 그런데 1948년 통일을 바라지 않는 세력이 38선 남쪽에서 단독선거를 치르고 단독정부를 세우려 했어.
그에 맞서 1948년 4월3일 제주도에서 무장한 부대와 주민들이 ‘분단이 아니라 통일’을 외치면서 항쟁에 나섰어. 제주 ‘4·3 항쟁’이 시작된 거야. 미 군정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 이승만 정권은 군대와 경찰, 서북청년단 같은 집단을 투입해 엄청난 학살을 했어. 그때 제주도민이 29만 명 정도였는데 3만 명 가까이 목숨을 잃었어. 그 가운데 3분의 1은 어린이와 노인, 여성이었어. 한라산 자락이나 산골 마을 90% 이상이 불타서 사라졌지.
무자비한 공격과 학살을 피해 마을 주민 120여 명이 동광큰넓궤에서 두 달 가까이 숨어 지냈던 거야. 굴이 발각되자 주민들은 더는 숨어 있을 수 없었어. 굴에서 나와 환한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지. 도망쳐서 살았으면 다행일 텐데 추격해온 무장 군대에 붙잡혔어. 그리고 대부분 정방폭포 쪽에서 목숨을 잃었지. 짧은 글로는 실감하지 못하겠지? 그래서 기회 되면 가보라고 한 거야.
몇 년 전 중학생들과 ‘제주 4·3평화공원’에 있는 기념관에 간 적이 있어. 제주 4·3 항쟁의 역사와 전시물을 정말 열심히 보더라. 동광큰넓궤에 직접 들어가보니까 깊이 알고 싶어서 그랬을 거야. “얘들아, 자세한 역사는 집에 가서 책으로 보고 그만 가자” 해도 발걸음을 떼지 않을 정도였어.
기념관 안에서는 해방 뒤 나온 이란 노래가 계속 흘러나왔어. 같이 갔던 동무들이 “어, 이거 선생님이 불렀던 노래 아니에요?” 하고 물었어.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불러준 적이 있었거든. 동무의 부모님도 안 부르는 흘러간 옛 노래라 귀담아듣지 않은 줄 알았지. 기억하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어. 그동안 삼촌이 쓴 역사 이야기가 어렵고 딱딱해서 재미없었지? 그래도 언젠가 “어, 이거 고래에서 본 적 있어!”라고 할 동무들이 있길 바라.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 내고 싸울 수 있는 사람들사회 장석준_ 진보정당에서 정책을 만들고 교육하는 활동가야. 진보적 시각으로 사회문제를 해석하고 대안을 만드는 연구활동을 함께 벌이고 있어. 지은 책으로 등이 있어.
‘프랑스’ 하면 흔히 떠오르는 것들이 있지. 그중에 여름휴가도 있어. 여름만 되면 프랑스 사람들은 거의 산으로 바다로 휴가를 떠나. 여름휴가는 한국에도 있다고? 그렇지. 동무들도 부모님의 여름휴가 때 같이 여행 간 기억이 있겠지. 그런데 휴가 기간이 며칠이었어? 아마 길어야 일주일이겠지. 한국에서 여름휴가는 일주일이라는 게 상식처럼 되어 있거든.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여름휴가가 대개 한 달이 넘는다고 해. 동무들의 여름방학이랑 비슷하지. 그래서 파리 같은 큰 도시는 여름만 되면 너무 한적하다는 거야. 다들 여행을 가서 사람 보기 힘들 정도라고 하지.
프랑스 사람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건 휴가제도를 법으로 정해놨기 때문이야. 프랑스 노동법은 ‘모든 노동자가 1년에 5주 동안 유급휴가를 쓴다’라고 못박고 있어. 5주면 한 달이 넘잖아. 그러니까 여름에 몰아서 사용하면 한 달 넘게 여행 갈 수 있지.
그런데 ‘유급휴가’가 뭐냐고? 휴가로 쉬지만 월급을 받는다는 뜻이야. 휴가는 일 안 하고 쉬는 거잖아. 그래서 부모님이 휴가를 받으면 그만큼 월급을 못 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아. 유급휴가를 사용하면 공장이나 사무실에 나가서 일하지 않아도 월급은 그대로 받는단다. 프랑스 사람들도 유급휴가가 아니라면 한 달 넘게 여행 갈 생각을 못하겠지.
한국 사람들도 프랑스의 ‘유급휴가제도’를 부러워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더해. 왜냐하면, 미국에는 아예 유급휴가제도가 없거든. 물론 미국 사람도 휴가를 쓸 수는 있어. 하지만 ‘무급’이야. 휴가를 쓰면 그만큼 월급을 못 받지. 미국에서는 유급휴가제도를 법으로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프랑스 사람들처럼 오랫동안 여행을 떠나는 건 꿈도 꾸지 못해. 돈 많은 사람들만 해외에서 휴가를 즐기지.
그럼 프랑스는 어떻게 유급휴가제도를 법으로 정하게 됐을까? 프랑스 사람들이 원래 놀기를 좋아해서? 프랑스의 사장들이 너그러워서? 아니야. 프랑스도 1936년 이전에는 미국과 다를 게 없었어. 1936년에 수백만 명의 프랑스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어. 그해에 선거를 했는데 노동자들이 지지하는 진보정당이 이겼거든. 기쁨에 들뜬 노동자들은 일손을 놓고 그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말을 꺼냈지. “월급을 올려라! 노동시간을 줄여라! 우리도 저녁에 아이들이랑 좀 놀아보자! 의논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을 인정하라!” 수백만 명이 한꺼번에 이렇게 외치니까 사장도 잔뜩 겁을 먹었지.
그래서 파리의 마티뇽 호텔에서 사장 대표랑 노동자 대표가 만나서 약속했어. 흔히 ‘마티뇽 협약’이라고 하지. 유급휴가제도도 이 약속 중 하나였어. 그래서 이때부터 프랑스 사람들은 여유 있는 여름휴가를 떠날 수 있게 됐지.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위해 싸운 덕분에 후손이 그 결실을 누리는 거야.
동무들! 여름휴가 하나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오랜 투쟁과 연결되어 있어. 오로지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싸우는 사람들만 자신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단다. 삼촌은 동무들이 바로 이런 사람이 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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