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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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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빠다 스물다섯 청년이다

아내와 함께 식구들 부양하다 군 입대한 이진영씨가 상상한 ‘기본소득과 나’
등록 2016-10-05 18:04 수정 2020-05-03 04:28
<font color="#006699">은 다음카카오 스토리펀딩을 통해 <font color="#C21A1A">‘기본소득 월 135만원 받으실래요?’</font> 프로젝트(storyfunding.daum.net/project/9578)를 진행 중이다. 시민들이 힘을 모아 한국 사회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기본소득을 실험해보자는 제안이다. 펀딩 금액 1천만원이 모이면 펀딩 후원자 가운데 무작위 추첨한 1명에게 월 135만원씩 6개월간 기본소득을 지급할 예정이다. 펀딩 시작 열흘 만인 9월29일 현재 660여만원이 모였다.
기본소득을 지급할 첫 대상자는 만 18~34살 청년 가운데 무작위로 추첨할 예정이다. 청년은 2016년 한국 사회의 모든 모순을 응축하고 있는 존재다. “힘내라”는 응원이 가장 필요한 세대다. 청년들이 ‘내가 기본소득을 받는다면?’이라는 질문을 받아들고, 다른 세상을 상상하며 새로운 꿈을 꾸게 되길 바란다. 스토리펀딩 페이지에서 펀딩에 동참한 뒤 ‘파티’란에 들어가 간단한 지원서만 적으면 누구나 기본소득 지원 대상자가 될 수 있다. _편집자</font>

<font color="#00847C">
기본소득 스토리펀딩 프로젝트 지원서
1) 이름: 이진영(가명)
2) 자기소개
나는 아빠다. 7살과 4살 아들, 6살 딸이 있다.
나는 스물다섯이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아빠가 됐다.
나는 남편이다. 중학교 동창인 아내는 나보다 생일이 몇 달 빠르다.
나는 청년이다. 경기도 성남시에 살고 있는 청년이라 다행이다. 아내와 나란히 청년배당을 받았다. 생활비에 보탤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나는 지금 누구보다 절박하게 기본소득이 필요하다.</font>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진영(가명)씨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청년’을 생각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과 거리가 멀다. 그는 연애, 출산, 결혼 중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일찍 결혼해 부양가족이 많다. 지금 다소 불안한 상황이지만 취업이 안 돼 괴로워하는 처지도 아니다. 청년 중에서도 아주 드문, 특별한 경우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그에게 듣고 싶었다. 아빠이자 남편인 20대 청년이 말하는 일(노동)과 돈(소득), 그리고 현실과 꿈에 대해서.

<font size="4"><font color="#008ABD">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해야 하나</font></font>

그는 또래의 어떤 청년보다 열심히 일했다. 혼자가 아니라서다. 일해서 벌어들이는 소득으로 가족 6명이 먹고산다. 그는 기꺼이 일‘만’ 했다. 투잡, 스리잡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 외에 취미생활을 즐길 현실적 여유도, 미래를 꿈꿀 마음의 여유도 없다. 장래희망 같은 건, 없다. 너무 일찍 어른, 아니 아빠가 된 탓일까. 그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해야 하는 걸까. 그런데도 왜 삶을 즐기고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걸까.

기본소득은 국가가 단순히 ‘공짜돈’을 준다는 것만 의미하진 않는다. 기존 사회보장제도와는 생각의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다른 노동사회’, 꿈을 물었을 때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싶은지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이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모델’을 설계해보자는 취지에서 나온 대안이다. 이진영씨의 이야기는 왜 지금, 그러한 사회적 기획이 필요한지 잘 보여준다.


<font color="#00847C">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월 135만원 기본소득을 받게 된다면? 무조건 생활비에 보탤 거다. 최대한. 다른 걸 생각할 여유가 없다. 지금 내 월급은 30만원 안팎. 미루고 미뤘던 군 복무 중이다. 월급으론 내 식비와 교통비만 겨우 챙긴다. 아내가 1~2년 전부터 콜센터에 출근하기 시작해 월 160만~170만원을 벌지만 여섯 식구 생활비로는 벅차다. 셋째아이 낳고 나서부터 아이들을 맡기느라 장모님을 모시고 산다.
몇 달 전만 해도 나와 아내 둘이서 월 500만원은 벌었다. 나는 대기업 물류팀에서 용역직원으로 6년간 일했다. 제품을 배송 상자에 분류하고 배송차에 실어주는 일을 했다. 비정규직이었지만 4대 보험이 지원되고 6~7년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해서 열심히 일했다.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까지, 구내식당에서 점심 먹고 10분간 커피 마시면서 쉬는 시간 빼고는 ‘빡세게’ 근무했다. 일주일에 쉬는 날은 딱 하루. 그렇게 열심히 일해도 늘 돈이 부족했다. 퇴근하자마자 새벽 1시까지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투잡’도 2년 가까이 했다.
첫 알바는 오토바이 배달일이었다. 당시 여자친구이던 아내한테 임신 소식을 들은 게 2009년 1월. 우린 둘 다 열여덟 살이었다. 아내는 중학교 동창이다. 나는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중국으로 유학을 갔다. 아버지가 중국에서 의류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연매출 500억원을 찍을 정도로 번창했다. 아내도 6개월 뒤 나를 따라 중국으로 유학 왔다. 식당을 운영하며 홀로 딸을 키우던 장모님이 무리해서 보내주신 거였다. 교제는 중국에서 시작했다. 그런데 그만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졌다. 학비도 낼 수 없는 상황이라 1년 만에 귀국했다. 아버지는 그때 진 빚을 감당 못해 지금까지 외국을 떠돌고 계신다. 잘 모르지만 빚이 50억~60억원가량 되는 것 같다.
한국에 돌아와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아내도 한 달 뒤 나를 따라 중국에서 들어와 같이 검정고시 공부를 했다. 덜컥 임신된 걸 알고는 집에서 독립해 오토바이 알바를 시작했다. 일하다 교통사고가 나서 조금 다쳤다. 아내가 만류해서 그만두고 주유소로 옮겼다. 그러다가 물류팀 일을 알게 됐다. 일자리는 전부 알바○○ 사이트에서 찾았다. 고용노동부가 지원해주는 취업알선 프로그램은 아예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다. 어머니 집에는 빚 독촉장이 수없이 날아올 때였는데, 사고 쳐서 내 앞가림하느라 어머니 힘든 걸 못 도와드렸다. 어머니는 요즘 아르바이트하면서 동생이랑 근근이 생활을 꾸려가고 계신다.
집에서 받은 유일한 지원이라면 할머니께 원룸 보증금 1500만원을 받은 것뿐이다. 그 돈을 종잣돈 삼아 방 2개짜리, 그다음에는 방 3개짜리 다세대주택으로 옮겼다. 악착같이 벌고 아껴서 ‘빡세게’ 올라왔다. 어느 집은 곰팡이가 많이 펴서, 어느 집은 반지하라서 오래 못 살았다. 지금 사는 집은 1억2천만원짜리 전세인데 10월 재계약을 앞두고 집주인이 보증금을 3천만원이나 올려달라고 했다. 여러 동네의 재개발을 앞두고 요즘 성남 집값이 장난 아니다. 돈이 없어서 전세 보증금 올려주는 대신 월세 20만원 주는 걸로 집주인과 타협했다.
저소득층 전세자금 대출이자가 2%대라 이자 내는 건 버틸 만하다. 하지만 기본적인 생활비가 많이 든다. 아이들 앞으로 보장성보험, 실비보험 각각 하나씩 들어줘서 매달 보험료만 80만원이 나간다. 보험료를 줄일까 생각했는데 그럴 수가 없다. 잔병치레가 많은 아이들이 응급실 들락날락할 때 실비보험은 유용했다. 보험 담보로 약관대출해서 급전도 마련할 수 있어 편하고.
민간보험사가 아니라 나라를 믿어보라고? 그건 불가능할 것 같다. 내 새끼니까 내가 챙겨줘야겠다는 마음이 강하다. 공과금, 통신료 등 이러저러하게 드는 돈을 합치면 월 200만원은 깨진다. 아이들 옷은 친척한테 물려받아 입히고, 주말에는 어디 놀러다니지 않고 기껏 키즈카페나 가는 데도 그렇다.
실은 입대하기 전에 미루고 미뤘던 결혼식을 했다. 그때 받은 축의금이랑 퇴직금이랑 합쳐서 모아놓은 돈이 있었는데 아껴 쓴다고 해도 몇 달 만에 반토막 났다. 얼마 전부터 야간 알바를 다시 시작했다. 하루 5시간씩 자면서 버텨보려고 한다. 무조건 벌어야 하니까. 회사 다닐 때는 볼링 동호회도 하고 술 마시는 것도 좋아했지만 시간도 돈도 없어 지금은 다 끊었다. 일찍 아빠가 되는 바람에 일찍 철든 것 같다. 10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해 20살 이상 차이 나는 형님들이랑 일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애늙은이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수입이 끊겨 한참 힘들 때 성남시에서 청년배당을 받았다. 나는 25만원어치, 생일이 빨라 올 3월에 만 24살이 지나버린 아내는 12만5천원어치 상품권을 받았다. 시장에서 생필품 사는 데 다 썼다. 돈이 없을 때 받으니 유용하게 잘 썼다. 이와 비슷한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세금을 5천원, 1만원씩 올리자고 해도 괜찮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 나처럼 혜택을 받는다면 어차피 내는 세금 기꺼이 더 내고 싶다.
기본소득이라…, 기초생활보장비는 알겠는데 기본소득이란 말은 낯설다. 만약 가족 1인당 모두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생활에 반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처럼 막 힘들게, 여유 없이 살지 않아도 되니까. 취미생활도 즐길 수 있을 테고. 지금 나한테 기본소득이 절실하긴 하지만, 누가 대통령선거에 월 40만원씩 기본소득 준다는 공약을 들고나와도 혹하진 않을 것 같다. 청년배당처럼 특별한 나이대를 정해놓거나 하지 않으면, 국민 모두에게 준다는 공약은 현실성이 없어 보이니까. 태어나서 한번도 투표해본 적이 없다. 워낙 정치에 관심이 없기도 하고 일하느라 투표할 시간도 없었다.
</font>

25살 이진영씨는 “꿈이 없다”고 말했다. 어릴 때 어렴풋하게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장래희망을 적어낸 뒤로 장래희망, 꿈 이런 단어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그에겐 늘 미래보다 현실이 중요했다. 18살 이후 자신보다 가족이 먼저였다. 제대 뒤 계획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막연히 다시 복직해야 할까, 아니면 자격증 취득 공부를 해서 다른 직업에 도전해볼까 고민 중이다. 당장 벌이가 급하니 그저 생각만 하고 있다.

“기본소득을 받으면 뭘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청년들은 이런저런 꿈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뭘 배우고 싶어요, 어디 가보고 싶어요, 뭘 사고 싶어요 등등. 하지만 진영씨는 “생활비에 올인하겠다”는 현실적인 대답 외에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현실이 답인 현실</font></font>

다시 물었다. “아이들이나 가족은 생각하지 않고, 철저하게 본인 혼자만 놓고 봤을 때도 하고 싶은 게 없냐”고. “돌아다니는 거 좋아해서 여기저기 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영업해보고 싶어요.” 질문의 답은 다시 일, 그리고 노동의 문제로 되돌아갔다.

“18살 이후 계속 일만 해서 그런지 일 생각밖에 안 들어요. 놀 생각은 별로 못 해봐서. (웃음) 돈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가봐요.” 기본소득이 오래, 열심히 일하는 진영씨에게도 다른 꿈, 다른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을까.

성남=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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