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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등록 2016-11-25 17:22 수정 2020-05-03 04:28
의 카카오 스토리펀딩 ‘기본소득 월 135만원 받으실래요?’ 온라인 사이트에 응모지원서 287건이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기본소득을 받는 첫 번째 주인공이 되고 싶은 지원자들이 온라인에 남긴 ‘나에게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를 읽다가 가슴 한쪽에 스산한 겨울바람이 불기도, ‘내가 기본소득을 받는다면’을 읽을 때는 가슴 두근거리는 봄바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과 ‘바람’을 함께 느끼고 싶어, 기본소득을 바라는 지원자들의 ‘순수한 마음’을 전합니다. 응모지원서 가운데 일부를 추려 싣습니다.
정한나씨 등 지원자 16명과의 인터뷰를 담은 영상은 한겨레TV(hanitv.com)와 스토리펀딩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 중에 어떤 분이 기본소득 1호 주인공으로 뽑힐까요? 주인공은 11월27일 추첨 행사를 통해 공개됩니다.
펭귄(23·남·사회복무 중·광주)

어렵사리 서점에서 찾은 전공서적들은 5만원 지폐를 꺼내지 않으면 못 살 가격이라 그냥 그 자리에서 훔쳐보다 헛헛하게 돌아온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자본이 삶 전반을 결정하는 것이 낯설지 않은 시대에, ‘더 나은’ 삶도 아닌 ‘가장 최소한의 안전망’을 쳐둔 삶을 상상하는 것 또한 낯선 일이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임유선(35·여·육아휴직 중·인천)

지금 두 아이를 키우고 있고 조금 있으면 셋째가 태어납니다. 독립육아 중이라 휴직이 필수인데 거의 5년째 쉬고 있고 앞으로 휴직을 더 연장해야 하는 부담감에 고민이 많습니다.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아이 양육과 일 사이에서 균형을 찾을 해법이 조금은 나오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김동림(36·남·배우·서울)

저는 이름 없는 배우입니다. 영화 속 잠깐 지나가는 행인이기도 하고, 대학로 어느 공연장 무대 위 우울한 사나이이기도 합니다.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예술을 위해, 삶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헛된 공상일 뿐인가요?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불안한 삶을 잠깐 잊고 온전히 배우로만 존재해보고 싶습니다.

바람(45·여·회계사무원·경기도 안양)

10년 전쯤 남편과 사별 후 아들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 달에 200만원 정도 월급을 받으며 살고 있고, 여기에 글을 올린 청년들처럼 최악의 상황은 아니지만 그냥 한 달 벌어서 한 달을 버티며 살아가는 중입니다. 아이들과 영화 한 편 보지 않고, 보고 싶은 책이 있어도 꾹 참고, 여행도 하지 않고, 외식도 하지 않고 그저 밥만 먹으며 살면 그럭저럭 살아가긴 합니다. 기본소득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민들레 홀씨가 날리듯 퍼지면 좋겠습니다.

김영교(24·여·알바노조 활동가·대구)

알바노조 활동을 하면서 알바들의 권리를 되찾겠다며 각종 임금체불 상담을 하고 기자회견을 준비하지만 정작 밥 한 끼 사먹는 것도 손 떨리는 나. 며칠 무리해 10분도 앉을 수 없는 내 허리. 그걸 제대로 치료할 돈이 없는 내 신세. 피부병이 채 낫지 못한 다리를 긁으며 보증금 100만원에 월 17만원, 벽에 금이 간 월세방에 몸을 누인다. 나의 활동이 ‘인간다운 삶의 행복’으로 인식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나와 함께하자!’라는 말이 ‘나와 함께 굶어 죽자!’라는 말처럼 들리지 않는다면….

정수미(31·여·사회복지사·서울)

편안히 쉴 수 있는 작은 원룸의 임대료, 1년 전 졸업한 대학원의 학자금 대출, 사랑하는 가족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사 한 끼 등 저에게는 다양한 지출이 필요합니다.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천지가 개벽할 만큼 크게 제 생활이 달라지는 건 없을 것입니다. 다만 현금이 쪼들려 주위의 경조사 참석에 인색해지고 스스로 인간관계를 편협하게 내몰아 위축된 마음으로 사는 일이 훨씬 덜해져서, 행복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인간다운 삶을 위해 사회복지를 공부했습니다. 적정한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보장제도로서 기본소득은 도입돼야 합니다.

주희아빠(43·남·보험설계사·광주)

(지금) 아르바이트하는 것: 휴대폰 판매영업, 건물 청소, 컴퓨터 조립, 장례용품 배달, 카드 영업…. 늦게 장가를 갔네요. 딸아이를 하나 얻었어요. 열심히 돈 벌어보려고 이것저것 능력 닿는 대로 하고 있어요. 그러나 힘들어요. 다들 잘 아시잖아요. 대한민국에서 떳떳한 가장 노릇 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더군다나 저는 다문화가족입니다. 아내가 베트남 사람이에요.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저 위의 직업들 중 한두 개는 쉬어도 될 듯하네요. 대신 남는 시간을 소중한 우리 아기 돌보는 데 쓰고 싶어요.

짤뚱이(36·여·회사원·경기도 광명)

어머니가 파킨슨병으로 거동도 못하시고 가족이 돌아가며 간병 중이에요. 지치고 고단하게 쉬는 가족에게 쉼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어요.

곽빛나(27·여·무직·경남 밀양)

꿈이 농부입니다. 그러나 농업으로만 먹고사는 일은 어렵게 느껴집니다. 기본소득을 받게 된다면 꿈이던 농업을 시작해보고 싶습니다. 지역에서 청년들과 함께 모임을 꾸려가는데 작은 방을 얻어 공동체 생활을 해보고 싶습니다. 지역에서 떠나지 않고 지역 청년들과 여러 활동을 해보고 싶습니다.

쏘야(30·여·자유활동가·전북 남원)

지리산 자락 작은 마을에 살고 있어요. 제가 만약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135만원 중 55만원은 제 생존비로 사용하고, 80만원은 친구 2명과 40만원씩 6개월간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거예요. 그 친구들과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는’ 삶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본소득을 널리널리 알리는 활동을 하고 싶어요.

정한나(31·여·문화기획자·서울)

문화예술 분야는 지갑이 얇아질 때 지출 우선순위에서 먼저 밀린다. 생계활동은 애초에 다른 걸로 병행하면서 내 작업을 해야 한다. 매일, 매달 뇌가 쪼개지는 기분이다. 예술로 완전한 전업은 불가능하다고 진즉에 선을 긋고 결국 문화기획으로 ‘업종 변경’했다. 내게도 지난 1년은 실험이었다. ‘멀쩡한 직장’ 관두고 느닷없이 예술로 먹고살겠다고 선언한 거나 다름없으니. 주위에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소비를 줄일 대로 줄여서 한 달에 50만원이면 산다. 어차피 팍팍한 현실, 괴로울 거면 하고 싶은 거나 하면서 괴롭게 살아보자였는데, 요즘엔 아침에 눈뜰 때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싶다. 기본소득이 생긴다면 조금 더 이렇게 살아도 되겠지. 힘내자는 말도 지치는 세상, 그래도 힘냅시다.

오현탁(38·남·작사작곡가·서울)

음악을 시작한 지 17년 정도 되었네요. 30살까지 래퍼 활동을 하다가 현실이라는 벽 때문에 끝내 포기했습니다. 청원경찰, 배달, 공장일도 해보았지만 결국 꿈으로 돌아왔습니다. 꿈으로 돌아왔다 도망가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도박 같네요. 사실 지금 세상에서 꿈은 어찌 보면 도박과 별다를 게 없습니다. 죄인이 된 기분으로 사는 게 현재 꿈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일 겁니다.

천농부유진(41·남·농부·충북 옥천)

5년차 자연농부 천농부입니다. 편의점에서 1시간 일하면 최저시급 6천원을 받는 세상인데 저는 농사에 수천 시간 땀을 쏟고서 인건비가 0원입니다. 그래도 합니다~. 열매는 어쨌건 열리니까요.

이해정(37·여·일러스트레이터·서울)

일러스트레이터로 10년 정도 일해왔습니다. 사실 그림으로 돈을 번다는 게 쉽진 않은 것 같아요. 이 돈으로 몇 달을 버틸 수 있지? 월세는 어떻게 내지? 이런 생각을 하다 가슴이 꽉 막힐 때가 많아요. 기본소득이 생긴다면, 일이 없을 때도 생계 걱정 덜 하고 정말로 하려는 일에 좀더 열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이 다행히 있을 땐 기본소득으로 제가 꿈꾸는 예술인들의 공간 마련을 위해 약간의 저축이 가능할지도 모르겠고요. 이 제도가 정말 실행돼서 많은 청년에게 꿈을 버리지 않을 수 있게 하는 디딤돌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정이용(34·남·만화가·경기도 고양)

적성에 맞지 않는 일들을 전전하다가 서른 살 늦은 나이에 만화가가 되었습니다. 만화책 한 권을 완성하는 데 최소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책이 나와도 책값의 10%에 불과한 인세로는 또 다음 1년을 버티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돈이 떨어지면 단기 아르바이트를 해서 겨우 풀칠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프로젝트가 꼭 제게도 꿈을 이어나갈 좋은 기회의 밑거름이 될 수 있기 깊이 소망합니다.

버럭쟁이(35·남·전북 완주)

인공지능이 점점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근로소득이 없으면 곧바로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하는 현실입니다. 기본소득이 한 사람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진(26·여·무직·서울)

아무리 굴러도 제자리인 것 같아 무력한 삶이지만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쳇바퀴에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를 여유가 생기면 좀더 힘차게 굴러서 앞으로 가든 옆으로 엎어지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해보고 싶었지만 ‘돈 안 되는 일이지’ 하며 지나쳤던 많은 것들과 부딪히고 섞여 일하는 내가 아닌 다른 ‘나’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흰자뿡뿡(27·여·취업준비생·서울)

소득이 발생하려면 소득이 있어야 하는 이상한 사회. 취업하려고 하니 스펙이다 뭐다 요구되는데, 시험응시료는 어찌나 비싼지 하루 종일 아르바이트해도 시험 접수 한 번 하면 날아가버리네요. 변변한 정장 한 벌 장만하고 싶어도 쉽사리 하기 어려운 서글픈 취준생입니다. 기본소득이 생기면 최소 생활에 대한 걱정을 덜고 제 역량 강화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아니더라도 꼭 필요한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펀딩이 되리라고 생각되네요.

한규민(26·남·아르바이트생·서울)

26살 고졸 청년입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대학교를 쉽게 생각할 수 없었고, 고졸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사회에 나왔습니다. 고졸이라는 이유로 능력보다 힘쓰는 일만 시키기 일쑤였고, 월급은 노동력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일자리는 구하기 더 힘들고 아르바이트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는 며칠 전 항암치료를 받아 정말 힘든 상태입니다. 제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거금의 돈도, 엄청난 명예도 아닌 그저 최소한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피르마노바 마하바트(29·여·무직·경기도 고양)

제가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박병선(42·남·주부·경기도 과천)

맞벌이를 하다 중학생 딸의 홈스쿨링을 위해 외벌이로 전환했습니다. 좀 덜 사고 덜 쓰더라도 우리 가족에게 꼭 필요한 방식으로 살자는 선택이었지요. 지금은 살고 있는 동네 골목에서 이웃들과 함께 협동조합 밥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의욕에 차서 하고는 있지만,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겠다고 각오는 하지요. 기본소득은 누구에게든 이런 시도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입니다.

나무새(29·여·사회복지법인 계약직·서울)

워킹맘입니다.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기 힘든 대도시 서울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와 놀고 또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 계약직을 그만두고 더 나은 삶을 살아보려 계획 중입니다.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계약이 끝나고도 급하게 아무 데나 또다시 계약직으로 구직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삶을 조금이나마 여유 있게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Gina(24·여·휴학생·서울)

애매하게 가난한 사람. 이 한 문장을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요. 저는 성인이 된 후 5년 동안 단 한 번도 알바를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제대로 휴학도 해보지 못해, 결국 가장 바빠야 할 4학년 때 지쳐서 나가떨어져버렸습니다. 우울감과 무기력함을 이겨내기 힘들어 딱 한 학기만 쉬어보자 생각하고 휴학했지만, 아무것도 안 해도 돈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알바를 쉬지 못하고 이 상태로는 생활비가 모자라 다른 알바를 또 구해보고 있습니다. 이러다 어영부영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제대로 공부하지도 못하고 평생 숨을 죄여올 세상으로 떠밀려나갈까 너무 두렵습니다. 딱 한 번만 걱정 없이 쉬어보고 싶습니다.

권다은(24·여·대학생·충남 천안)

아버지는 병상에 계시고 어머니는 아르바이트를 하신다. 집에 쌓인 부채는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다. 돈을 놓고 싸우지 말자고, 함께 행복하기 위해 버는 돈인데 벌이가 힘들다고 서로 싸워서 되겠느냐는 말로 담담히 가난을 이겨내는 가족이다. 그러던 중에 못난 딸은 사회적기업에 관심 있어 배워보겠다고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며 서울로 왕래 중이다. 내 꿈이 사치가 아니고 욕심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월세 20만원, 교통비 12만원, 휴대전화 요금, 밥값을 내고도 감사한 분들께 책도 한 권 선물해드리고, ‘과연 내가 하고 싶은 이 일에 뛰어들 수 있을까’ 하는 의심 없이 내 꿈을 성장시켜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노창현(37·남·무직·경기도 고양)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고 싶으나, 직장을 그만두면 당장 가족 부양에 문제가 발생해서 그만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고가 아닌 이상 실업급여 신청도 되지 않으니 월급의 노예가 되어버린 지금 기본소득이라는 프로젝트의 혜택을 받고 싶습니다.

*노창현씨는 지원서 작성 이후 퇴사해 오스트레일리아 이민을 준비 중입니다.

박광동(45·남·사과 장사·경기도 평택)

아내와 자녀 5명을 둔 가장입니다. 지난해 7월 7년여 다닌 직장에서 권고사직한 뒤 보험설계사를 시작했지만 이도 여의치 않아 최근 과일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빚이 매달 늘어가는 실정입니다.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제가 과일 장사로 자리잡는 데까지 많은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웜군(28·남·대학원생·서울)

4년 전 일자리를 잡았을 때는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들 보기에는 평범한 여자였습니다. 현재는 트랜지션이 조금 더 진행된 상태인데다 더 이상 제 존재를 부정하며 살고 싶지 않은 단계까지 왔기 때문에, 고용주들이 상당한 거부감을 느끼는 취업 지원자가 된 것 같습니다. 만약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미루기만 했던 우울증과 호르몬 치료를 시작해서 진정한 제 모습에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싶습니다.

백민규(26·남·지역혁신 청년활동가·서울)

현재 혁신활동, 시민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뉴딜 일자리 지원이 끝나는 올해 말까지는 그나마 월세와 밀린 휴대전화 요금, 이자 등을 낼 여력이 있지만 이후가 걱정입니다. 드라마 작가의 길을 가기 위해 기본소득을 받게 되면, 최초의 안정적인 심리와 시간적 여유를 통해 정말로 나밖에 쓰지 못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달리(32·여·비정규직·대전)

맞벌이하는 것에 전전긍긍하지 않고 휴학 중인 공부를 계속하거나, 혹은 돈벌이가 잘되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자신 있게 도전해보고 싶다. 계획도 하지 못하는 출산을 생각해볼지도 모르겠다.

김영학(32·남·콜센터 상담사·서울)

‘난 행복한 편’이라며 위안받는 사람. 제 가족은 비극으로 흩어졌습니다. 저는 혼자 남아 독립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바득바득 삶을 연장시키며 지내다보니 남자들이 피하고 여성 비율이 높은 콜센터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감정노동의 대표주자를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기본소득이란 말과의 만남은 희망과 같았습니다. 많은 비극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것 같은 종교적 구원으로 느껴졌습니다. 스토리펀딩을 안 뒤로 마치 로또를 구입한 것처럼, 어떻게 돈을 사용할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신납니다.

고등어(29·남·무직·인천)

소설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되면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학원 강사가 해야 하는 일은, 아이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아서 오직 공부만을, 아니 점수가 오르는 공부만을 보게 하고 다른 눈은 감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못하겠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무럭무럭 자란, 나의 과잉된 의식은 그걸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선뜻 어떤 일에도 나서지 못하겠습니다. 나는 등단을 하고 싶습니다. 아쉽게도 생산적인 일이 아니지만 그 일을 꼭 하고 싶습니다.

이건민(33·남·사회복지학 박사과정 수료·서울)

나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누구나 받을 자격이 있고 권리가 있으며, 기본소득이 자유와 평등을 확장하고 우리가 존엄한 삶을 영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기본소득을 받게 된다면 제가 하고 싶은 일, 추구하는 바를 더 마음껏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요셉(27·남·대학생·인천)

전기가 끊기고 버스비가 없던 어린 날들을 지나 대학교를 다니다 자퇴해 1년간 알바해서 다시 학교를 들어갔지만 꾸준히 일해야 했습니다. 차상위계층이라 기초수급자처럼 혜택을 받는 것에서도 제외됐습니다.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비영리단체를 설립하기 위해 발버둥치며 하루에도 200명 넘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눕니다. 기본소득을 통해 ‘시간을 부여받는 것’을 느끼고 싶습니다. 최소한의 행복, 최소한의 가치, 최소한의 웃음을 갖고 준비하며 살아가고 싶네요.

김기석(31·남·학원강사·서울)

군 전역 후 예술을 공부한다고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낮에는 학업을, 저녁에는 아르바이트로 365일을 보냈습니다. 늘 이삿짐, 택배 상하차, 목수 보조, 치킨 배달, 독서실 총무, 학원 강의, 카페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와 과제에 치여 살았습니다. 저는 ‘예술’을 공부했습니다. 예술은 가난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런 금전적 어려움에 예술은 사치 같고 오히려 실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배웠어야 하나 마음이 들어 부모님 얼굴을 보면 죄스럽습니다.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예술적 자존심이 ‘자만심’이 되기 바랍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사진·영상 조소영 한겨레TV PD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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