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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행복도 높이려면?

기본소득 보드게임 국제공모전 <이코노미스트> 등 최종 입상작 선정… 1등 당선작은 없어
등록 2017-04-07 19:55 수정 2020-05-03 04:28
‘기본소득 보드게임 국제공모전’ 주관사인 코리아보드게임즈 직원들이 경기도 파주에 있는 사무실에서 2등 당선작 <이코노미스트> 게임을 직접 해보고 있다. 김진수 기자

‘기본소득 보드게임 국제공모전’ 주관사인 코리아보드게임즈 직원들이 경기도 파주에 있는 사무실에서 2등 당선작 <이코노미스트> 게임을 직접 해보고 있다. 김진수 기자

이 보드게임에서 이기려면 돈을 많이 벌거나 공장을 여러 곳에 지으려고만 해선 안 된다. 성장보다 행복이 목표다. 게임의 최종 승자는 시민의 행복도(점수)를 늘리는 사람이다. 행복도를 높이려면, 실업률을 낮추고 시민이 원하는 상품을 소비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시민은 그 존재만으로도 상품을 소비할 권리, 즉 사회로부터 일정한 배당을 받을 권리(기본소득)를 갖는다.

국내외 총 51편 응모

게임의 구체적인 방법은 이렇다. 먼저 당신은 독일, 중국, 대한민국, 미국 등의 나라에서 한 곳을 골라야 한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그 나라의 경제를 운영하는 셈이다. 게임은 총 12라운드로 운영된다. 각 라운드에서 게임 참가자들은 식품공장, 건설회사, 의류공장, 전력회사, 컴퓨터공장, 자동차공장 등을 짓거나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액션을 취할 수 있다. 자동차공장을 지은 뒤 제품을 생산했다면 자동차 모양의 칩을 하나 획득하는 식이다.

공장 외에 은행이나 시청을 지을 수 있는데, 시청은 이를테면 ‘기본소득 공장’ 또는 ‘복지국가’를 상징한다. 시청을 지으면 상품을 생산할 수는 없지만 ‘시민 카드’ 3장을 내려놓아 소비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 시민 카드에는 노동자·관리인·전문가 세 부류가 있고, 각 시민은 원하는 종류의 물건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그림이 그려진 시민 카드를 내려놓았는데 마침 당신이 자동차 모양 칩을 갖고 있다면 ‘행복도’ 1점을 획득할 수 있다. 공장을 마구 지어 제품을 아무리 많이 생산했더라도 소비할 시민이 없으면 소용없다. 시민 카드는 모두 36장이다. 이렇게 생산, 소비 등의 액션을 번갈아 12라운드 진행하면서 1시간가량 게임을 진행한다.

마지막까지 가장 많은 행복도를 획득한 사람이 승자가 된다. 게임이 끝날 때쯤 ‘이래서 복지 또는 기본소득이 필요하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국가(게임 플레이어) 경제의 존재 이유는 결국 시민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뜻을 담은 게임이다. 기본소득을 소재로 삼은 이 보드게임의 이름은 (Economist)다.

은 ‘기본소득 월 135만원 받으실래요?’ 카카오 스토리펀딩(storyfunding.daum.net/project/9578)을 진행하면서 ‘기본소득 보드게임 국제공모전’(주최 , 주관 코리아보드게임즈)을 열었다. 기본소득을 주제로 한 보드게임을 직접 제작하는 아이디어를 내달라 했고, 2월13일까지 국내외에서 총 51편의 응모작(국내 44편·해외 7편)이 접수됐다. 크라우드펀딩 방식으로 모은 돈을 월 135만원 기본소득으로 직접 지급하는 것이 ‘현실의 실험’이라면, 보드게임 공모전은 게임이란 매체를 통해 기본소득을 간접 경험케 하려는 ‘가상의 실험’이었다.

응모작 중 13편이 1차 심사를 통과했고, 3월10일까지 보드게임을 실물과 비슷하게 제작한 프로토타입을 제출받아 최종 심사를 진행했다. 심사는 국내 최대 보드게임 회사인 코리아보드게임즈에서 맡았다. 당장 보드게임으로 출시해 팔릴 만한 완성도를 갖춘 1등 당선작은 없었지만, (이수영)와 (성정현)가 상금 40만원을 받는 2등에, (이현진·장현서·황선우)와 (정해빈)이 상금 20만원을 받는 3등에 뽑혔다.

코리아보드게임즈 쪽은 “많은 응모작들이 헬조선, 수저계급, 취업난, 저임금 아르바이트 같은 우리나라 경제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다. 이 현실을 해결할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제시됐지만 ‘정량의 수입을 공평하게 주는 규칙’ 정도로만 기본소득이 등장한 점이 아쉽다.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을 다룬 보드게임이 출시된 사례가 없고, 기본소득제가 실제 시행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다는 한계 때문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정당 되거나, 금수저·흙수저 되거나

그럼에도 최종 당선작들의 수준은 꽤 높았다. 보드게임 형식을 빌려 기본소득제의 의의를 잘 구현해보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재미’와 ‘의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게임 방식이나 규칙이 돋보이는 작품도 많았다. 응모작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첫째, 처럼 게임 플레이어가 국가 또는 경제 관료가 되어 진행하는 국가 경영 게임이다. 둘째, 게임 속에서 의회를 재현해 정책을 입안하고 플레이어들이 투표하도록 진행하는 게임이다. 셋째, 플레이어가 직접 다양한 직업을 가진 캐릭터가 되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경쟁하는 게임이다.

와 함께 2등으로 뽑힌 는 두 사람이 하는 게임이다. 한 사람은 ‘금수저’, 한 사람은 ‘흙수저’가 되어 한 달을 사는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한다. 금수저는 1시간에 10만원짜리 타이마사지, 2시간에 40만원 하는 호텔 스파 풀케어를 즐기거나 2시간 동안 음미하는 40만원짜리 해산물 요리를 먹는 반면, 흙수저는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을 공짜로 먹거나 1만원짜리 탕짜면으로 허기를 겨우 채워야 한다. 노래방, 자전거 데이트 등이 여가생활의 전부다. 게임은 5라운드로 진행되는데, 전반전까지는 기본소득이 시행되지 않다가 후반에 들어 기본소득이 시행되면서 흙수저의 형편이 크게 나아진다. 흙수저 플레이어는 경우에 따라 기본소득제 시행을 앞당길 수 있다.

는 게임 플레이어가 국가가 되어 세금제도와 복지정책을 결정하고, 이에 따라 인구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점수화하는 게임이다. 복지정책 가운데 기본소득을 선택할 수도, 선별적 복지를 선택할 수도 있다. 복지정책이 소홀하면 국민이 죽기도 하고,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기도 한다. 플레이어인 국가 처지에선 노인이나 저소득층이 부담이 되는 현실 등도 빗댔다.

은 정당의 당수가 되어 시뮬레이션 형식으로 의회에서 자기 정당의 정책이 관철되도록 하는 게임이다. 의회에서 안건이 통과되느냐 통과되지 않느냐에 따라 국가 운영이 달라지고, 플레이어들은 게임 내에서 안건을 통과시키거나 승리하기 위해 합종연횡할 수도 있다. 게임 시작 단계에서 정당들은 기본소득제에 합의하지만, 아직 제도가 사회에 완전히 뿌리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게임 내내 기본소득제를 유지하기 위해 플레이어(정당)들이 협력해야 한다. 정권이 붕괴하면 기본소득제도 폐기되기 때문이다.

‘메시지’와 ‘오락성’ 두 마리 토끼

심사를 진행한 박지원 코리아보드게임즈 차장은 “기본소득이란 메시지와 보드게임이란 오락성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은 게임을 위주로 최종 당선작을 선정했다. 가 게임으로서 완성도에 가장 근접했던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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