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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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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꿈 땜질하는 불꽃

㉔ 마지막 회_ 용접사의 용접기: 대우조선해양 액화천연가스(LNG)선 용접사 차홍조·양병효씨
등록 2016-08-30 20:11 수정 2020-05-03 07:17

따다닥 타다닥. 불꽃이 튄다. 흰 연기가 뭉실 솟아오른다. 타다다다다다닥. 눈부신 화염이 피어오르고, 거친 불똥이 나뒹군다. 불덩이가 철판 사이를 지난다. 쇳덩이가 붉게 물들었다가 검게 식는다. 불꽃이 철판에 붙은 불순물을 녹인다. 쇳조각 타는 냄새가 진동한다. 용접봉이 지나간 자리, 선실 벽과 바닥, 기둥이 검게 그을렸다. 타다다다닥. 불길이 다시 치솟는다. 철판을 뚫을 듯한 기세로 불꽃을 쏟아낸다. 불이 지나온 자리. 육중한 쇳덩이가 합쳐진다. 물 한 방울, 빛 한 조각 새어 들어오지 못한다.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만 바다. 액화천연가스(LNG)선에서 상갑판(어퍼데크)을 용접하는 차홍조(59) 용접사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불꽃을 만난 쇳덩이가 아늑한 선실로</font></font>

얼음물을 한 모금 들이켜고 다시 용접토치(용접봉, CO2건)를 든다. 철판 바닥에 모로 눕는다. 타다다다닥. 불꽃이 내려갔다 올라간다. 버티컬 용접이라고 부른다. 첫 땜질은 이물질을 제거하고, 두 번째는 철판을 결합시킨다. 바위처럼 웅크린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작업을 반복한다. 토치를 쥔 손이 떨림 없이 오래도록 철판을 마주한다. 붉은 불길이 쇳덩어리를 휘감는다. 가스를 실어 나를 대형 선박의 방 한 칸이 지어진다. 사각형 쇳덩이가 불꽃을 만나 뱃사람을 위한 아늑한 선실이 된다. 육중한 무쇠가 불꽃을 태워 파도를 가를 거대한 뱃머리가 된다. 용접사의 불꽃이 바다 위 세상을 건설한다.

CO2용접은 두꺼운 철판을 빠르게 붙이는 거친 용접이다. 피더기(CO2용접기 본체)와 연결된 라인을 타고 나오는 가스와 CO2와이어가 철판에 녹아 용접이 이뤄진다. 홍조씨가 용접면을 살핀다. 매끄럽고 고르다. 매직을 꺼내 브이(V)자를 쓴다. 틈이 생기면 안 된다. 오함마(큰 망치)로 내리치면 휘어지지 않고 부러진다. 표면이 우둘투둘하면 그라인더(갈개) 작업자가 고생한다. 용접토치를 쥐고 고도의 집중력으로 섬세하게 철판 표면을 용접해야 한다.

홍조씨가 용접마스크를 벗자 땀범벅이다. 한낮 배의 온도는 50℃를 훌쩍 넘는다. 손에는 목장갑 2개와 소가죽으로 만든 용접장갑을 끼고 일한다. 두건과 보안경, 용접마스크를 쓰고 작업복 위에 에어재킷, 통바지, 용접재킷을 입는다. 몸에 7kg을 걸친다. 용접기에서 나오는 3천℃ 열을 견디기 위해서다. 22년 만의 폭염으로 고기불판처럼 달궈진 갑판. 나 홀로 일하는 탱크에서 에어재킷의 시원한 공기가 그의 유일한 벗이다.

홍조씨가 용접기를 손에 쥔 건 40년 전이다. 철공소에서 심부름하며 용접을 배웠다. 1980년 대우조선에 들어왔는데 중동 전쟁이 터졌다. 이라크 바그다드로 가서 아파트 배관 용접을 했다. 1985년 대우조선으로 돌아와 32년 동안 용접사로 일했다. 상선, LNG선, 잠수함, 석유시추선…. 그의 불꽃을 거쳐간 무수한 배들이 오대양을 누빈다. 편한 직종으로 옮긴 동료도 많지만, 그는 ‘조선소의 꽃’이라고 부르는 용접사로 남았다. 내년에 정년퇴직한다.

최소 5년은 용접을 해야 밥 먹고 살고, 계속 노하우를 쌓아 20년이 지나면 영감이 되고, 30년이 되면 발가락으로 용접한다고 말하는 조선소 용접사. 신입사원이 오면 6개월 넘게 청소와 그라인더 작업만 하면서 선배들의 용접 실력을 어깨너머로 배우게 했다. “용접을 천직이라 생각하고 배우려고 노력하면 10년 정도면 모든 용접을 할 수 있죠.”

<font size="4"><font color="#008ABD">몸의 기억을 물려주고 싶다</font></font>

한낮 기온이 34℃를 넘었다. LNG선 선체 내부로 향한다. 사방이 반짝거리는 금속 물질이다. 가로 42m, 세로 35m, 높이 29m의 초대형 창고. -163℃ 액화천연가스를 담는 탱크다. 두께 0.7mm, 종이보다 더 얇은 인바스틸을 이중으로 용접한다. 젊은 용접사가 오른손에 텅스텐 봉을, 왼손에 용접토치를 들고 작업한다. 티그용접이라고 부른다. 동, 티타늄, 디플럭스, 슈퍼디플럭스 등을 용접한다. 화학물질을 담는 탱크나 파이프는 티크용접, 배의 껍데기는 CO2용접을 한다. 철판 용접과 달리 조용하다. 불꽃도 약하고 불똥도 없다. 녹슬지 않게 하기 위해 에어컨을 틀어 선체가 선선하다. 한 척의 LNG선에 초대형 탱크 4개를 용접한다. 배 안에 10층짜리 아파트 4개 규모의 탱크가 액화천연가스를 담아 실어 나른다.

1988년 대우조선에 입사한 양병효(49)씨는 28년 경력 용접공이다. 배의 선수와 선미에서 용접을 했다. 국가기술 전기용접 기능사1급, 기사2급, 기능장 4개를 가지고 있고, LNG선을 포함해 용접 관련 자격증을 10개 넘게 땄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상선 50척과 잠수함 2척, 내년까지 해양플랜트 10기를 만든다. 철판 가공공장을 거쳐 탑재공장에서 철판을 이어붙인 후 골리앗 크레인으로 들어올려 용접한다. 2500명의 손길을 거쳐야 배 한 척이 완성된다.

“예전에는 어마어마한 높이의 선박을 3층으로 나눠 용접사 세 명이 작업했는데 지금은 곤돌라에 타서 한 명의 용접사가 빠른 속도로 용접합니다. 직경이 5m나 되는 파이프를 돌려서 완벽하게 용접하고요. 유럽 기술자들이 와서 경탄할 정도죠. 조선소는 정말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의 청춘과 열정을 조선업에 쏟아부어 세계 최고의 조선소를 만든 거죠.”

그는 조선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반도체보다 더 세밀한 공정이 조선이라고 말한다. 월급 10만원 받아가면서도 배 만드는 노하우를 기록하고 녹음하면서 일을 배운 세대, 도전과 실패를 반복해가며 몸으로 익힌 해양플랜트 기술, 그는 배운 것을 후배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해고·폐업에 저항하겠다’ 11.2%</font></font>

지난 15년 조선산업은 호황이었다. 선박과 해양플랜트 수주가 폭발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2000년 7만9776명이던 13개 조선소 노동자는 2014년 20만4996명으로 늘었다. 그런데 기업들은 정규직 대신 하청을 썼다. 본공, 물량팀, 돌관팀이라는 다단계 하청을 값싸게 부려먹으며 저가 출혈경쟁을 일삼았다. 기술은 축적되지 않았고, 품질은 떨어졌다. 2014년부터 유가 하락으로 해양플랜트 발주가 급감했다. 조선 강국의 아성은 하루아침에 흔들렸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정부와 조선 3사는 대량해고에 나섰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우조선에는 4만9천 명이 일했다. 정규직이 1만3천 명, 사내하청이 3만6천 명이었다. 지금은 4만2700명으로 줄었다. 6천 명 넘는 하청노동자가 사라졌다. 현대중공업에서도 1년 사이 849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정규직도 위험하다. 지난해 현대중공업은 사무직 1500명을 감원했고, 올해는 3천 명 희망퇴직을 강행하고 있다. 대우조선은 올해 1천 명의 정규직 감원을 추진 중이다.

조선소 구조조정이라는 초특급 폭풍이 몰아치는 뱃머리, 갑판 끝에 하청노동자들이 매달려 있다. 해양플랜트가 선주사에 인도될 때마다 1500명 안팎의 하청노동자가 바다로 떨어진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내년까지 5만6천 명에서 6만3천 명이 직장을 잃을 것으로 예상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지난 5월부터 5개 도시(울산, 거제, 통영, 창원, 목포) 조선소 하청노동자 500명에 대한 설문·면접 조사를 실시해 를 냈다. 최근 1년간 업체를 옮긴 경험이 있는 노동자가 42.7%로 절반에 가까웠다. 이유는 ‘업체 폐업’(39.8%) 또는 ‘구조조정’(13.9%) 때문이었다. ‘임금이 줄었다’고 응답한 노동자는 44.1%에 이르렀다.

일자리를 잃거나 폐업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었더니 ‘다른 업체’(54.5%)나 ‘지역을 찾아가겠다’(24.9%)는 응답이 80%를 넘었고, ‘부당함에 맞서 저항하겠다’는 응답은 11.2%에 불과했다. 조선소 비정규직 사업을 담당하는 이상우 금속노조 비정규국장은 “부당함에 저항했다가 블랙리스트로 찍힐까봐 노조에 가입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용문제 발생시 노조에 문의하겠다’고 응답한(30%) 노동자들이 있다는 점이다. 때마침 거제·통영·고성 지역에서 조선하청노조 결성이 추진되고 있다. 8월11일 울산, 거제, 목포의 하청노조들이 ‘조선하청 노동자 대량해고 저지 대책위원회’를 꾸려 투쟁에 나섰다. 9월 초 서울에서 시민대책위원회가 출범하고 10월29일 거제에서 하청노동자 대행진이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조선소의 ‘소리 없는 죽음’을 막기 위한 뱃고동 소리들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양병효 부장의 고군분투</font></font>

“노조에서 먼저 정규직노동자 성과급, 임금인상분을 양보하고 필요하다면 6시간 노동시간 단축 등 일자리 나누기로 사내하청 노동자들까지 총고용을 보장해야 합니다.” 지난 5월 양병효 대우조선노조 고용안정부장은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다. 대기업노조가 하청노동자와 함께 살길을 모색하면 정부와 사용자에게도 압박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공장 안의 노동조직들이 ‘정규직 양보론’이라며 그를 공격했다.

지난해 대우조선노조가 조합원 6천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노동조합이 사내 하청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해 어느 선까지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61.7%는 ‘조합원의 임금총액과 복지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고 응답했다. ‘복지를 어느 정도 양보하는 범위 내에서’는 27.3%, ‘임금총액과 복지를 양보해서라도’는 6.2%가 나왔다. 양병효 부장은 노조가 조합원들과 토론하고 설득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봤다. 함께 배를 만들던 비정규직, 더 힘들게 일하던 하청들이 마구 잘려나가는 상황에서, 노조가 손을 내민다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내달이면 그는 노조 간부 임기를 마치고 현장으로 돌아간다. 그가 지난 2년 동안 하청노동자를 찾아다니며 40억원의 체불임금을 되찾아주고, 물량팀의 80% 이상을 4대 보험에 가입하게 한 것은 다른 조선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양병효씨가 ‘드릴쉽’이라고 부르는 40m 높이 원유시추선에 오른다. 바닷속 3km, 해저 2km를 들어가 석유를 뽑아올린다. 오는 12월 미국 트랜스오션이라는 선사에 인도된다. 하청노동자들이 질소를 저장하는 파이프를 용접한다. 뱃고동이 울리면 이들은 모두 일자리를 잃는다. 내년까지 해양플랜트 10기가 인도되면 1만 명은 어디로 떠나갈까? 그가 시름에 잠긴다.

병효씨가 조선소 용접공 30년 인생을 돌아본다. 불똥 튀고 가스 마시는 숨 막히는 현장에서 용접기 하나로 살아온 세월. 몸으로 익힌 기술로 세계 최고의 배를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보내온 시간이었다. 그런데 높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회사가 잘나가던 시절에는 산업은행 출신들과 청와대 사진사까지 내려와 돈을 빼먹었다. 조선소가 어려워지자 어디론가 도망가고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긴다. 현장을 모르는 자들이 구조조정을 떠들며 노동자들이 맨몸으로 일군 배를 침몰시키려고 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뱃고동 울리면 떠나야 할 노동자들</font></font>

병효씨는 용접기 불기둥이 거짓을 불태우고 위선을 녹여버렸으면 좋겠다. 용접봉 불꽃이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끊어진 꿈을 땜질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진 노동을 하나로 이었으면 좋겠다. 용접 불길이 하청노동자들의 가슴속 깊은 체념을 불사르면 좋겠다.

<font color="#008ABD">글</font>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font color="#C21A1A">@ccomark, ccamcy@gmail.com</font>

<font color="#008ABD">사진</font> 노순택 사진가<font color="#991900">※ ‘박점규·노순택의 연장傳’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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