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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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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도 설움도 쓸고 닦는다

⑲ 청소노동자의 대걸레: 쓰레기 치우고 노조 지켜 대학 빛내는 중앙대학교 윤화자씨
등록 2016-05-20 15:41 수정 2020-05-03 07:17

여자화장실. 고무장갑이 칸마다 수북이 쌓인 휴지를 들어 파란 비닐에 담는다. 물을 내리고 변기와 바닥 물청소를 한다. 손걸레가 벽, 문, 거울, 선반, 에어컨을 차례로 닦으며 ‘휘리릭’ 지나간다. 화장실 입구 분리수거함. 쓰레기가 뒤섞여 있다. 먹다 버린 일회용 커피용기가 가득하다. 뚜껑을 열어 물을 버리고 컵을 두른 종이와 빨대와 뚜껑을 분리한다. 순식간이다. 다섯 개의 비닐에 플라스틱, 비닐, 종이, 휴지, 음식물을 구분해 담는다. 남자화장실, 지린내가 난다. 양동이에 물을 받아놓고 왼손은 바가지, 오른손엔 수세미를 든다. 철써덕 철써덕. 바가지가 물을 뿌리면 수세미가 소변기를 닦아나간다. 누런 때가 말끔히 사라진다. 계단 옆 창고를 열어 두루마리 화장지와 락스, 물비누를 꺼낸다. 기억해두었던 칸을 열어 빠르게 휴지를 교체하고 물비누를 보충한다. 세 개의 화장실 청소가 끝났다.

빗자루 쓸 시간 없다

왼손에 손걸레, 오른손엔 대걸레를 든다. 강의실 문을 연다. 먹다 버린 우유와 빵 봉지를 치운다. 손걸레가 책상을 닦고 대걸레가 바닥을 훑는다. 개미핥기처럼 대걸레 실타래가 먼지를 감아올린다. 대걸레로 바닥 쓸기. 강의실 바닥이 말끔해졌다. 학생들 등교 전에 청소를 끝내려면 빗자루를 쓸 시간이 없다.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걷는다. 오른손에 들린 대걸레가 문틈에 쌓인 먼지를 빨아들이며 지나간다. 화장실, 대걸레를 털자 머리카락과 먼지가 한가득 떨어진다. 대걸레를 빤다. 왼손으로 걸레를 잡고 알루미늄 봉을 오른쪽으로 빙글빙글 돌려 물기를 짠다. 본격적인 걸레질이 시작됐다. 복도와 강의실 바닥을 닦아나간다. 대걸레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좌우를 빠르게 왕복한다. 학교를 종횡무진 누빈다. 걸레가 지나간 자리가 빛난다. 중앙대학교 107동 교양학부를 청소하는 윤화자(60)씨가 매일 맞이하는 아침이다.

교양학부 2층을 담당하는 동료가 모친상으로 출근하지 못했다. 화자씨가 바퀴 달린 쓰레기통과 대걸레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간다. 그녀의 오른손이 무언가를 낚아챈다. 창틀 사이에 꽂혀 있는 종이컵이다. 강의실과 사무실을 돌아 나온다. 탕비실 쓰레기통이 넘쳐난다. 음식물쓰레기도 여기저기 보인다. 복도엔 라면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다. 화자씨의 손길이 후다닥 움직인다. 금세 깨끗이 치워졌다.

대형 비닐봉투를 양손에 들고 건물 뒤편 쓰레기 집하장으로 향한다. 캔, 병, 플라스틱을 구분해 포대에 담는다. 플라스틱은 페트병과 일회용 커피컵을 구분한다. 순수한 일회용 커피용기는 의학품이나 옷을 만드는 재료로 재활용 가치가 높아 따로 분리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한꺼번에 모았던 종이와 휴지도 구분한다. 똥 닦은 화장지도 휴지로 재활용된다고 한다. 화자씨의 손길이 닿으면 쓰레기가 재활용으로 부활한다. 종량제봉투에 들어갈 ‘진짜 쓰레기’는 없다. 장갑을 빨아 넌다. 새벽 6시가 되기 전에 시작한 아침 청소가 9시 넘어 끝났다.

“어머니, 수고하십니다.” 출근하던 교수가 모카빵이 든 상자를 건넨다. 벌써 몇 번째다. 마음이 참 곱다. 두 개를 꺼내 경비아저씨에게 전달한다. 동료들이 휴게실로 모인다. 집에서 가져온 반찬을 내오고 밥을 담는다. 새벽노동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설거지할 싱크대가 없어 두 개의 물통과 작은 설거지통을 이용해 그릇을 씻는다. 똑똑. 학교 직원이 휴게실 문을 연다. “박스 하나 구할 수 있어요? 이사를 해야 해서요.” “화장지 박스 괜찮으세요?” 종이상자를 구해다 준다.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대걸레를 들고 건물 출입구로 향한다. 흥건한 빗물, 자칫하면 학생들이 미끄러져 다친다. 대걸레가 물기를 말끔히 닦아낸다. “어머니, 고생 많으시죠?” 계단을 내려오던 남학생 셋이 반갑게 인사한다. 새벽노동에 지친 화자씨 얼굴이 밝아진다. 한 여학생이 건물 밖에서 우산의 빗물을 털고 들어온다. 예쁘다. 작은 배려가 그를 흐뭇하게 한다.

‘엘리베이터 버튼, 팔꿈치로 눌러라’

윤화자씨는 2008년 중앙대에서 청소 일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건물 안팎을 모두 청소해야 했다. 새벽 5시에 출근하는 고된 일이었지만, 손놀림이 빠르고 바지런했던 그는 학생들을 보살피는 노동이 좋았다. 그런데 집안에 경조사가 있어 휴가라도 갈라치면 청소업체 소장에게 봉투를 쥐어줘야 했다. 밉보이면 사소한 일도 트집을 잡았다. 한 동료는 허리가 아파서 하루 쉬겠다고 했더니 그 다음날로 잘렸다.

중앙대는 용역회사인 티엔에스(TNS)와 맺은 계약서에 ‘청소노동자들은 콧노래도 부르지 말고 의자나 소파에 앉지도 말라’고 했다. 용역업체는 교수들이 싫어한다며 엘리베이터 버튼도 팔꿈치로 누르라고 했다. 다른 대학과는 달리 어머니들에게 건물 외부 청소까지 시켰다. 눈이 오면 수십kg짜리 염화칼슘을 들고 뿌리며 얼음을 깨야 했다. 휴게실도 없이 경비실 안 쪽방에서 짐짝처럼 있어야 했다.

홍익대, 연세대에서 노조를 만들어 좋아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서울대 식당에서 노조를 해본 경험이 있었던 황정례(70)씨가 사람들을 모았다. ‘비밀회합’ 장소는 경로당이었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를 만났고 중앙대 학생들도 도왔다. 2013년 9월 노조를 만들자 90% 넘게 가입했다. 불만은 분노로 변했고 마침내 폭발했다. 12월16일 어머니들이 대걸레를 내려놓자, 학교는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변했다.

그런데 2008년 6월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이 이사장이 된 뒤 중앙대는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돈방석 전당’이 되고 있었다. 박용성은 두산 계열사에 대학 건물 공사를 몰아주며 학생 등록금까지 끌어다 썼다. 학교발전기금을 건설기금으로 전용했고 식당, 매점 등의 임대수익까지 재단이 챙겨갔다.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학생들에게 퇴학과 무기정학을 내렸다.

중앙대는 청소노동자들이 천막농성에 들어가고 대자보를 붙이자 한 사람당 100만원씩 물어내라는 소송을 법원에 냈다. 복수노조를 만들어 조합원들을 빼갔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총장실 점거, 26일 천막농성, 44일 파업을 벌인 끝에 노동조합을 인정받았다. 박용성은 교수들에게 “제 목을 쳐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쳐줄 것”이라는 협박 편지를 보낸 것이 언론에 알려져 학교에서 쫓겨났다. 지난 4월22일 서울고등법원은 ‘중앙대학교 특혜 외압’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범훈 전 대통령 교육문화수석에게 금품을 제공한 죄로 박용성 전 이사장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때 함께 싸우지 않았다면

“외곽 청소 안 해서 정말 좋아.” “깁스하고 일했는데 이제 산업재해 처리되잖아.” “부모님 돌아가시면 3일밖에 안 줬는데 지금은 6일 준다고. 미꾸라지 용 됐지.” “퇴근시간이 5시였는데 4시로 빨라졌고, 월급도 많아졌어.” “정년도 5년이나 늘었어. 노조 안 했으면 지금 집에 있겠지.” 휴게실에 모인 어머니들의 노조 자랑이 끝이 없다. 소수노조인데도 회사가 함부로 하지 못한단다. “그때 빡세게 투쟁해서 이렇게 된 거야.” “투쟁가 들으면 그때 생각나서 눈물 나.” “이판사판이라고 생각하니까 못할 게 없더라고.” 2013년 겨울, 그때 싸우지 않았다면 지금의 그녀들은 없다.

화자씨가 가입한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는 40개 분회 3천 명의 조합원이 있다. 홍익대, 이화여대 등 17개 대학에 노조가 만들어졌다. 2004년 고려대를 시작으로 2007년 덕성여대, 성신여대에서 노조가 만들어졌으니 벌써 10년이 넘었다. 연세대와 고려대에서 학생들의 적극적인 연대와 지원으로 분회가 만들어지고, 2009년부터는 공공운수노조가 진행한 ‘따뜻한 밥 한 끼 캠페인’을 통해 많은 청소노동자가 노동조합이라는 무기를 갖게 됐다. 유령 취급을 받았던 그녀들이 당당한 대학 구성원으로 태어났다. 나아가 서울시립대는 서울시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처음으로 용역업체 소속이 아닌 대학 정규직 직원이 됐다.

서경지부는 소수노조인 중앙대를 제외하고 17개 분회 23개 용역업체를 대상으로 집단교섭을 벌여 지난 3월30일 청소노동자 시급 6950원, 경비노동자 6060원, 식대 10만원, 명절 상여금 각 25만원에 합의했다. 정부는 열악한 용역보다 파견이 낫다며 제조업까지 파견을 허용해 중·장년층에게 파견직으로 일하라고 한다. 파견직 대다수는 최저임금(시급 6030원)을 받는다. 더 나은 일터를 만드는 건 노동조합이다.

황정례씨의 일터 아트센터 휴게실에 초록색 예쁜 도화지가 붙어 있다. ‘마음의 고향 아트센터 어머니께’라는 제목으로 학생들이 손글씨로 쓴 편지다. 청소노동자에 대한 고마움이 가득하다. “그때 학생들하고 하니까 노조가 이루어진 거지, 아줌마들끼리 했으면 힘들었을 거예요.” 지난해 5월15일 스승의 날,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청에 들어가는 박용성 전 중앙대 이사장에게 중앙대 학생들이 카네이션을 달아줬다. 같은 학교 학생인데, 이렇게 다르다.

보이지 않는 고마운 노동

오후 2시30분, 잠시 쉬었던 화자씨가 다시 대걸레를 든다. 한 여학생이 강의실을 나오며 반갑게 인사한다. 화자씨도 활짝 웃으며 인사한다. 오후의 노동이 가벼워진다. 화장실 물청소를 한다. 새벽과 달리 학생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든다. 학생들 옷에 물이 튀지 않게, 휴지 담긴 비닐봉투가 닿지 않게, 대걸레가 신발을 더럽히지 않게 조심, 조심한다. 남자화장실, 막힌 변기를 뚫는다. 수업이 끝난 교실, 밖으로 나와 있는 의자를 밀어넣고 창문을 닫고 불을 끈다. 복도와 강의실을 쏜살같이 오간다. 대걸레가 쌓인 먼지를 쓸고, 더러운 바닥을 닦는다. 그림자처럼 지내야 했던 어머니들, 혼자일 때는 쓰레기만 쓸고 닦았는데 함께 모이니까 저들의 ‘갑질’이 쓸려나가고, 같이 싸우니까 우리의 설움이 닦여나간다.

새벽 5시 마을버스 첫차와 첫 지하철은 승객들로 만원이었다. 간혹 젊은이들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가방을 손에 든 아주머니들과 모자를 눌러쓴 아저씨들이 유독 많았다. 노약자석에 앉아야 할 60~70대 어르신들이 손잡이를 꼭 쥐고 일터로 향한다. 평생을 가족과 나라를 위해 살았던 이들, 여생을 즐겨야 할 나이에 돈을 벌기 위해 어느 대학 화장실과 어느 건물 경비실로 향한다. 당신이 쏟아놓은 배설물을 쓸고, 우리가 누빌 공간을 닦는 이들의 소중한 노동이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보이지 않지만 살가운 노동, 그녀들이 있어 고맙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ccomark, ccamcy@gmail.com

사진 노순택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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