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⑫ 조경사의 기계톱: 꽃을 심고, 나쁜 나무를 베서 다른 나무를 살리는 서울대공원 조경사 문쌍용·김상익씨
등록 2016-01-27 21:54 수정 2020-05-03 07:17

지팡이를 든 어느 노부부가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 등산로를 향해 걷는다. 그 뒤를 따라 일군의 노인들이 산을 오른다. 방학을 맞은 학생들은 떼 지어 서울랜드로 달려간다. 놀이기구를 타는 아이들의 비명을 들으며 문쌍용(57) 조경사가 톱과 전지가위를 꺼낸다. 서울대공원 호수 둘레길 무궁화 정원, 톱으로 굵은 가지를 자른 후 전지가위로 잔가지들을 치기 시작한다.

40여 그루 무궁화의 지저분한 머리가 깔끔하게 손질됐다. 가지들이 3.5t 트럭에 수북이 쌓인다. 자리를 옮겨 억새와 무궁화 화단을 다듬는다. 쌍용씨의 전화벨이 울린다. 다급한 목소리, 동료들과 함께 공원 안 식물원으로 향한다. 식물원 입구에 큰 야자수가 두 토막이 난 채로 누워 있다. 1985년 서울대공원 개장과 함께 식수한 야자나무, 무럭무럭 자라 키가 식물원 천장에 닿았다. 놔두면 천장을 뚫고 나갈지도 모른다. 얼마 전부터는 밑동이 썩기 시작해 여차하다간 관람객을 덮칠 수 있다.

조경사 한만진(59)씨가 그냥 놔두라는 공원 관계자를 설득했다. 관람객 통행을 막고, 야자나무의 높이와 각도를 계산해 톱질을 했다. 다행히 야자수가 다른 식물들을 피해 공터로 넘어졌다. “가시 조심하세요. 야자수 가시는 뼈까지 뚫어요.” 한 조경사가 소리친다. 10여 명이 들어도 꼼짝달싹하지 않는 나무, 쌍용씨가 밧줄로 묶어 크레인으로 연결한다. 크레인이 상하좌우로 몸을 비틀며 조심조심 빼낸다. 마침내 건물 밖으로 나온 야자수가 트럭에 실린다. ‘휴~’ 안도의 한숨을 쉰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다른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는 폭목</font></font>

쌍용씨가 동물원을 가로질러 장미원으로 향한다. 관상용 양귀비와 튤립을 심고 비닐로 덮어둔 정원들을 지나간다. 겨우내 조경사가 어루만진 정원은 따사로운 봄날 화사하게 피어나 관람객을 반긴다. 메타세쿼이아가 호수를 껴안은 듯 병풍처럼 둘러 있다. 한국과 중국에 분포하는 습지대에 자생하는 나무다. 대한민국 대표 숲길인 전남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엔 사계절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다.

조경사들이 높이 자란 버드나무 앞으로 모여든다. “이 나무를 놔두면 주변에 있는 메타세쿼이아 7~8주가 햇볕을 받지 못해 죽게 돼요. 그래서 잘라내기로 했어요.” 다른 나무의 성장에 나쁜 영향을 주는 나무, ‘폭목’이라고 부른다. 사람으로 따지면 폭력배다.

산림기능사 김상익(57)씨가 안전모를 쓰고 스틸(STIHL) 기계톱을 꺼낸다. 손잡이를 잡아당긴다. ‘부릉’ 소리가 난다. 시동이 걸렸다. 상익씨가 크레인에 올라 안전벨트를 묶는다. 붐대가 팔을 뻗어 그를 허공에 올린다. 12m 상공에 멈춘 상익씨가 오른손으로 기계톱을, 왼손으로 나무를 잡는다.

윙윙위이이이이이윙~. 나무가 잘려나가기 직전, 그가 왼손으로 나무의 방향을 바꾼다. 잘린 버드나무가 두 그루의 메타세쿼이아 가지 사이로 떨어진다. 크레인을 끝까지 올려 다시 기계톱을 돌린다. 꼭대기 잔가지들이 차례로 잘려나간다. 왼손을 펴 아래 방향으로 흔들다 주먹을 쥔다. 크레인이 멈추자 다시 톱질이 시작됐다. 잘 벼려진 톱날에 굵은 가지가 맥없이 잘려나가 쿵 하고 바닥에 떨어진다. 15m 높이 버드나무가 작은 토막으로 분해되어 쌓이더니 마침내 나무 기둥만 남았다.

이번엔 쌍용씨가 기계톱을 든다. 긴 톱날이 나무에 45도 각도의 “호수 주변 산책로가 엉망이었어요. 나무란 나무는 다 등나무가 감고 있었죠. 몇 년 전 겨울에 작정하고 나무를 싹 다 베어냈어요. 능수벚나무를 심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좀 아쉽죠.” 조경사 최중기(58)씨가 관리하는 장미원에는 5만 본의 장미나무가 심어져 장미 축제를 기다리고 있다.

기계톱(체인톱, 엔진톱)은 1918년 스웨덴에서 2인용으로 개발되었고, 지금 쓰는 1인용 기계톱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원동기에서 얻어지는 동력이 동력 전달부를 거쳐 톱날에 전달된다. 기계톱의 생명은 톱날. 단단한 나무나 오래된 고사목을 자르면 날이 무뎌진다. 각도에 맞춰 줄을 밀면서 날을 정교하게 갈아야 벌목이 수월해진다.

조경사는 경치를 꾸미는 사람이다. 장미원을 만드는 외곽 조경에서 동물사 실내 조경까지 조경사의 손끝에서 공원이 완성된다. 산책로의 의자 하나도 조경의 영역이다. 얼마 전 쌍용씨와 동료들은 나무탁자 128개를 만들었다. 좋은 계절이 돌아오면 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의자에 앉아 쉬어가게 하기 위해서다.

봄부터 가을까지 조경사의 손에 가장 많이 들려 있는 연장은 예초기. 최근 최신형 승차식 잔디깎기인 컵카덱(cub cadet) 예초기 두 대가 들어와 능률이 대폭 올랐다. 공원에는 쥐똥나무, 철쭉, 회양목과 같은 울타리용 관목이 많다. 전정기(잔디깎기)를 사용해 예쁘게 다듬어주는 일도 조경사의 몫이다. 간단한 가지치기도 나무에 따라 다르다. 목수국처럼 싹이 나서 올해 꽃이 피는 나무가 있고, 무궁화처럼 2~3년 후에 피는 꽃도 있기 때문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겨울마다 계약 종료되는 쪼개기 계약직</font></font>

“소나무가 왜 비싼지 아세요?” 최중기 조경사가 묻는다. “옮겨 심으면 생존 확률이 낮기 때문이에요. 다른 나무와 달리 옮겨 심고 5년이 지나봐야 알아요.” 백송, 적송, 반송, 음송, 해송, 흑송, 리기다소나무, 방크스소나무, 솔송, 전나무…. 소나무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에 이른다. 일반인들은 소나무와 잣나무도 구분하기 어렵다. 소나무 잎은 두 개, 잣나무는 다섯 개 한 쌍으로 되어 있다. 일본산 리기다소나무는 잎이 세 개다. 어느 지방정부가 가로수로 소나무를 심었는데 모조리 죽었단다. 공해에 강한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쓰이는 이유다.

2010년 9월이었다. 태풍 곤파스가 서울을 강타해 서울대공원 수천 그루의 나무가 속절없이 쓰러졌다. 은행나무나 느티나무처럼 뿌리가 땅속 깊이 박히는 심근성 나무는 강풍을 견디지만 소나무나 아카시아처럼 뿌리가 넓게 퍼지는 천근성 나무는 바람에 약하기 때문이다. “그때 오지게 걸렸지. 쓰러진 나무들을 치우는데, 정말 끝이 보이지 않더라고.” 쌍용씨는 쓰러진 나무를 베어 벤치, 야외 탁자, 등산로, 목재 화단을 만들었다. 당시 서울시는 27억원의 예산을 절감했다고 자랑했다.

그런데 쌍용씨를 비롯해 서울대공원 조경사 39명은 모두 10개월짜리 계약직이었다. 겨울에는 일거리가 없다며 매년 2월 하순부터 12월 중순까지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폭설이 내리면 조경사들을 일용직으로 불러 눈을 치우게 했다. 공무원인 조경과장은 계약직 노동자들에게 자기 집 김장을 담그게 했고, 집에 가져가려고 나무 열매를 따는 일도 시켰다. 기계톱에 베어도 살이 깊이 파이지 않으면 병원에 갈 수 없었다. 담당 공무원들에게 밉보이면 재계약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 취임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면서 1년에 9개월 이상 일하면 상시업무라고 했지만, 서울대공원은 4명만 공무직 전환 대상에 올렸다. 조경사들이 노조를 만들고, 서울시와 공원을 상대로 싸운 끝에 2013년 공무직이 됐다. 기밀을 누설하면 이적행위로 처벌한다는 해괴한 ‘보안서약서’에 서명하는 일도 사라졌고, 공원 안에 대기실과 샤워 시설도 마련됐다.

2014년 법원은 노조가 서울시를 상대로 낸 퇴직금 지급 소송에서 “근로관계의 계속성이 유지됐다”며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공원의 10개월짜리 ‘쪼개기 계약’이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울대공원은 조경사들의 계약직 근무 기간의 근속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 공원 노동자, 네 개의 계급 </font></font>

캠핑 열풍이 불면서 서울대공원 자연캠핑장이 인기다. 서울 가까운 곳, 청계산 맑은 계곡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싸게 이용할 수 있다. 캠핑장 입장료가 2천원, 4인용 텐트 대여비가 1만5천원에 불과하다. 캠핑장 매점은 바가지요금 없이 동네 슈퍼마켓 가격으로 판매한다. 선착순으로 운영되는 캠핑장 예약에 시민들이 몰리는 이유다. 그런데 서울대공원은 2016년부터 캠핑장을 민간에 위탁해 운영한다.

민간위탁으로 운영되는 인천 남동구 장수동 인천대공원 너나들이 캠핑장은 자기 텐트를 가져오면 2만9천원, 4인용 텐트만 빌리면 5만~7만원, 4인용 풀세트는 15만원을 받는다. 2014년 3만2500원이었던 ‘레드존’ 4인 임대텐트는 7만원으로 두 배 넘게 올랐다. 서울대공원 캠핑장에 비해 이용요금만 네 배 이상 비싸다. 지방정부가 공공시설을 민간에게 빌려줘 가난한 서민들 ‘삥’을 뜯고 있는 셈이다.

“지자체나 정부가 시민들을 위해서 없는 캠핑장도 만들어야 하는데, 왜 인기 많고 잘되는 대공원 캠핑장을 민간업자에게 넘기는지 모르겠어요. 공무원들 민원이 많이 들어오니까 귀찮아서 그런 게 아닌가요?” 중기씨가 한숨을 내쉰다.

서울의 심장 성수동 서울숲도 민간에 넘겨질 위기에 처했다. 서울시는 서울숲공원 관리를 비영리 민간단체에 맡기는 내용의 ‘서울숲 유지 및 보수 민간위탁 동의안’을 시의회에 제출하고 관련 예산도 마련했다. 안전 관리, 시설 유지·보수, 동물·식물·녹지·곤충식물원 등 모든 시설물의 운영을 위탁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서울시의회는 민간위탁에 대한 조례 제정을 보류시켰다. 수석전문위원인 김선이 박사는 강남구에서 공원 전체를 민간에 위탁했다가 공원 관리가 부실해지고 예산은 더 들어가게 돼 다시 직영으로 전환한 사례를 들어 민간위탁의 위험성을 제기했다. 민간위탁이 되면 공무직 및 계약직 노동자의 고용도 불안해진다. 김 박사는 “시민의 참여도 중요하지만 공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근로 조건 및 근로 환경도 공원 서비스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2014년 7월 서울대공원 5, 6급 공무원과 용역회사 간부가 어린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을 성추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자 무관한 업무로 전환배치하고, 공무직으로 전환되지 않게 하겠다는 협박을 했다. 피해자 셋 중 한 명은 스스로 공원을 그만뒀다.

지난해 7월29일 열린 ‘서울시 비정규직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책 공청회’에서 서울시의 비정규직 노동자 4411명이 하루 평균 200~300건의 괴롭힘을 겪고 있고, 60~70건의 성희롱과 성추행이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괴롭힘을 당한 노동자의 89.7%는 회사에 알리지도 못했다.

서울대공원에는 600여 명의 노동자가 일한다. 정규직 공무원, 계약직 공무원, 공무직 노동자, 기간제 노동자라는 네 개의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 공원의 아름다운 숲과 나무, 동식물들은 차별과 설움의 비를 맞고 자란다. 오세범 서울일반노조 서울시공무직분회장은 서울을 비롯해 전국 공원 노동자들의 실태조사와 연대활동을 통해 ‘비정규직 없는 공원 만들기 운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 꽃과 나무와 더불어 차별없는 일터이길</font></font>

쌍용씨와 상익씨가 조경사들의 쉼터인 비닐하우스로 들어간다. 보안경을 쓰고 기계톱을 분해한다. 톱 안 구석구석 톱밥을 제거하고 톱날 사이사이 기름을 닦아낸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꽃과 나무, 들풀과 더불어 살아가는 노동, 어찌 보면 행복한 일터다. 쌍용씨는 하늘에 매달려 가꾼 숲과 톱날에 베이며 꾸민 공원이 지친 시민들에게 작은 휴식을 주었으면 좋겠다.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 구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맑은 공기를 주는 숲처럼, 모두에게 차별 없이 안식을 제공하는 공원처럼, 숲과 공원을 가꾸는 노동자들에게도 차별과 설움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font color="#008ABD">글</font>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font color="#C21A1A">@ccomark, ccamcy@gmail.com</font>

<font color="#008ABD">사진</font> 노순택 사진가

※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font color="#C21A1A">▶ 바로가기</font>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